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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번아웃에 빠진 당신에게, 어쩌면 휴가보다 더 필요한 것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번아웃 피곤 피로 고민 불면증 (사진=픽사베이)
요즘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요즘 피로 사회라고 하잖아요.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시는 분도 많고요. 재열 님은 스스로의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서 뭘 하세요?"

그럴 때마다 항상 추천하는 저만의 루틴은 바로 '칠판 읽기'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기 직전에 저희 집 작은방에 놓인 칠판 앞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칠판 앞에 적혀 있는 글귀를 약 3분 동안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봅니다. 벌써 6개월이 넘게 꾸준히 매일 밤 하고 있는 저만의 습관인데요. 집 안에 웬 칠판이냐? 그리고 무슨 글을 읽는 것이냐? 궁금하실 겁니다. 몇 가지만 예시로 들어드릴게요.
 
"재열 씨는 상대방 마음 상태를 참 빠르게 캐치하는 것 같아."
"재열 쌤, 항상 표정이 밝으셔서 보기가 좋아요."
"어쩜 그렇게 안 늙어요? 피부가 여전히 20대 후반 같으시네?"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스쳐 지나가며 해주었던 칭찬들. 아주 소소한 것들이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간혹 제 자신이 생각했던 스스로의 장점들도 있고요. 저는 이걸 '자존감 칠판'이라고 부르곤 하는데요.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어떤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냈든, 또 얼마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하루였든지 간에, 조금은 내 마음속에 차오르는 어떤 에너지를 느끼고는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뭔가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은 허탈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 '신체적 번아웃'보다는 '정신적 번아웃'이 훨씬 더 많이 느껴는 게 사실입니다. 번아웃에도 분류가 있냐고요? 많은 분들이 번아웃 중후군 하면 체력적으로 완전히 탈진된 상태를 생각하십니다만, 사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놓인 사람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즉, 신체적 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되다가 그에 압도되어버리는 경우도 포함될 수 있는데요. 너무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다가 불안에 압도되어버린 경우도 있고요.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려 애를 썼지만 여전히 겉돌며 눈치 보다가 완전히 지쳐버린 경우도 해당될 겁니다. 또, 거절을 못하는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 일까지 다 떠맡아 해주다가 그런 스스로에게 질려버린 사람들도 있지요.

이렇게 정신적 번아웃이 오래되면 어느새 상황을 타파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거나 혐오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런 분들께 A4 용지 두 장을 나눠주고 왼쪽에는 내가 나라서 자랑스러운 점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내가 나라서 아쉬운 점, 부끄러운 점을 쓰라고 하면 왼쪽의 종이는 텅 비는 반면 오른쪽의 종이(나의 단점)는 굉장히 빠르게 써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당사자들이 너무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다거나, 문제가 있어서일까요?

그것보다는 한국 사회의 언어 습관이 만들어낸 무의식의 한 형태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요. 우리 어릴 때, 꾸지람을 듣거나 혼날 일, 즉 나의 단점을 지적받을 때 "너 똑바로 들어" "너 명심해"라는 메시지가 늘 함께 했습니다. 반면 칭찬을 들을 때는 "아니에요. 별 말씀을요"라며 고사하는 것이 겸손한 태도라고 훈련받아왔죠. 그렇게 단점을 새겨듣고 나의 장점은 고사하며 몇십 년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는 부족한 면들이 훨씬 더 많이 자리하게 되는 겁니다. 무의식에 깔린 자기 비하의 상태가 번아웃 상황을 만났을 때, 폭발적으로 극대화되는 것이지요. "노력해도 안 되네. 용써도 안되네. 내가 그렇지 뭐."라고요.

이런 분들에게 필요한 회복의 첫걸음은 '건강한 자기 인식 상태'일 겁니다. 건강한 자기인식상태란 나의 멋진 면과 아쉬운 면 모두를 5:5로 온전히 바라보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장점에만 꽂혀서 과하게 당당함으로 일관하는 '자의식 과잉'도, 자신의 단점밖에 모르는 채로 스스로를 평균 이하의 인간으로 계속 끌어내리는 상태도 모두 건강한 상태는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좋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충분히 인지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너무 기울지 않는' 중립 상태를 찾아갑니다. 오뚜기의 중심이 생기는 셈이랄까요? 내 모든 일들이 잘 풀릴 때도 "방심은 말아야 해"라며 자신을 붙잡아주는 한편, 너무 바닥을 친 상황에서도 "나 따위가 그렇지 뭐" "무엇을 해도 나 같은 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자학의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두 장의 종이위에 나라서 자랑스러운 점, 부끄러운점을 써보고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면, 저처럼 칠판 하나에 적어서 읽어가는 습관을 만드는 겁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서 칠판이 부끄럽다면 스마트폰 메모장도 좋습니다.

핵심은 매일매일 자기 자신에게 건강한 자기인식의 씨앗을 심는 그 자체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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