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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네티즌 "코로나 아닌 방역이 사람 잡는다"

[월드리포트] 중국 네티즌 "코로나 아닌 방역이 사람 잡는다"

김지성 기자

작성 2022.09.22 16:18 수정 2022.09.23 15:3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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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새벽 2시 40분쯤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의 한 산간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도로 옆으로 추락했습니다. 버스에는 47명이 타고 있었는데, 버스 기사와 방역 요원을 제외한 45명은 구이저우성의 성도인 구이양시 윈옌구 주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구이양시를 떠나 260km 떨어진 리보현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와 한꺼번에 격리 시설로 이송되던 중이었습니다. 고강도 방역 정책인 이른바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은 거주 지역에 코로나19 감염자가 한 명만 나와도 그 일대 주민을 모두 격리 시설로 보냅니다. 지난 5월 수도 베이징에서도 1만 3,000여 명이 격리 시설로 이송됐습니다. 이번 구이저우성 고속도로 버스 사고로 숨진 사람은 27명입니다. 나머지 20명도 부상했습니다. 이 사고는 중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지난 18일 새벽 구이저우성 고속도로에서 추락한 버스. 버스에 타고 있던 47명 중 27명이 숨졌다.

 

중국 4개월간 코로나19 사망자 0명…격리 시설 이송 중 27명 사망

지난 2020년 3월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시에서는 7층짜리 호텔이 붕괴했습니다. 불법 증축이 원인이었는데, 불과 2~3초 만에 호텔이 무너져 내리면서 29명이 숨지고 42명이 다쳤습니다. 이 호텔은 코로나19 격리 시설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중국에서 코로나19를 피하려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례들입니다.

2020년 3월 푸젠성의 코로나19 격리 호텔이 무너져 29명이 사망했다.

이번 버스 사고는 2년 전 호텔 붕괴 사고보다 중국인들의 더 큰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코로나19가 확산하던 팬데믹 초기 때라, 그만큼 방역이 중요했습니다. 당시엔 코로나19로 중국에선 하루에도 수십 명씩 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중국 방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 이후 4개월 가까이 코로나19 사망자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이 고강도 방역 정책을 쓰고 있어 감염자가 적은 탓도 있지만, 오미크론 등 코로나19 변이의 치명률이 낮아진 원인도 있습니다. 정작 코로나19 때문에 숨지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방역 정책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숨진 것입니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첫째 이유로 '인민의 생명 중시'를 꼽고 있습니다. 인민의 생명을 중시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인민의 생명을 앗아갔으니 불만이 클 만도 합니다. 2년 넘게 이어진 강도 높은 방역 정책으로 도시 봉쇄가 거듭돼 생계에 타격을 입는 등 중국인들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라, 이번 사고를 보는 시각이 더 곱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번 버스 사고에 대해 구이양시 당국이 사과했다는 내용의 해시태그. 조회 수가 6억 8,000만 회를 넘을 정도로 중국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새벽 버스 운행 금지' 위반…"목표 달성하려 무리하게 이송"

무엇보다 이번 버스 사고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중국은 안전을 위해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버스의 고속도로 운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버스는 구이양시에서 0시 10분에 출발해 2시간 반을 달리다 2시 40분쯤 사고가 났습니다. 중국의 도로 안전 규정을 방역 당국이 무시한 것입니다. 더욱이 버스 기사는 시야가 좁고 행동하기 불편한 방역복까지 입고 있었습니다. 한밤중 장거리 운전에, 방역복까지 입고 있었으니 운전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꼭 한밤중에 격리 시설로 옮겨야 했느냐", "몇 시간만 더 있다가 동이 튼 뒤 이송하면 안 되었느냐", "산간 고속도로가 위험한 줄 알면서 왜 새벽 2~5시 운행 금지 규정을 어겼느냐" 등과 같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밤중 격리 시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는 구이양시 주민들(사진 왼쪽). 중국은 새벽 2~5시 버스의 고속도로 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주민들의 이송을 놓고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왜 굳이 260km나 떨어진 곳으로 옮기려 했느냐는 것입니다. 구이양시는 구이저우성에서 가장 큰 도시인데, 격리 호텔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이에 대해 구이양시 당국은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중국 SNS에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문서가 올라왔습니다. '구이저우성과 구이양시 정부가 작성했다'는 문서인데, '9월 19일까지 구이양시 전역의 사회면 제로 코로나를 확보하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사회면 제로 코로나'는 봉쇄 혹은 통제 구역을 제외한 주거 지역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중국의 지방 당국은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경우 이 '사회면 제로 코로나 달성'을 제1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공교롭게 버스 사고가 발생한 18일은 이 문서가 목표로 제시한 19일의 하루 전날입니다. 때문에 중국 네티즌들은 "구이양시 당국이 방역 목표를 달성했다고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주민들을 한밤중에 구이양시 밖에 있는 다른 도시로 보내려 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가 실제 구이저우성이나 구이양시가 만든 문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중국 SNS에 올라온 문서. 9월 19일까지 구이양시 전역의 사회면 제로 코로나를 확보하라고 돼 있다.

중국 당국, 격리 시설행·사고 시간 등 제때 공개 안 해…SNS 단속

구이저우성과 구이양시의 대응도 화를 키웠습니다. 당국은 버스 사고가 났을 때 이 버스가 격리 시설로 가던 중이던 사실, 새벽 2시 40분에 사고가 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교통 사고인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위와 같은 논란이 일 것이란 사실을 당국도 예측했던 것입니다. 버스에 탄 주민 가족들의 증언과 네티즌 수사대가 찾은 증거가 속속 나오면서 당국은 18일 저녁에서야 새벽에 격리 시설로 가다 사고가 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왜 그렇게 무리하게 이송하려 했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당국은 뿔난 민심을 달래려는 듯 구이양시 윈옌구 당 서기 등 윈옌구 담당 공무원 3명을 징계했습니다.

사고 당시 버스 기사는 방역복을 입고 있었다. 사진 오른쪽은 중국 네티즌이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게시물


이들 사고 외에도 봉쇄된 지역에 갇힌 주민들이 생활고나 우울감 등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글들이 간혹 중국 SNS에 올라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이내 삭제되고 중국 관영 매체에서는 관련 보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이번 버스 사고에 대해서도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구이저우성과 구이양시의 공식 발표 외에는 별다른 속보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이번에도 SNS 단속에 나섰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는 버스 사고 관련 652개의 게시물을 삭제하고 108개의 계정을 정지시켰습니다. '사이트 정책을 위반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성난 민심은 당국의 단속을 피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방역 정책이 사람을 잡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정책을 따라야 하느냐"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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