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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이언트 스텝' 앞에 '베이비 스텝'…한국은행은 고장난 신호등?

김용철 취재파일용

"냉면 값 3만원 받아야"…가속도 붙는 물가상승세

지난 주말 오랜만에 청와대로 가족 나들이를 한 뒤, 서울 사직 터널 위에 있는 평양 냉면집을 찾았다. 메뉴에 적힌 냉면 한 그릇의 가격은 그대로 1만6천원, 냉면 집 사장님에게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수지가 맞는 지 물었다.

평양에 살다가 남편을 제외한 온 가족이 귀순해 정착한 사장님은 "수지를 맞추려면 냉면 한 그릇에 3만원은 받아야 합니다.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라서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재료비와 인건비가 너무 올랐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20만원 이상을 요구합니다. 갑자기 냉면 값을 올리면 안될 것 같아서 남들이 다 올릴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어쩔 수 없을 때 올리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5.7%로, 7월 물가상승률 6.3%보다 0.6%p 하락했다. 국제유가가 전달보다 하락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률이 둔화된 영향이다. 물가 상승률이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의 목표치 2%보다 세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가격변동이 심한 식품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도 4.4%가 올랐고, 소비자들의 1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율도 4.3%를 나타냈다. 인플레이션 심리가 확산해 서비스 요금이 상승하면 앞으로 물가 안정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용철 취재파일용

국내 소비자물가의 상승은 국내 농산물의 작황이 좋지 않은데도 원인이 있지만, 우리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 그리고 여기에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환율이 한 몫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올 들어 달러당 2백원이나 올랐다.

한국은행은 현재 4천3백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이른바 '도시락 폭탄'을 던지며 환율상승 속도 저지에 나서고 있다. 원-달러 환율 1천4백원을 최종 방어선으로 하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보유 달러를 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방어선이 뚫리면 환율은 1천450원 위로 수직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4개월 연속 계속된 무역수지 적자와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매입, 여기에 외국인 채권투자자금마저 본격 이탈한다면 환율이 더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주 21일 미국이 또 기준금리를 0.75%p 이상 올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가 확대된다면, 한국은행이 환율 방어선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8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천364억 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작년 10월 말 4천692억 달러보다 328억 달러가 줄었다. 지난달 말 현재 외국인의 국내 주식과 채권 보유 규모는 862조원, 올들어 주식은 15조원을 순매도한 반면 채권은 10조원을 순매수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가 크게 확대되면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이 본격화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감소하고 환율은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용철 취재파일용

미국, 이번 주 또 자이언트스텝…한-미 금리차 100bp로 확대?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번 주 20일과 21일 연방공개시장조작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당초 0.5%p 인상을 점쳤던 미국 금융가는 0.75%p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0.75%p 인상이라는 자이언트스텝을 넘어 1%p(100bp) 인상이라는 울트라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제 유가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8.3%로 7월 8.6%에서 소폭 하락하는데 그쳤다. 식료품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 물가지수는 6.3%로 전달의 5.9%보다 오히려 올랐다. 물가상승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1%p의 금리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연준이 9월 기준금리 인상에 이어 두차례 더 금리 인상을 단행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4.5%가까이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로 0.25%p 인상했다. 잠시 미국보다 낮았던 기준금리를 미국과 같은 연 2.5%로 맞춘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0.25%p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베이비스텝'을 발표하면서 "당분간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금리 역전이 발생해도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세차례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의 기준금리보다 낮은 시기가 있었지만,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은 크지 않았으며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금이 순유입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연준은 오는 21일 기준금리를 0.75%p 이상 인상하는데 이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인상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 연말까지 두번의 금통위를 남겨 두고 있는 한국은행이 0.25%p 금리인상이라는 베이비 스텝을 계속할 경우 이번 달 0.75%로 벌어지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는 더욱 확대되고 금리 역전은 장기화 된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전세계적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고, 한국의 무역수지마저 적자를 내고 있어 외국인 투자자금이 크게 이탈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용철 취재파일용

한은, "금리 역전돼도 자본유출 크지 않다" vs "지금은 다르다. 방심은 금물"


한국은행은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8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성이 있다.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는 높은 인플레이션의 지속 정도와 경제성장의 흐름, 자본유출입 및 금융안정,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결정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소폭의 금리인상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한-미 간 정책금리 역전이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1) 1999년6월~2001년 3월 2) 2006년8월~2007년 9월 3) 2018년3월~2020년2월 세 차례의 한-미 기준금리 역전 기간 동안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은 미미하거나 오히려 순 유입됐다고 밝혔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한-미 금리 역전 기간 중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은 오히려 큰 폭으로 유입됐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한국의 기준금리(검정)과 미국의 기준금리(파랑))
하지만, 지금의 경제상황은 과거와 달라 과거 사례에 대한 평면적인 분석을 토대로 앞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물론 유럽도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커지고, 금리 역전 기간이 길어질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은 이탈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성희 전 JP모건체이스은행 서울지점장은 "한국의 경제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았고,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했던 과거와는 다른 상황이다. 지금은 미국이 오랫동안 가파르게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1회성 금리 역전이 아니라 금리 역전이 계속된다면 다른 얘기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금리를 올리면 주가가 올라간다. 반대로 경기가 불안할 때 금리를 올리면 주식에서 채권으로 자금이 이동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주식과 채권 투자자금도 불안할 때는 당연히 미국으로 이동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금리역전에도 증권투자자금이 크게 이탈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근거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15조원이 이탈한 주식투자자금과 달리 10조원이 순 유입된 채권투자자금이다. 이성희 전 지점장은 "국내에 남아 있는 채권투자자금의 80%는 재정거래(arbitrage) 자금이다. 이들 자금은 국내에 들어올 때 국내 은행들과 달러를 주고 원화를 사는 외환스왑(FX-swap)을 하는데, 달러 구하기가 어려우면 외환스왑 시 국내 은행들이 달러에 대해 금리를 더 얹어 주기 때문에 금리 차가 적을 경우 국내 유입은 더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미국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한 뒤 재투자하지 않고 상환 받아 가져 간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손실이 나더라도 보유 채권을 만기 이전에 팔아 나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계속 늘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채권 보유 규모는 지난 한달 동안 1조8천억원이 줄었다.

외국인채권투자자금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 중앙은행들의 자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과거 금리 역전 시 외국 중앙은행들의 채권투자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과거 원화가 강세를 보일 때 얘기지 지금과 같은 달러 강세 시기에는 다르다는 것이다.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를 다각화 하는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채권 투자자금은 환차익은 노리지 않지만,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판단할 때는 보유 채권이 만기가 되면 상환하고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때 국내 채권투자의 큰 손 이었던 템플턴자산운용이 철수하면서 금리 차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겨냥하는 민간채권펀드(active fund)의 국내 채권 보유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투자 상품 보유 현황)

"꼬이는 외환수급, 환율상승 심리가 문제"…총체적 대응 전략 절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350원 선을 위협받자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브리핑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1,340원까지 치솟은 환율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하실 것 같다. 달러 강세, 원화 약세의 통화 상황이 우리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리스크 관리를 잘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9월 첫날 1,354원으로 1,350원대를 뚫고 상승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4일 1,390원대로 상승하며 1천4백선을 위협하고 있다. 1천4백원 선이 뚫리면 1천5백원까지 급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시간 오는 21일 미국 연준이 또 한번의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경우, 주가 하락과 함께 환율이 더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최근 환율상승이 투기적인 요인 보다는 기본적인 달러 수요 증가에서 초래되고 있다는 데 있다. 무역수지 적자가 4개월 연속 지속되면서 결제 수요가 계속되고, 해외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달러 가뭄이 계속되면서 대규모 수주가 이어지고 있는 조선업계는 선물환을 사줄 금융기관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달러 강세 속에 금리인상만으로 환율을 잡을 수도 없는 상황도 문제이다. 전세계 외환거래 규모가 하루 2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데 한국의 외환거래 규모는 하루 1백억 달러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김용철 취재파일용

이성희 전 JP모건체이스은행 서울지점장은 "기본적으로 달러수요가 많다는데 환율상승 요인이 있다. 기업들의 달러 수요는 계속되는데 한국은행은 소극적으로 개입하고,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은 해외증권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는 과감히 개입하고,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해외주식투자를 할 때 지금처럼 환 헤지를 하지 않고 달러를 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 헤지를 하도록 하고, 환 헤지를 하지 않은 해외투자 자금에 대해 선물환 매도를 해서 달러의 수급을 조절하고 환차익도 얻도록 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해외 자산에 대한 환리스크를 헤지(hedge)한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쇼크(shock)가 발생하면 해외투자자산의 가격이 하락하고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따라 달러-원 환율이 상승한다. 이런 경우 해외투자자산에서의 평가 손실과 함께 해외외화자산변동분(감소)과 선물환의 외화부채(고정)의 불일치(선물환포지션의 초과 매도 oversold position)로 이중의 손실을 발생시킨다. 이를 회피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환리스크를 헤지하지 않고(open fx risk) 투자해, 투자 수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공격적인 환리스크 관리기법을 매크로 헤징이라고 한다. 공격적인 헤지펀드(Hedge Fund)나 액티브펀드(Active fund)들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외환 헤지를 하지 않고 해외 투자를 할 경우, 달러를 사는 매입 수요만 유발해서 환율을 더욱 오르게 한다. 반면 해외투자를 위해 달러를 사는 만큼 미리 선물환을 팔거나 외환스왑을 통해 환헤지를 하면 달러 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이성희 전 JP모건 서울지점장은 "공적기금인 국민연금의 현재와 같은 전략은 지속적인 대규모 달러 수요로 원화를 더욱 약화시키고 국내거시경제의 불안도 가중시킨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에 대한 '노헤지(No hedge)' 전략이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제는 분명 거시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환리스크 관리방식에 적절한 유연성(Flexible dynamic macro hedging strategy)을 부여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달러화가 고평가됐을 경우 추가적인 해외자산 투자 시 노헤지 전략이 아닌 스와프로 집행하고, 과거 '헤지하지 않은(unhedged)' 일부 포트폴리오에 선물환 매도를 통한 환차익을 실현한다면(선물환의 공급은 현물환의 공급과 같이 외환의 공급이다) 국민연금의 실질적 수익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민연금의 선물환 공급은 달러-원 환율의 추가적인 급격한 상승을 억제해 외환시장 불안 해소와 거시경제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규모는 882조원, 이 가운데 34%인 3백조원을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경우 환차익을 거두고, 금융시장의 안정에 기여할 수도 있다. 앞으로 일정 시점에 환율이 하락세로 접어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외화투자손실을 막을 수도 있다. 정부나 한국은행도 말로만 금융안정을 외치지 말고, 시장의 수급을 해소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불확실성 요인으로 제시한 미국 연준의 긴축 속도 가속,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확전, 중국 경기 부진 심화 가운데 어느 것도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조짐이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 귀를 기울이고 구호보다는 실질적인 조치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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