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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국 우선주의'…문 걸어 닫는 거인, 어디로?

[월드리포트] '미국 우선주의'…문 걸어 닫는 거인, 어디로?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었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출범 후 동맹 복원을 외치며 전 정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전통적 우방인 유럽(NATO)과 일본, 우리나라도 방위비 분담금이나 교역 분야에서 상당 부분 숨통이 트였습니다. 하지만 중간 선거를 앞둔 요즘, 바이든 대통령의 입에서 동맹보다는 국익이 훨씬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표심을 노린 선거용 정책들이 쏟아지는 과정에서 미국 우선주의가 되살아나고 소위 동맹국이라는 나라들에게 까지 위협이 되는 지경이고 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더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시듯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연일 'Made In America'…말 따로 행동 따로


미국산도 아니고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최종 생산된 차량에게만 세액 공제 혜택을 해주도록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 정부조차 항의하는 교역 상대국들에게 딱히 해명할 명분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만큼 명백하게 세계무역기구 WTO 규정을 위반한 법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EU와 일본도 문제를 제기했고 우리나라 및 EU와는 이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협의에 나서기로 한 상태입니다.

미 백악관과 정부, 의회까지 모두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해결방안을 모색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의 수장인 바이든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을 찾아 이 법을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특히 제조업 재건과 일자리 창출, 기술력 확보 외치며 미국 내 생산, 'Made In America'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전기차, 반도체 미국 내 생산

현지시간 14일에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2 북미 오토쇼'에 참석해 직접 미 전시 차량에 올라 운전대를 잡는 등 미국산 전기차 세일즈에 나섰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이 전기차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찾아오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홍보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 후 지지율 상승 효과를 보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행보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동맹국 입장'에서는 미 정부 스스로도 딱히 변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조항이 담긴 법을 연일 홍보하고 다니는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이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기술 빼갈라…미, 외국인 자국 내 투자 심사


자국 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고 보면 미국이 'Made In America'를 강조하는 것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경제력과 기술력, 국방력 등 모든 면에서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를 강조하는 데 따른 여파는 여느 선진국과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미국의 기술이나 자본, 혹은 그 시장과 무관하게 자국 산업을 운영할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국 내 투자 유치를 강조하던 미국이 이번에는 외국인 투자를 철저히 감독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한마디로 외국인 투자는 받되 미국에게 유리한 투자만 골라 받겠다는 얘기입니다. 백악관은 현지시간 15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미국은 투자에 열려 있고, 외국인 투자로 수백만의 미국인 노동자가 혜택을 보고 있다"면서도 "경쟁자 혹은 적국으로부터의 특정 투자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위험이 된다는 것을 오랫동안 인지해 왔다"며 행정명령 발동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미국 소비자물가, 생산자물가 급등

행정명령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외국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핵심 공급망, 첨단기술, 투자 동향, 사이버보안, 미국인의 개인 정보 보호 등 5가지 요인을 고려하라는 지침을 담았습니다. 이번 행정명령이 목표로 하는 건 역시나 중국입니다. 다만 중국만 특정하면 WTO규정에 위배되다 보니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입니다. 중국이 가장 큰 경계 대상인 건 틀림없어 보이지만 중국만 대상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미국이 핵심 군사 정보까지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즈'에 속한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외국인 투자 평가 때 '예외 국가'로 지정돼 있습니다. 미국과 협조가 잘 된다는 것으로 해당 국가가 안보 위험을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국과 핵심 동맹국이면 투자 평가에서도 예외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좀 다릅니다.

TID 즉, Technology, Infrastructure, Data 분야 중 핵심 기술에 투자할 경우, 이들 국가도 모두 CFIUS에 신고하고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CFIUS가 발간한 연례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핵심 기술 거래 총 184건이 심사됐는데, 국가별로 보면 독일(16건), 영국(16건), 일본(15건), 한국(13건) 등으로, 파이브 아이즈에 속한 '예외국' 영국의 심사 건수가 2번째로 많았습니다.
 

기술 넘길라…미, 자국 기업 외국 투자 심사도 강화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는 물론 미국 기업의 국외 투자까지 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첨단 기술을 중국 등 경쟁국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수출 통제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만큼 가장 민감한 분야에서 경쟁국의 기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투자는 걸러 내겠다는 겁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최근 미국 기업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할 때 안보 위험을 심사해 투자 자체를 막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백악관이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바 있는데 이와 유사한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입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행정명령이 기술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CFIUS가 미국 투자자를 약탈적인 외국인 투자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추가 조치가 필요한지 계속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은 국내에서 국력의 원천에 투자하는 현대적인 산업·혁신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에서 미국의 힘의 동력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 전략이 △과학·기술 생태계 투자 △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인재 양성 △ 기술 우위 보호 △ 동맹·파트너십 심화와 통합 등 4개 기둥으로 구성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상당히 구체화된 걸로 보입니다.
 

문 걸어 닫는 거인…빛바랜 옛 영화(榮華)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다시 세계의 리더를 자처하며 동맹국 규합에 나서는 등 전 정부와는 다른 면모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를 계기로 '미국 우선주의'로 회귀하는 모습을 뚜렷이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11월 중간선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행보가 넓고 또한 노골적이기까지 합니다. 군사, 경제 모든 면에서 초강대국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던 예전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뭔가에 쫓기듯 계속 닫아걸고 뺏기지 않을까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그 기저에는 미국 내부에서 스스로만 잘하면 얼마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세계 1위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수세적으로 변하고 있는 지금의 미국에서 과거 초강대국으로 리더를 자처했던 옛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미국 정가에서는 종종 중국과의 경쟁을 의식해 '거인이 깨어났다'며 미국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적극적으로 뻗어 나가길 멈추고 대신 안에서 걸어 잠그는 방식으로 중흥에 성공한 나라가 있었는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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