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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핵우산, 믿을 수 있나…핵무장은 불가능?

북한 김정은

북한이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핵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핵 무력의 사명과 구성, 지휘통제 등을 법령으로 규정했습니다. 법령에서 제시한 '핵무기 사용조건'은 모두 5가지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륙무기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 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해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주목해 봐야할 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작전상 필요'라는 문구에서 보듯 북한이 언제든 선제 핵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명문화해놨다는 점입니다. 특히 지휘기구,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이나 기타 자신들이 봤을 때 치명적인 공격 징후가 있으면 꼭 핵 공격을 받은 게 아니어도 핵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협의체 재가동

이렇게 북한의 핵 위협이 노골화되면서 한미 당국자들도 바빠졌습니다. 이미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긴 하지만 북한 핵 법제화 발표된 뒤 (현지시간 1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북핵 대응을 위한 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열렸습니다. 2018년 1월 이후 4년 8개월만에 다시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 핵 공격이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협의됐습니다.

'확장억제'라는 말은 '확장된 억제력'이란 뜻으로 미국의 핵 억제력이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에게까지 미치도록 한다는 미국의 방위공약입니다. 흔히 말하는 '핵우산'입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크지 않은 분들을 위해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핵 억제력은 이른바 '상호확증파괴' 개념을 바탕으로 합니다. 적국에서 핵 공격을 감행하면 적국 역시 핵으로 보복 공격을 당해 양측이 모두 멸망하게 되므로 결국 이를 피하기 위해 서로가 핵 사용을 자제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국이 2차 대전에서 핵을 사용한 뒤 소련과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여러 나라가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후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상호확증파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투발수단, 그러니까 핵 공격을 당한 뒤에도 살아 남아 적국을 타격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나 극초음속미사일, 스텔스기, 전략폭격기 등 각종 첨단 무기 개발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합니다.

한미 외교·국방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

미, 핵우산 재강조…"핵 포함 모든 능력 동원"

사실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어 미국의 핵우산 공약이 전부터 적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은 점점 실체화 하고 있는데 반해 핵우산 공약은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자, 정부가 북미, 남북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중단됐던 확장억제전력협의체의 재가동을 미국 측에 요구하면서 다시 협의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한미 외교∙국방 2+2 고위급 확장억제협의체 논의에서 미국은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와 진전된 비핵능력 등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대한민국에 확장 억제를 제공한다는 핵우산 공약을 재강조했습니다. 또 대북 억제와 대응과 역내 안보 증진을 위해 전략 자산의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인 역내 전개와 운용이 지속되도록 우리 나라와 공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례로 지난 7월 F-35A 5세대 전투기 연합 훈련과 곧 있을 로널드 레이건 항모강습단의 역내 전개를 꼽았습니다. 한미 양측은 또 도상연습(TTX)을 더욱 잘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핵과 비핵 위협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고 훈련과 연습 증진을 통해 전략적 준비태세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밖에 한미 동맹의 미사일 대응 역량과 태세는 물론 우주·사이버 등 확대된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관련 공조도 넓혀 나가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 내용이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끝난 뒤 발표된 공동성명의 내용입니다. 뭔가 좋은 얘기가 많은 것 같긴 한데 다 원론적 수준인 같아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라는 물음이 따라 붙기 쉽습니다. 하지만 당국자들은 협의체 회의 후 '공동 성명'이 발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미를 강하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협의를 통해 우리나라는 북한 핵 위협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해진 걸까요?
 

우리 목소리 반영, 협의 체계화…비물리적 타격도 논의

핵우산 공약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미국이 핵우산을 작동 과정에 과연 우리가 얼마나 관여할 수 있느냐 입니다. 위협이 눈앞에 닥쳐도 그저 미국이 뭔가 해주기만 바라고 있어야 하는 식의 공약이라면 그저 공약(空約)에 그칠 수 있습니다. 우리 측 고위 당국자는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해 이번 협의에서는 원론적 논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북핵 대응 방안을 몇 개 분야로 나눠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정보공유, 공동기획, 위기협의, 연합연습, 전략자산 전개, 전략대화 방안 등 모두 6개 분야로, 이렇게 협의 내용을 체계화함으로써 북핵 위협 진행 상황에 따라 관련 정보를 얻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데 있어 우리의 요구 사항을 미국 측에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물론 핵 우산 작동 과정에서도 우리가 직간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핵우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 즉 미국 본토가 공격당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과연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겠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도 답을 내놨습니다. 미국 측이 이번 협의를 계기로 방문한 우리 대표단을 미사일 방어청으로 초청해 미군의 본토 방어 능력을 브리핑해줬다고 말했습니다. 미 본토를 향한 공격이 실행된다 해도 충분히 막을 능력이 있는 만큼 미국이 확장억제, 즉 핵우산을 제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이 밖에 이번 협의에서는 북한의 핵 공격 징후 감지 시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방법 대신 비물리적 방법으로 핵 공격 시도 자체를 좌절시키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전했습니다. 선제 타격은 상대의 공격 의도가 분명한 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 정당한 공격이었다고 해도 확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부담이 큰 단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논의된 비물리적 타격 방법은 우주, 사이버, 전자기 등을 활용한 것으로 군 당국자는 확장 억제 관련 새로운 분야에서 한미 간 협력이 진전된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미 양국이 우주나 사이버 능력을 활용해 북한의 핵 공격 징후를 사전에 탐지, 평가하고 공격 의도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북한 핵 공격 전에 사이버나 전자전 등을 통해 발사 시설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이런 논의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고위급 확장억제협의체를 매년 개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북한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이에 맞춰 대응하기 위해서는 협의를 정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일부에서 이미 군사동맹이 작동하고 있는 마당에 옥상옥 같은 이런 협의체가 과연 필요하느냐, 보여주기식 이벤트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미국 측에서도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우리 대표단에게 시간을 낸 걸 보면 한미 양측이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제3차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

핵우산 공약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이번 협의에 대해 우리 정부는 성과가 작지 않다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당국자들 설명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미국의 핵우산 공약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많은 분들의 지적처럼 이번 협의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협이 현실화 됐을 때 미국이 어떻게 움직일 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목소리를 좀 더 체계화해 미국 측과 협의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또 각종 안전 장치를 만들어 놨지만 일이 닥쳤을 때 핵우산을 펼칠지 말지 결정하는 건 미국입니다. 미사일 방어로 본토 방어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 것 역시, 요격 확률이 100%가 아닌 한 단 한 발로도 수십, 수백만의 자국민 목숨이 증발할 수 있는 핵 공격의 위험을 미국이 정말 감수해줄지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그럼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공유는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들은 한 고위 당국자의 설명대로라면 이 역시 무망하기는 마찬기지입니다. 설사 한반도에 핵미사일을 다시 갖다 놓고 독일 전투기에 미국의 핵미사일을 달아 놓는다 해도, 결국 그 핵무기를 쓰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정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핵 미사일을 쏠 수 있는 미국에게 중요한 건 정말 핵을 쓸 마음이 있느냐는 거지, 핵무기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두느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핵우산은 정말 찢어진 우산에 불과할까요? 그렇게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전문가들 평가에 따르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 중에 실제로 이를 사용할 위험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게 북한입니다. 미국 역시 북핵에 미리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북한이 실제로 핵을 썼을 때 미국이 핵이 됐든 재래식 무기가 됐든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에 대해 명확한 군사적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미국이 우방국들을 향해 펼쳤던 핵우산은 그 즉시 폐기되고 동시 다발적인 핵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이 핵우산 공약을 공약(空約)으로 두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B-52 앞에 선 신범철 국방부 차관과 미측 인사들 (사진=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자체 핵무장은 불가능한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 안보를 다른 나라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건 불안한 일입니다. 핵무장 주장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싱크탱크에서 한국 핵무장 시나리오가 언급된 적도 있습니다. 인도나 파키스탄의 전례를 보면, <자체 핵 개발 → 국제 사회 제재 → 제재 해제 →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 획득> 방식이 가능합니다. 핵심은 제재 해제인데 이는 강대국과 이해타산에 맞을 경우에 한합니다. 인도도 핵 무장 뒤 미국의 제재를 받았지만 역시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필요에 따라 제재가 풀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복잡한 국제관계를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당장 우리 내부 사정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지만 제재로 교역이 막힐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얘기입니다. 핵도 무섭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게 끊기는 게 핵보다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입니다. 국민 상당수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핵무장에 나서고자 할 경우 국민 분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똘똘 뭉쳐 핵 보유를 주장해도 견디기 힘든 판국에 내부 분열까지 더해진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서 있는 우리의 현주소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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