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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까지 올라간 '사과의 땅'…기후 변화에 식량 '위협'

<앵커>

전국에서 사과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이 경북 지역인데, 얼마 안 있으면 강원도가 주산지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따뜻할 때 자라는 벼도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해지면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데, 기후 변화로 달라지고 있는 농업 현장을 김흥수, 서동균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기자>

제가 서 있는 이곳은 강원도 양구군 최북단 해발 고도 1천m의 을지전망대입니다.

바로 앞으로는 북한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양구군 해안면 일대 일명 '펀치볼' 지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최접경 지역이 사과의 고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드넓은 분지, 산비탈마다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갑니다.

[김홍식/사과 재배 농민 : 그전에는 여기 (사과 농사) 엄두도 못 냈었고 추워서. 사과나무 심겠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여기서 사과가 되겠냐? 겨울에는 엄청나게 추웠죠 여기. 밖에 나와서 눈 치우다가 기운 다 빠질 정도였죠.]

하지만 한 집 두 집 늘던 사과 농가는 이제 100가구가 넘습니다.

사과는 연평균 기온 8~11도에서 최적의 생육을 보입니다.

단단한 과육과 높은 당도를 위해서는 일교차 또한 커야 합니다.

해안면은 혹한의 최전방이었지만 연평균 기온이 10.4도까지 오르면서 사과 재배의 최적지가 됐습니다.

[신동철/양구군청 농업지원과 주무관 :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영하 25도까지 내려가서 사과 재배가 불가능했습니다. 이제는 양구가 일교차가 커서 사과를 재배하기에 적지로….]

이렇다 보니, 점점 더워지는 남쪽 사과 주산지를 떠나 양구로 이주하는 농민들도 늘고 있습니다.

[심정석/경북 청송에서 이주 : (남쪽 지방은) 열대야 일수가 늘어나니까 홍로의 저장성이 급격히 떨어져서 부사만 농사지을 수 없고 해서 올라오게 됐습니다.]

평생 사과 농사만 지은 최원근 씨도 마지막 종착지로 이곳을 택했습니다.

[최원근/50년간 사과 농사 : (어떻게 강원도 양구까지 오신 거예요.) 경북 봉화에서 시작해서 충남 예산, 남원, 무주… 전국으로 다니다가 여기까지(왔습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가시죠? 여기도 끝나면?) 이제 더 갈 데가 없는데….]

해안면 전체 농지 중에 사과밭 비중이 15%까지 늘었습니다.

경작지 통계를 보면 강원도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사과 재배가 급증한 반면, 전통의 주산지 경상도 지역은 서서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0년에 0.3도꼴로 오르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가 이대로 진행될 경우, 2050년에는 강원 산간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하고 2070년 이후에는 국내 사과 재배 가능 지역이 거의 남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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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균 기자>

추수를 앞둔 논인데,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얼룩이 져 있습니다.

벼에 세균벼알마름병이 생긴 겁니다.

벼

[농민 : 이건 완전히 그냥 쭉정이로 전혀 그 뭐 짐승도 못 먹고 아무것도 쓸모없는….]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잘 발병하는 세균성 병입니다.

이런 피해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여름 날씨가 점점 고온 다습해지는 게 주원인입니다.

[농민 : 기상이 앞으로 이렇게 돼서 어떻게 대처를 해서 나가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 건기와 우기로 나눠진 것 같아.]

28도와 35도에서 세균을 배양해 벼에 접종해보니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최수연/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 : 33도에서 보시면 28도에서보다 이삭이 초록색인 것보다 이제 갈색으로 많이 나오는 것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세균도 문제지만, 기온이 높아지는 것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국립식량과학원이 연구한 결과, 고온 조건에서 유전자 발현량이 줄어들면서 벼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온난화가 지속되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 식물의 광합성이 활발해지기는 하지만, 고온이 생장에는 훨씬 부정적이라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량은 증가하고 집중호우가 빈번해지는 것도 걱정입니다.

잦은 비로 벼의 이삭이 계속 젖어 있게 되면 싹이 일찍 트는데, 이러면 식용으로도 이듬해 종자로도 쓸 수 없습니다.

고온과 세균, 태풍에 잘 견딜 수 있는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가긴 쉽지 않습니다.

[이충근/국립식량과학원 박사 : (기후변화로) 벼 수량은 감소하는 쪽으로 나오고 있어요. (이에 대비할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고. 이렇게 하고 있지만 기후 변화라는 게 더 심화되는,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지금 당장 쌀 수급에 차질을 주지는 않지만, 미래에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45%, 곡물 자급률은 20% 수준으로, OECD 가입국 중 최하위입니다.

농작물 수입도 한두 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그 나라에 기상 이변이 생길 경우 식량 안보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남재철/한국농림기상학회장 : (기후변화로 외국도) 생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 생깁니다. 대표적으로 미국하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런 나라부터 곡물을 수입하는데 거기에 허리케인이 온다든가….]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우리가 늘 먹던 음식들이 식탁에서 하나둘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세경·김승태, 영상편집 : 김준희·박선수, 디자인 : 반소희·서승현·임찬혁·조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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