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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핵'에는 '핵'으로, 부상하는 '전술핵 재배치'…효과 있을까?

북한 전술핵 운용부대 대규모 항공 훈련 추락, 회항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주재 하에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9일까지 진행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훈련은 전술핵을 활용한 종합적인 남한 타격 훈련이었습니다. 북한은 남한 비행장과 군사지휘시설, 항구 타격을 목표로 한 타격훈련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북한판 이스칸데르, 에이태킴스, 초대형방사포 등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들을 총동원했습니다. 고체연료로 짧은 시간 내에 발사가 가능하고 전술핵탄두 탑재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들입니다.

북한은 어제도 전술핵운용부대에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순항미사일에도 전술핵을 장착했다는 말인데, 북한이 가지고 있는 모든 미사일에 핵을 장착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갖가지 종류의 핵 미사일로 남한을 타격할 수 있다고 과시하고 있는 것인데, 북한의 핵 위협이 이렇게 노골화되면서 남한 내에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높아진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남한에도 핵무기가 배치돼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입니다.
 

1991년 철수한 주한미군 전술핵


주한미군에 배치돼 있던 전술핵이 1991년 철수한 것은 북한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전 세계적인 핵무기 관리 차원 때문이었습니다.

1991년 8월 소련에서 공산주의 강경파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한 이후 소련 연방은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소련이 무너질 경우 각지에 산재해 있는 핵무기들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결국 부시 미 대통령은 1991년 9월 27일 전 세계에 배치돼 있는 미군의 지상 해상 발사 전술 핵무기를 모두 철수하겠다고 발표했고, 남한의 핵무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부시 미 대통령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1991년 10월 5일 모든 단거리 전술핵탄두를 폐기하겠다고 화답함으로써 미국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됐습니다.

1991년 11월 8일 노태우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표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12월 18일 노 대통령은 '이 시각 우리나라의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국 내 핵무기 부재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31일에는 남북 간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도 타결됐습니다.
 

'전술핵 재배치' 부상하는 이유는

북, 미사일 발사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안보 문제에 있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생각해볼 때 다른 재래식 무기로는 대처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핵 대 핵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은 그래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를 억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편입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지로 대응해 왔습니다. 남한의 재래식 무기로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처할 수 없지만, 미국 핵무기의 보호를 받아 '한미 대 북한'의 구도로 핵 대 핵의 '공포의 균형'을 이룬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 능력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면서, 미국의 확장억지에 대한 불안감이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 뒤 '미국이 개입하면 미국 본토로 핵무기를 날리겠다'고 위협할 경우, 미국이 본토 피습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을 도와줄 것인가? 다시 말해,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워싱턴이나 샌프란시스코의 희생을 감수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입니다.

남한 내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로 남북 간 '핵 대 핵'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또, 한미 간 전술핵 재배치 협의와 함께 북한에 핵군축 협상을 제의해,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전술핵 배치를 중단하기로 함으로써 전술핵을 북한 비핵화의 협상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밖에도,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핵 인계철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주한미군의 전술핵 부대를 공격하게 되면 미국은 핵 보복에 나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서울을 지키기 위해 워싱턴을 희생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 현재로서는 낮아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

하지만, 현재로서는 남한 내에 전술핵이 재배치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먼저, 전술핵 재배치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이 부정적입니다. 미국은 현재의 확장억지 공약으로도 충분히 한국을 방어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주한미군 부대에 전술핵을 갖다 놓으면 NPT 위반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핵확산을 막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새로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전술핵을 주한미군에 재배치하면 핵무기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예산과 인력이 투여돼야 하는데 그것도 미국에게는 부담입니다.

사실, 미국의 핵무기는 남한에 있으나 괌에 있으나 하와이에 있으나 미국 본토에 있으나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쏴도 수십 분 내에 평양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적 차원에서 보면, 미국은 북한에게 노출돼 있는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하기보다는 핵전략폭격기나 ICBM, 잠수함에서의 SLBM을 활용하는 게 북한 타격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 지휘 하에 전숙핵부대 군사훈련

전술핵을 배치해 북한 비핵화의 협상 자산으로 쓴다는 것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생각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를 정권 수호의 최후 보루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북한이 핵군축 협상에 나선다 하더라도 남한에 배치된 전술핵만을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 미국의 핵 전략자산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비핵지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한미군의 전술핵 부대를 '핵 인계철선'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고려해 볼 대목이 있습니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워싱턴을 희생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 없게 미국의 핵 보복을 연계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남한에 핵 공격을 할 징후가 포착되는 단계라면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있다는 말인데, 핵 미사일(SLBM)을 탑재한 미국 잠수함들이 한반도 근처에 이미 전개돼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전술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한다면 미국 본토에서 대응 공격을 하기에 앞서, 한반도 근처의 미국 잠수함에서 핵탄두를 장착한 SLBM이 평양으로 날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전술핵 재배치가 북한 핵 대응에 효과적인 방법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 추진 시 막대한 사회적 비용 발생 우려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별다른 정치적 사회적 비용 없이 전술핵 재배치가 추진될 수 있다면, 북한의 핵 위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전술핵 재배치도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술핵 재배치는 우리 사회에 막대한 정치적 사회적 비용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술핵 재배치가 현실화될 경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부정하는 핵 재배치에 대해 진보 세력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전술핵 재배치는 진보-보수 간 또 하나의 이념 대립의 소재로 우리 사회에 극심한 내부 분열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사적인 효과도 불분명한 전술핵 재배치를 놓고 우리 사회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것이 맞을지는 회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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