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반도체 학과 경쟁률,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 주말(9월 17일) 2023학년도 대학 수시 모집이 마감됐습니다. 지난주부터 입시 전문가들은 이번 수시 모집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 경쟁률을 지켜보라고 말해왔습니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에 대한 입시 시장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을 거란 설명이었습니다. 오는 2031년까지 반도체 관련 인재 15만 명을 양성하겠다며 최대 2천 명까지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힌 교육부 방안에 대한 가장 즉각적이며 실질적인 피드백이란 겁니다.

2023학년도 반도체 학과의 수시 모집 경쟁률은 전년도에 비해 높아졌습니다. 11개 대학이 반도체 관련 학과를 신설해 분명히 분산 효과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기존 20개 대학의 전년도 경쟁률은 8.6대 1이었는데, 이번에 신설된 대학까지 포함한 30곳의 2023학년도 평균 경쟁률은 9.6대 1을 기록했습니다. (이번에 반도체 학과를 신설한 한국과학기술원은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신설 학과는 졸업생도, 재학생도 없어 늘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통념을 깨고, 반도체 학과를 신설한 10개 대학의 경쟁률도 11.2대 1로 집계됐습니다. 수도권, 비수도권 대학 가리지 않고 경쟁률이 모두 상승했지만, 서울 소재 대학의 경쟁률이 지방대의 3배를 웃돌았습니다. 지방대 총장들이 우려했던 수도권 쏠림 강화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최고 경쟁률은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논술 전형으로 163.9대 1이었고,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논술 전형도 155.7대 1에 달했습니다. 논술은 내신보다는 수능에 강한 학생들이 몰리는 전형이어서, N수생이 집중 공략한 걸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기업 채용을 조건으로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는 계약 학과의 경우엔 사정이 달랐습니다. 특히 연세대와 고려대에선 계약 학과의 경쟁률이 전체 경쟁률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연세대가 삼성전자와 손잡고 만든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8.30대 1로, 전년도 13.6대 1에 비해서는 크게 떨어졌는데, 연세대 전체 경쟁률 12.69대 1은 물론, 같은 학생부 위주 전형 평균 경쟁률 9.66대 1보다도 낮았습니다. 고려대가 SK하이닉스와 만든 반도체공학과도 학업우수형, 계약적합형 전형 모두 전년도보다 경쟁률이 저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종로학원의 임성호 대표는 연고대의 경우 경쟁률이 전년도보다 떨어졌지만 신설 학과로 인한 분산 효과와 눈치작전의 영향일 뿐이며,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등 신설 계약학과가 높은 경쟁률을 보인 만큼 반도체 학과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확인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연고대의 저조한 경쟁률에서 수험생들의 여러 가지 우려를 감지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정부의 15만 반도체 인력 양성 계획이 인력 공급 과잉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미국의 반도체법과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
서울이 아닌 곳에서 근무할 확률이 높다는 우려 등이 작용했을 수 있단 겁니다. 전체 반도체 학과의 높은 경쟁률은 졸업 후 취업을 걱정하는 중위권 학생들이 취업이 유리한 반도체 분야로 몰렸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 연고대 지원자의 경우엔 취업이 보장되는 계약 학과라고 하더라도 업황과 전망을 찬찬히 따져서 신중하게 지원하는 경향이 나타난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수시 모집 결과는 정시 모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시에서 나타난 반도체 학과 선호 현상은 정시 모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취업에 유리하다는 반도체 학과의 매력 때문에 수시에서 떨어진 수험생들이 재수를 각오하고 정시에도 도전할 거란 얘기입니다. 또 반도체 관련 학과가 의·치·약학계에 이어 상위권 학생들의 선호 그룹으로 자리 잡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수험생들이 수시 모집 결과를 활용해 정시 모집에서 어떤 지원 전략을 세울 것인지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시에 2023학년도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시 경쟁률은 수능을 앞두고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뿐 아니라, 정책 입안자들의 입도 바짝바짝 마르게 하는 지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