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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꼭 꿈을 이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 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발자국 발걸음 (사진=픽사베이)
2017년 겨울, 한 차례 사업이 망하고 방송국들이 모여 있는 서울 상암동 공사 현장에서 건설 노동을 하고 있었다. 비록 몸은 먼지로 가득한 건물 지하에서 건설 자재를 나르고 있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마음만은 항상 뜨거웠다. 그러던 중 친구 하나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형, 우리가 항상 뜻하던 일이 있잖아. 사람들에게 따뜻한 나눔을 줄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거. 내가 직장인이니까 지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작은 가게부터 먼저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내 손으로 건물 하나를 지어 올려볼까 했지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 길로 건설 현장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 곳곳에 내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찾지 못했고, 나는 궁여지책으로 밤일을 구할 처지가 되었다. 낮 시간에는 가게를 알아보고 연락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 활용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서울의 밤은 내게 고요하고 길었다.

당시 홍대 근처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홍대 거리와 문화에 눈길이 갔다. '홍대'라는 이름이 주는 분위기만으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동네였다. '홍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클럽',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기에 클럽 외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조명과 쿵쿵-거리는 음악은 나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난 영어도 곧잘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니 클럽 문지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곧장 가드 지원서를 보냈는데 덜컥 연락이 왔다.

"키가 어떻게 되시죠?"
"예? 아 176이요."
"음... 일단 한 번 와보세요."

그렇게 찾아가 클럽 매니저와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클럽 가드의 일원이 되었다.

"근데 저기요. 큰형님께서 좀 뵙자고 하시는데요."

'참나...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무슨 큰형님 작은형님 찾고 있나' 속으로 중얼중얼 거리며 지하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계단 끝에 자리한 바 의자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거구의 사내가 앉아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깍두기 머리, 키도 내 위로 머리가 하나 더 있는 엄청난 거구였다. 위압적인 분위기와 다르게 깊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었다. 계단 끝에 첫발이 닿자마자 나는 "큰형님! 안녕하십니까!"라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내 나름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으며 지내왔던 터라 사람 무서워한 적이 없었는데, 큰형님의 눈을 보는 순간 인사가 자동으로 나왔다. (동요 숲속 호랑님의 생일 무도회도 현실은 호랑님한테 인사 90도로 박고 시작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처음 맞닥뜨린 클럽은 내게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술에 취한 진상 손님을 끌어내기도 하고 나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큰 손님 앞에서도 주머니에 손을 꽂고 주눅 들지 않기 위해 인상을 찌푸려댔다. 가끔 취기와 객기로 달려드는 손님과 몸이 엉켜 그들이 휘두르는 손에 맞기도 했다. 밤이 새도록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손에 든 물 한 병을 제외하고는 무언가를 먹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클럽에 온 손님들이 번쩍거리는 불빛과 신나는 음악만 기억하고 나갈 수 있도록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밤새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지하 2층도 아침 7시가 되면 새로운 모습이 됐다. 출구 계단 위 샹들리에 조명에 불이 켜지고 윤종신의 '좋니'가 흘러나오면,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던 사람들이 마법에 풀려난 두꺼비 왕자처럼 겉옷을 챙겨 또각또각 똑바른 걸음으로 클럽 밖으로 나섰다. 마지막 손님이 문밖으로 나가면 이윽고 "하~이! 굿모닝!!"을 힘차게 외치며 청소하시는 이모님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이모님을 향해 달려가 안기면 이모님은 수고했다며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밤새 춤추던 한 친구는 탈진한 채 소파에 몸져누우면 매니저가 슬며시 다가가 코트로 몸을 덮어주었다. 검은색 복장에 무서운 얼굴을 하던 가드들도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아침 돈가스를 함께 먹을 동료를 구하기 위해 구애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클럽의 밤과 아침은 냉탕과 열탕만 있는 목욕탕 같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지라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고 사는 모습이 다 비슷했다.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슬픔을 나누고, 기쁨은 함께 했다. 우린 종종 큰형님의 옥탑방에 모여 고기를 구워 먹으며 큰형님의 흥미진진한 건달 시절 이야기도 듣곤 했다. 대부분 큰형님 오른손 한방에 떨어져나간 녀석들 이야기였지만 늘 재미있었다. 내가 깐풍기 가게를 차리기 위해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했을 땐, 진지하게 나의 뜻을 이해해주시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큰형님의 꿈은 떡볶이 가게를 차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린 일로 만났지만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나의 사수 A 씨는 낮에는 연극 무대에 섰고, 2인자 B 씨는 격투기 체육관을 운영했다. 낮엔 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C 씨, 경남 창원에서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막내 직원 등 많은 이들의 꿈이 모인 도시 서울에서 자신의 꿈을 한 번 쏘아 올리기 위해 우린 차가운 겨울바람을 클럽 계단 한켠에서 맞고 있었다. 낮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밤을 깨우는 사람들. 천만인이 살아도 외롭다는 서울에서 그들 덕분에 조금은 외롭지 않았다.

3개월 짧은 만남을 끝으로 나는 망원동에 가게를 차렸다. 6평의 작은 가게에 맘씨 좋은 사장님이 남는 것 없이 퍼주며 장사를 한다고 입소문이 났는데, 정말 남는 게 없어서 1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NGO나 기업까지는 못 되었지만 따뜻한 나눔은 있었다.

며칠 전 예비신부의 짐이 집에 들어왔다. 짐 정리를 하다가 클럽에서 입었던 검은색 정장이 눈에 들어와 주섬주섬 몸에 걸쳐보았다. 소방서에서 주는 밥 꼬박꼬박 얻어먹고 다녀서 그런지 허벅지와 엉덩이가 꽉 끼이는 게 폼이 나지 않았다. 거울 너머로 촛불처럼 흔들리는 그때의 내 모습이 보였다. 불안정해 보이긴 해도 나름 심지가 있었다. 저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싸한 취미 하나가 없다.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무언가를 좋아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까마득하다. 이젠 결혼도 할 예정이고 안정적인 직장에 좀 더 넓은 집에 살지만 그때가 때론 그립다.

옷매무새를 다듬다가 거울 속 클럽 문지기가 물어왔다.

"잘 살고 있냐?"

나는 대답했다.

"응 그래도 잘 사는 거 같아. 꼭 꿈을 이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인-잇 #인잇 #시골소방관심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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