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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불가'…미 국가안보전략 공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인 ICBM을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서면서 북핵 대응 방안을 놓고 국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뜨겁습니다. 특히 보수 일각에서 제기돼 온 미군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국내에 들여왔던 미군 핵 전력은 지난 1991년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계기로 모두 철수했습니다. 30년 넘게 지켜 온 비핵화 원칙이지만 북한이 사실상 핵무장을 마친 데 이어 노골적인 핵 사용 위협까지 하는 상황을 감안해 비핵화 선언을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 물어라'…미국 속내는?

자체 핵무장을 제외하면 한반도 내 전술핵 재배치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대안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전술핵 재배치 논란에 불을 붙인 건 국내 한 언론 보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달여 전 여당인 국민의힘에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핵무장 여건 조성을 제안했고 우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왔다고 보도한 겁니다. 대통령실은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 여당과 어떤 논의도 진행한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 조정관

보도 이후 미국에서도 사실 여부를 묻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현지 시간 11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 소통 조정관의 화상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커비 조정관은 "동맹 사안과 관련한 한국의 입장과 바람은 한국 측이 밝히도록 두겠다"며 한국 정부로 공을 넘겼습니다. 대신 '다시 한 번'(again) 확실히 하겠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아직 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술핵에 대한 질문은 미 국무부 브리핑에서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 역시 "한국 문제는 한국에 물어야 한다"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대신 "한국을 포함한 동맹에 대한 안보 약속은 철통 같다는 점을 확실히 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 핵과 재래식 무기, 미사일 등 모든 범위를 포함하는 확장억제 약속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백악관과 국무부가 똑같은 답을 내놓으면서 미국이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앞서 지난 달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한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에 전술핵을 재도입하는 것이 옳은 답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김 대표는 "핵무기를 재도입하는 것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한반도를 넘어서는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의 길을 추구하고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더 까다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물 건너 간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미 '국가안보전략' 공개

백악관과 국무부가 에둘러 표현했던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다음 날인 현지 시간 12일 문서로 확인됐습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대외전략 방침을 담은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 NSS)을 발표한 겁니다. NSS는 백악관이 1980년대 이후 정기적으로 수립해 발표해온 것으로 바이든 정부의 NSS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초 올해 1월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고 전략을 수정하면서 발표가 늦춰졌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책자 표지 (사진=백악관 책자 표지 캡처, 연합뉴스)

미 NSC는 48쪽짜리 문건으로 된 국가안보전략에서 "북한이 불법적인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이란과 함께 역내 불안정을 야기하는 소규모 독재국가로 거론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북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과 외교적 해법을 계속 모색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입니다.

내용상으로는 지금까지 뉴스를 통해 들어온 미국의 입장과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전술핵 재배치가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미국이 대외 전략으로 밝힌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미국이 명시한 비핵화 대상이 불법적으로 핵 능력을 개발해온 북한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물론 한국 역시 비핵화 대상이라는 것으로, 한국 내 일부 보수 진영과 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한국 내 미군 전술핵 재배치는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국가 안보 전체를 총괄하는 NSS에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한 만큼 이후 발표될 국방전략서(NDS), 핵태세검토보고서(NPR), 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MDR) 등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걸로 보입니다.
 

한국 내 배치 아니어도…정부 내 '전술핵 구상'

하지만 이번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발표로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인 전술핵 관련 논의가 모두 무의미해진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한국 영토 안에 전술핵을 도입하는 게 어렵게 됐다는 뜻이지, '확장 억제' 차원에서의 전술핵 관련 논의까지 미국이 명시적으로 대상에서 제외시킨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속내가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은 그렇습니다.)

SBS 취재 결과, 정부도 내부적으로 전술핵 배치와 관련한 복수의 구상을 실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에 요청해 괌에 전술핵을 배치한 뒤 이를 공동 운용하는 방안, 그리고 나토식 핵 공유 방안 등입니다. 나토식 핵 공유는 1954년부터 시작됐는데, 미국은 현재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 다섯 나라에 공중 투하용 전술핵 190개 정도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토에 핵을 배치하지는 않지만 미국과 공유하는 방법도 거론됩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영토인 괌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유사시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전술핵 도발 위협 등 상황이 엄중한 만큼 괌 정도에 전술핵을 갖다 놓고 운영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이런 의견이 대통령실 입장으로 굳어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SBS가 취재한 정부 내 전술핵 관련 검토 내용을 보면, 미국의 대외 전략인 국가안보전략에서 밝힌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포함해 그간 양국 간 대북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돼 온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핵 정책을 감안해 전략 검토를 하고 있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찌됐건 90년대처럼 한국에 다시 미군의 전술핵을 들여오는 건 어렵게 됐습니다.

이미 핵과 투발수단을 모두 손에 쥔 북한을 상대로, 미국의 대외 정책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을지, 안보 문제에 자신감을 비쳐온 현 정부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사진=백악관 책자 표지 캡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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