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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한국 0.86 vs 미국 1.7

김지나ㅣ미대 나온 글쟁이. 미국에서 패션 비즈니스로 활동 중인 칼럼니스트.

신생아 발
누군가 내게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내 몸에서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그것도 3명씩이나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내 나이 오십. 집안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오래 했어도 경제 관념이 뛰어난 커리어 우먼이 된 것도 아니고, 미국에 20년을 살아도 여전히 영어 울렁증에 시달리는 나지만 내 아이들을 낳은 것만큼은 너무나도 잘한 일이지 싶다.

사실 처음부터 가족 계획을 하고 셋을 낳은 건 아니었다.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 있던 그 시기에 여자로 자라온 나는 '남자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당시에는 아들을 낳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어디 세상일이 그렇게 내 뜻대로 되던가? 아들 하나만 딱 낳아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내 마음은 욕심이었을까? 첫째도 딸, 둘째도 딸을 낳았다.

그 뒤로 더 늦기 전에 아들을 낳고 싶다는 마음에 연달아 임신을 했지만 매번 계류 유산이 되었다. 몇 번 고생을 하다 보니 습관성 유산이 되면 큰 병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며 담당 의사는 임신 불가 진단을 내렸다. 그러다 미국에 왔고 어쩌다 또 한 번의 임신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내 나이를 생각했을 때 노산이기도 했고 체력도 워낙 약했기에 미국 의사도 아기를 낳을 때까지 몸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임신 16주 차에 의사로부터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고 난 그렇게 내 인생에서 세 아이를 품에 안았다. 실로 생명 창조의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도 단 2명의 인간을 흙으로 빚으셨는데, 난 3명을 낳았으니 하나님보다 더 대단한 일을 했다고 혼자 웃으며 생각해본다. 이러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우리 아이들을 낳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장황하게 내 출산 이야기를 펼쳐놓은 이유는 따로 있다. (눈치를 챈 분도 있겠지만) 오늘날 전 세계에서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출산율의 숫자는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출산율이란 1년간 총 출생아 수를 15~49세 여성 인구의 수로 나눈 값에 1000을 곱한 값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84명으로 OECD 꼴찌였다. 합계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 평균을 말한다. 1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같은 저출생 현상은 20년 전쯤부터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1명만을 원했던 나도 단지 아들을 낳기 위해 3명의 아이를 낳게 된 사연을 소개했지만, 그 시절엔 그래도 '1명은 조금 외롭고 2명은 낳아야지'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했었다. 대부분 2명 정도 자녀를 두고 나처럼 딸만 둘이거나 아들만 둘이면 다른 성을 1명 정도 더 낳고자 노력을 해보던 시기였다.

그러다 '1명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바람이 불었다. 자녀가 1명이면 외롭기는 하겠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하고 개인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는 사회적 이슈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어떤 방송인이 '내가 번 돈 내가 혼자 쓰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뭐 저런 이기적인 사람이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맞다, 가족이 있다면 혼자 다 쓸 수는 없는 일이고 혼자 쓰면 참 풍족하겠구나!'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거 같다. 단 한마디였지만 멋지게 혼자 사는 생활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일반인 모두가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이나 개인주의적 이기가 상승한다 치더라도 출산율이 이렇게까지 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은 가정 중심적 사회인데 정확히 말하면 대가족 중심제라 3대 혹은 4대가 함께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거기에 답이 있을 듯하다. 대가족 문화라 개인의 생각과 행동은 단절과 희생으로 강요되었고 특히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희생은 당연시되었다. 유교 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남녀노소를 확실하게 선을 그어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하게 했다. 거기에 남아 선호 사상은 성 차별로 이어져 여자는 출산 후 독박 육아와 함께 경력이 단절되는 폐해가 결국은 세계에서 출산율 꼴찌라는 타이틀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신생아, 아기, 유아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환경적 요인도 변하긴 했지만, 아기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남자가 여자를 옆에서 조금 도와준다는 소극적인 역할로서의 분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출산에서 양육까지 온 가족이 함께 나누고 함께 책임지는 공동 육아에 익숙해져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존재해왔기 때문에 단순히 기저귀나 분유값을 정부에서 보조해준다는 것으로 출산율이 높아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완전한 성 평등이 우선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여자의 학력이 남자보다 높아지고 있다.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남자에게 교육의 혜택이 많이 돌아갔다.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지면서 여자도 평등한 양질의 교육을 받게 되었고 사회 진출과 공공기관의 유입은 발 빠른 여성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커리어를 쌓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다 한국처럼 빠르게 성장 된 경제적 카테고리 안에서 출산이라는 긴 꼬리표는 더 젊고 유능한 여성들은 힘들게 쌓았던 자리를 빼앗기게 되기도 했다. 아이가 있는 여자가 재취업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육아에 있어 역할 분담이 아빠보다 엄마가 훨씬 많다는 것을 이 사회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가 있는 남자는 솔로인 남자보다 가정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곧 여자의 경력 단절은 사회 단절이라는 의미고 아빠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경력은 사회적으로 상승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마트에는 파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깨를 쫙 펴고 웃으며 당당하게 일하신다. 우체국이나 은행에서도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고객을 대하는 모습이 다반사고 어떠한 기업이든 아이들로 인한 결근과 휴가는 그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아이는 무조건 돌봐야 하는 대상이고 어떠한 상황과 이유로 태어난 아이든 반드시 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힘이고, 그런 이유로 한국 출산율의 2배를 갖게 된 미국이 되었다.

정부 지원도 만만찮다. 18세까지 모든 자녀에게 매년 1,000달러(한화 약 143만 원)를 지급하고 생활이 어려운 가정은 마트에서 쓸 수 있는 보조금이 선불카드로 지급된다. 공립학교에서는 전학생이 학교 버스로 통학을 하고 1인 컴퓨터를 지급하고 있다(물론 카운티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정 재정이 어려운 대학생에게는 정부 보조금은 물론이고 학교 등록금에서 기숙사비까지 전액 면제인 대학교가 너무나 많다. 아기 때만 보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를 위한 출발선부터 성장하며 어른이 될 때까지 정부가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정착되어야 한다.

미국의 출산율은 1.7명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는 벌어지고 있는데 내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한 가정의 자녀는 3명 정도가 보편적이다. 한인 중에서도 3명을 둔 가정은 드문 일이지만, 2명의 자녀를 둔 한인의 수는 상당히 많고 1명만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특히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환경에서 자녀의 수는 경제적으로는 부모의 어깨를 무겁게 할 수 있지만, 외로운 여정에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부모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아이로 인해 속이 상했던 숱한 시간 속에 솔로로 멋지게 사는 인생에 박수를 보낸 기억도 허다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힘은 아이를 함께 기르며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는 데에서 나오고, 세상에 태어나 가장 가치 있는 일이지 싶다. 나 또한, 내 부모의 몸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주셨음에 감사한다. 내 아이들 또한 아주 미비하지만 한 생명체로 태어나 이 지구에 먼지 한 톨이라도 사회의 일원으로 보탬이 되는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란다.

아직도 한 녀석은 지하에서 커다란 강아지를 끌어안고 해가 중천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고 있고, 또 한 녀석은 오늘 왜 학교에 가지 않는지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작은 강아지를 안고 2층에서 쿨쿨 자고 있다. 아, 큰 녀석은 캐나다 어디에선가 재즈를 들으며 맛난 커피에 취해 있다고 사진이 말해준다. 엄마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두 딸과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가슴 벅찬 아들, 난 이런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인-잇 #인잇 #김지나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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