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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트 페어 단상…'장터' 넘어선 '축제의 장'

프리즈 서울을 겪은 키아프의 과제

[취재파일] 아트 페어 단상…'장터' 넘어선 '축제의 장'
코엑스에서 사상 최대규모의 미술품 장터가 열렸습니다. 영국의 아트 페어 프리즈(Frieze)와 한국화랑협회의 키아프(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가 동시에 열린 것입니다. 프리즈 서울에는 110개의 갤러리가, 키아프에는 164개의 갤러리가 참여해 각각 코엑스의 3층과 1층을 가득 채웠습니다.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프리즈는 세계 정상급의 갤러리들이 포진하면서 엄청난 흥행을 예고했습니다. 티켓은 한 장만 구매하면 두 아트 페어에 모두 입장할 수 있었는데, 7만여 명으로 집계된 방문객 대부분 3층 프리즈를 먼저 들른 뒤 나중에 키아프로 가거나, 아니면 아예 프리즈만 관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프리즈 서울은 4일 동안 6,000~7,000억 원에 이르는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키아프는 10분의 1 수준인 700억 원 정도로 추정되고, 그나마도 키아프에 참여한 해외 갤러리들의 매출이 포함된 수치입니다. 전체적으로 키아프의 매출은 지난해의 690억 원과 비슷한 규모이긴 하지만, 개별 갤러리들의 경우 지난해보다 30% 인상된 부스 임대료를 감안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현장에서 만난 중소 갤러리들 일부는 부스 비용도 못 건졌다고 울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프리즈와 키아프를 동시 개최한 것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우선 작품의 수준 차이가 10배의 매출 만큼이었습니다. 프리즈 서울은 고대 유물부터 600억 원을 호가하는 피카소 작품, 현대미술의 총아 데미안 허스트, 그리고 동시대 미술의 선두 주자 캐서린 번하트까지 미술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눈을 크게 뜨게 될만한 작품들을 화려하게 펼쳐 보였습니다. 반면 키아프는 지난해 키아프나 올 봄의 화랑미술제에서 보던 작품 그대로였습니다. 프리즈 서울에서 느낄 수 있었던 현대미술의 트렌드 측면에서 보면 너무 평범하고 안이한 작품들 위주였던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MZ 세대가 미술시장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에 고무돼, 너무 그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세계 미술의 트렌드 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대중성에 올인했던 것이죠.

프리즈 서울 2022

뿐만 아니라 마케팅 기법에서는 10배 이상의 차이가 났습니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은 프리즈 서울을 준비하며 출품작들을 일단 자신들의 기존 콜렉터들에게 회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본적인 매출을 확보한 뒤, 프리즈 서울 개막 한 달 전쯤부터 서울로 들어와 한국의 유력 콜렉터들을 접촉했습니다. 프리즈 서울이 개막하기전에 이미 '완판'을 하고 시작한 갤러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갤러리들도 대부분 70~80% 정도는 사전에 판매하고 프리즈 서울 개막을 맞았습니다. 그러니 첫날 VIP 대상으로 개막을 했는데도, 막상 사려고 하면 이미 팔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머지 20~30%도 팔기 쉬워질 수 밖에 없었겠죠.

이와 함께 '프리즈 위크'라는 이름으로 주요 갤러리들이 밤 늦게까지 오픈하는 '한남 나이트' '삼청 나이트'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도시 전체에서 미술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게다가 프리즈 서울은 장외전도 화려했습니다. 글로벌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페어 기간에 맞춰 청담동에서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 2인전을 열었습니다. 판매용은 아니었지만 시가로 따지면 6천억 원 가까운 작품들이 미술 애호가들의 눈을 호강하게 한 것입니다. LA 기반의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는 프리즈 서울 개막 2주전부터 이태원에 장소를 빌려 자신들의 소속 작가 13명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판매용이었는데 국내 유명 콜렉터들이 다녀가면서 쉽게 '완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는 프리즈 서울 출품 작품들도 모두 '완판'시키며 쾌재를 불렀다고 합니다.

프리즈 서울은 우리에게 미술 작품의 정수와 미술 마케팅의 핵심을 보여줬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이미 열렸기 때문입니다. 한국 관람객들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해외 갤러리들은 한국 콜렉터들의 DB를 확보했습니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는 2026년까지 앞으로 4년을 더 동시에 개최하기로 돼 있습니다. 당장은 내년의 상황도 올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내 중소갤러리들 입장에서는 어쩌면 더 어려워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긴 호흡과 관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프리즈 서울 2022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서울의 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리즈 서울을 얘기하면서 함께 나오는 기대가 <아시아 허브> 역할 입니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었던 홍콩이 중국에 종속되고 코로나에 흔들리면서 서울이 포스트 홍콩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리즈 서울의 성공으로 이미 서울이 <아시아 허브>가 돼버린 것처럼 희망 섞인 분석을 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글로벌 경매업체 크리스티의 프란시스 벨린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이 의미 있는 조언을 했습니다. 뉴욕의 미술시장과 홍콩의 미술시장이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포스트 홍콩을 노리는 곳이 서울 말고도 싱가포르와 도쿄, 대만 등이 있어서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미술품에 세금이 거의 없고 지리적으로도 요충지인 서울이 분명 유리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홍콩의 뒤를 이으려면 다른 도시들과의 경쟁을 이겨내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습니다.

흔히 미술계라고 얘기할 때 3주체가 있다고 합니다. 작가가 제일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고 작품을 감상하거나 소유하는 관객과 콜렉터가 또 한 축, 그리고 그 둘을 중개하는 갤러리와 미술관이 나머지 한 축입니다. 프리즈 서울 2022를 통해 한국 미술계 세 주체의 저력과 가능성, 그리고 부족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세 주체의 역량과 저변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트 페어는 단순히 작품을 사고 파는 '장터'가 아니라, 미술의 트렌드를 확인하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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