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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생에 던져진 그들…연민 아닌 '권리' 필요할 때

[취재파일] 야생에 던져진 그들…연민 아닌 '권리' 필요할 때
 
"폭력은, 상대를 섬세히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태도야."

인터뷰를 부탁하자 제 오래된 친구는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글귀를 인용하며 거절했습니다. 아버지의 두꺼운 손찌검과 성폭행, '그래도 가족이니 참으라'는 어머니의 2차 가해를 친구는 열다섯 살 때부터 감당해야 했습니다. 5년간 속으로 달래온 울분을 터뜨리며 집을 나왔고, '딱하지만 열심히 사는 아이'라는 주변의 시선을 동냥 삼아 버텨왔습니다. 

2분 남짓 되는 방송 기사 한 꼭지는 자신의 고민을 섬세히 담아낼 수 없을 거라고. 불가피한 생략과 범박한 일반화를 거치며 기사 속 자신은 또다시 '딱하지만 열심히 사는 아이'가 되고 말 거라고.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섬세한 이해'를 포기한 기사는 당시의 상처를 떠오르게 하는 '폭력'일뿐이라고, 친구는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그 단호함에 대한 제 대답은 조심스럽고 변변찮았는데 설득의 영역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월의 이야기입니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었다는 부채감이 남았습니다. 대신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섬세하게 쓰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7개월이 지난 지금, 다른 사례자들을 만났고 덕분에 기사를 다시 고민하게 됐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방송 기사를 대신해 왜 이 기사를 꼭 쓰고 싶었는지 제게 허락된 작은 공간에 취재 후기를 담고자 합니다. 
 

가족과 강제 이별…'탈가정 청년'을 아시나요

20대에서 30대 사이에 집을 나와야 했던 청년들이 있습니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원래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청년들입니다. 이들을 '탈(脫)가정 청년'이라 부릅니다. 법적·행정적으로 정리된 용어는 아닙니다. 2년 전 한 민간 연구 단체가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너희 형제들이 나를 속이고 있다'며 수년 간 아버지로부터 흉기로 위협당했던 아름 씨, 교도소에 간 아버지와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부모 대신 남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희연 씨, 남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지만 도리어 자신을 탓하는 부모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예진 씨, 그리고 제 오래된 친구까지 모두 탈가정 청년입니다.

탈가정 청년

탈가정 청년은 '학교 밖 청소년'과는 다소 다른 개념입니다. 법적으로 9세 이상 24세 이하 청소년 시기에 집을 나온 학교 밖 청소년들은 보호 쉼터 등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탈가정 청년엔 24세 이상 청년들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은 성인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시기 받을 수 있는 지원들로부터 제외됩니다.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과도 다른 개념입니다. 쉼터에서 지원을 받다가 보호 기간이 끝나 시설을 나와야 하는 보호종료아동과는 달리, 탈가정 청년은 애당초 시설에서 지원받은 적이 없기에 보호종료아동들이 받는 자립 정착금 등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정의된 대상이 아니다 보니 관련 기관이나 법령은커녕 제대로 된 실태 조사도 없습니다. 한 보호 단체가 2만 명 정도라고 추산 만할 뿐입니다. 정부는 "아이들이 집을 나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실태 파악은 어렵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야생으로의 자립

낯선 용어인 만큼 오해도 뒤따릅니다. "사고 쳐서 집을 나온 게 아니냐", "불량한 아이들 아니냐", "그 정도도 안 힘든 청년이 어디에 있냐", "20대면 스스로 돈 벌고 살 수 있지 않느냐". 탈가정 청년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대표 강미선 씨는 이렇게 답합니다. "'독립'과 '자립'은 다릅니다.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주거지와 직장을 마련하고 충분한 준비를 끝낸 후 사회로 나오는 '독립'과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사회라는 야생에 내던져진 후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자립'은 다릅니다." 

야생에서 탈가정 청년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어려움은 추위와 배고픔입니다. 소현 씨는 지낼 곳이 없어 재개발 예정지의 빈 집과 먼지투성이 컨테이너 박스를 전전했습니다. 보일러는 고사하고 전기장판 하나 찾기 어려웠습니다. 버티다 못해 새벽이 되면 근처 찜질방에서 잠시 몸을 녹이다 돌아왔습니다. 2천 원짜리 야채 김밥 한 줄 사 먹을 돈이 없어 "나는 배고프지 않다"라며 최면을 걸었습니다. 

탈가정 청년

빠듯한 생활비 탓에 가족에겐 미안함만 쌓여갑니다. 김치찌개 집 서빙부터 택배 상하차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 희연 씨는 한 달에 적게는 40만 원, 많게는 60만 원을 법니다. 자식처럼 돌보는 고등학생 남동생이 이제야 '예쁜 옷'에 눈을 떴다고 하는데, "누나 요즘 힘들어서 못 사줘"라는 말을 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불안도 넘을 수 없는 벽입니다. 두 달 전부터 우울증 약과 불안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예진 씨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으로 홀로 들어오기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인터뷰 내내 예진 씨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그래도 가족을 믿고 싶었어요"였습니다.
 

'가구단위 복지제도'…소외되는 청년들

자립하고자 고군분투했던 탈가정 청년들은 사회의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가구단위 복지제도'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복지제도 대부분은 '가구단위'로 이뤄집니다. 기초생활수급제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가구 구성원 전체를 복지 대상자로 지정하지, 자녀 한 명만 별도로 지정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탈가정 청년들은 집을 나왔더라도 서류상 원가정과 '하나의 가구'로 묶여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별거했더라도 집을 나온 자녀가 부모와 서류상으로 절연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자신의 소득과 부모의 소득이 하나로 묶이면서 복지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지부도 이 같은 사각지대를 알고 있습니다. 원가구와 별개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마련해둔 이유입니다. '기타 가정 폭력 등의 사유로 개별 가구 보장이 필요한 경우' 독자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 가능하도록 해뒀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예외 조항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려면, 기초생활보장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합니다. 지원자가 정말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지 전문가들로부터 심사를 받는 건데, 이 단계를 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신청자 스스로 서류를 제시하며 직접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 내 폭력은 특성상 서류를 남기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폭력을 당하면 일단 참고 숨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적된 분노가 터져 나와 가정 밖으로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녹취나 동영상, 증명 서류를 보관해두기 어렵습니다. 설령 몇 가지 흔적이 남더라도 법적·행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해둔 피해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그나마 시설에서 상담받은 기록이나 경찰 신고 기록이 증거물이 될 수 있을 텐데, 두려움에 떨며 상담 신청이나 경찰 신고를 못한 피해자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탈가정 청년들은 서류를 준비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제도 지원을 왕왕 포기합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피해 사실을 아이들 스스로 입증하라는 건, 돕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라고 지적했습니다. 
 

탈가정 청년이란 '새로운 가구 형태'

이렇게 글을 마친다면 저는 오래된 친구의 지적대로 또 하나의 폭력을 저지른 꼴이 될 겁니다. 탈가정 청년들이 '불쌍한 청년들'이라는 사실만 나열했을 뿐 그들의 생각을 전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기사엔 실지 못했지만 한 인터뷰이가 꼭 담아달라고 요청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탈가정 청년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가족 형태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라는 큰 질문을 던집니다. 현행 가구단위 복지제도는 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자리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가부장적 가구'를 상정하고 마련된 복지 모델입니다. 당시엔 이런 가구 모델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복지 제도 역시 가부장적 가구를 정상 가족으로 삼았고 여기서 이탈한 누군가를 비정상 가구로 봤습니다. '원칙적으로' 한 가구를 복지의 기본 단위로 하되, 이탈자가 생기면 '예외 조항'을 달아 지원했습니다. 

탈가정 청년

문제는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이상 기존 가구 모델이 포섭하지 못하는 가구 형태가 계속 생겨난다는 겁니다. 호적상 분리가 불가능하고 자신의 상황을 서류로 입증하기 어려운 탈가정 청년의 경우 1인 가구로 인정받기 쉽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분명 존재합니다. 탈가정 청년은 하나의 사례일 뿐입니다. 탈가정 청년 같은 새로운 가족 형태가 계속 등장할 때마다 매 순간 가구단위 복지제도에 예외 조항을 달아 끼워 넣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들을 하나의 가구 형태로 인정할 수 있다면, 이들에 대한 복지는 딱하지만 열심히 사는 아이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닌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됩니다. 객관적으로 어려운 상황인 건 맞지만, '불쌍하니까 도와야 한다'가 아니라 하나의 가구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부여받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그들의 존재는 '복지 모델의 기본 단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라는 큰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탈가정 청년을 계기로 우리가 외면했지만 주변에 분명 존재하는 다양한 가구 형태를 어떻게 포섭할 건지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청년들의 좋은 이야기

 
"좋은 이야기는 덜 폭력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한 인터뷰에서 폭력을 피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자에게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의 조언대로 덜 폭력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 좋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단순한 사연 캐묻기를 넘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섬세하게 듣고자 했습니다. 

낯간지러운 독백 연기를 선뜻 선보여준 배우 지망생 희연 씨, 게임 디자이너를 꿈꾼다며 직접 그린 캐릭터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준 예진 씨의 이야기가 짙게 기억나는 이유입니다. '딱하지만 열심히 사는 아이'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청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각자의 고유한,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방송 기사에 오롯이 담기지 못해 아쉽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그토록 쓰고 싶었던 까닭은 더 이상 불쌍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던 오래된 친구에게 '내 진심 만은 알아달라'는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짧지 않은 이 졸고가 조심스럽고 변변치 않았던 제 7개월 전의 대답을 대신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안전망의 또 다른 구멍…'탈가정 청년들'의 삶 (지난 9월 12일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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