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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사랑은 비를 타고, 인생은 아름다워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45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목의 두 영화 모두 보기를 추천합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컬 영화와 한국의 첫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가 7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동시에 극장에 걸렸습니다. 이 두 영화를 한국의 극장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영화의 본질은, 뮤지컬 영화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긴 본질은 그렇기 때문에 본질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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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마미아(2008)”가 4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라라랜드(2016)”가 360만 명, “알라딘(2019)”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뮤지컬 영화가 한국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입증됐음에도 국내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뮤지컬 영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뮤지컬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춤과 노래, 연기가 동시에 수준급으로 가능한 배우가 거의 없고, 뮤지컬 장르 영화를 제작해 본  노하우도 부족하며, 녹음 같은 기술적인 문제 등도 높은 수준의 뮤지컬 영화가 나오기 힘든 환경으로 작용한 걸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를 표방한 “인생은 아름다워”의 완성도와 대중성에 대한 궁금증이 컸습니다. 게다가 류승룡과 염정아라는 연기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스타 배우들이 1년에 걸쳐 노래와 춤을 연습했다고 했으니까요. 

"인생은 아름다워" 포스터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내(염정아 분)의 버킷리스트인 고등학교 때 첫사랑 찾기 미션 수행을 위해 무뚝뚝하고 이기적인 남편(류승룡 분)이 함께 전국을 찾아다니는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의  뮤지컬 영화입니다. 지난해 문을 닫은 추억의 서울극장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기생충”과 “로켓맨”이 걸려있는 현실의 서울극장이 두 사람이 연인이었던 그때 그 시절 “사랑과 영혼”, “장군의 아들”을 내건 서울극장으로 바뀌면서 이문세의 ‘조조할인’이 흘러나옵니다.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풋내 가득한 첫사랑~


풋풋했던 아내의 첫사랑 시절 덕수궁 돌담길 씬에서는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1985)’이, 부부의 연인 시절 생이별을 해야 했던 훈련소 입소 장면에서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1989)’가, 첫사랑 찾기가 여의치 않아진 대목에서는 김광진의 ‘편지(2000)’가 흘러나오며 관객들을 아련하게 미소 짓게 합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추억의 가요를 배경으로 구성한 스토리, 고속도로 휴게소와 서울극장 앞, 훈련소 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군무 역시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장면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투적이지만 즐길만한 상투성, 신파지만 쥐어 짜낸다는 느낌은 없는 신파,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알면서도 객석 곳곳에서 터지는 웃음과 울음. 대중 상업 영화로서의 미덕은 이 뮤지컬 영화의 단점을 많은 부분 가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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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아름다워”에 일주일 앞서 “사랑은 비를 타고(1952)”도 한국에서는 68년 만에 재개봉했습니다. 만약 20세 때 이 영화를 처음 봤다고 하면 지금은 거의 90세, 그러니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죠. 

  지난 5월 열린 칸 영화제에서 톰 크루즈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식도 있는 사람이 왜 목숨 걸고 스턴트를 직접 하죠?” 톰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진 켈리에게 왜 직접 춤을 추느냐고 묻지는 안잖아요?” 배우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톰의 태도를 보여준 이 말은 할리우드 배우 진 켈리(1912-1996)를 다시 소환했습니다.

  진 켈리 본인은 물론 영화사를 대표하는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의 3분 여에 이르는 ‘싱 잉 인 더 레인(singing in the rain)’ 씬입니다. 이 씬을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직접  본 느낌은 새로웠습니다. 크레인에서 롱 테이크로 찍은 유려한 카메라 워킹과 연애를 막 시작한 남자의 달뜬 심정을 탭댄스를 기반으로 한 춤과 노래로 정확한 동선에 담은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진 켈리는 배우이기 전에 댄서이기도 하고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 전설적인 할리우드 배우라는 사람들의 탤런트란 어마어마한 동시에 르네상스적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진 켈리는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가장 위대한 남자 배우 15위, “사랑은 비를 타고”는 가장 위대한 영화 5위(2007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도 “인생은 아름다워”란 한국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과 불과 며칠의 시차를 두고 말입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 예고편 캡쳐 (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사랑은 비를 타고”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사를 공부할 때 좋은 교과서지요. 영화 역사에서 3번의 큰 변곡점을 꼽는다면 첫째, 1920년대 토키(talkie) 영화의 출현 둘째, 1950년대 텔레비젼의 확산 셋째, 바로 지금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입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바로 1927년 최초의 장편 토키 영화인(간단히 말해 유성 영화) “재즈싱어”가 나온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무성 영화를 제작하던 한 영화사가 워너브라더스에서 만든 “재즈 싱어”가 크게 흥행하자 토키 영화 제작에 착수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사랑은 비를 타고”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토키 영화 초기에 동시 녹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현재 영화 제작 현장에서 쓰는 붐 마이크와 달리 얼마나 큰 유선 마이크를 썼는지, 이런 제약은 영화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컬러로 촬영하고 편집은 흑백 화면으로 하는 광경도 흥미롭습니다. 또 할리우드 고전 영화 시기에 메이저 스튜디오 제작자와 감독, 스타 배우  사이의 역학 관계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놀라운 장면은 바로 70여 년 전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설비였습니다. 진 켈리가 캐시(데비 레이놀즈)에게 빈 스튜디오에서 사랑을 속삭일 때 스튜디오의 조명을 켜고, 송풍기를 돌리자 그곳은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떨어지는 환상적인 밀어의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그 장면은 지금의 버추얼 스튜디오 못지않게 아름다웠습니다. ( 씨네멘터리 #36 한국영화 성공의 숨은 주역 '시각효과와 특수효과' 참고) 할리우드는 이미 70년 전부터 일종의 눈속임으로 환상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꿈의 공장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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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아름다워”는 눈속임보다는 우직하게 장르 영화의 컨벤션을 밀어붙입니다. 관객과 짜고 치는 편을 택한 겁니다. 오십줄에 접어든 류승룡과 염정아는 고등학생 때만 대역을 쓰고 이십대 대학생 시절부터 영화상 현재까지는 분장과 헤어스타일로 커버하며 직접 연기하는 무리수를 둡니다. 그런데 그 무리수가 밉지 않습니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로서 주연 배우들의 춤과 노래는 여전히 아쉽습니다. 녹음 기술 탓인지 노래 실력 탓인지 립싱크의 현장성도 다소 떨어져 영화 초반에는 그 이격에 적응하는데 애를 좀 먹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랑을 비를 타고”를 하필 비슷한 시기에 봐서 일까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원제는 “비 속에서 노래하다(Singing in the rain)”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개봉 제목은 이른바 초월번역, 그것도 성공한 초월번역인 셈이죠. 반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은 너무 안전함만 추구한 제목이라 아쉽습니다. 1999년 20만여 명을 동원했던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 1999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작과 같은 제목이지요. “사랑은 비를 타고”는 재개봉 첫날 일일 박스 오피스 6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1만 5천여 명의 관객이 들었습니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개봉작이 1만 명이 넘기도 쉽지 않으니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닙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3위를 지키며 비교적 순항 중입니다.  

   연말에는 '쌍천만' 감독 윤제균 감독의 국내 첫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영웅”이 개봉합니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창작 뮤지컬인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앞으로 어느 정도의 흥행 성적을 거둘지, 스타 감독이 충분한 제작비를 들이고 뮤지컬 전문 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해 만든 뮤지컬 영화의 만듦새와 수준은 어느 정도일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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