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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장비 없이 농약 뿌리는 이주노동자…'위험의 이주화'

<앵커>

요즘 일할 사람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줄였었는데, 사람이 부족해지자 그 숫자를 다시 늘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이주노동자는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해서 한 120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울산광역시 전체 인구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남들이 일하기 꺼리는 업종에서도 많이 일하고 있어서,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구성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여전히 열악하고 위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저희는 오늘(8일)부터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첫 순서로, 보호장비도 갖추지 않고 독한 농약을 뿌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취재했습니다.

제희원 기자입니다.

<기자>

비닐하우스 안에서 한 태국인 이주노동자가 농약을 뿌립니다.

보호장비는 얼굴에 쓴 면 마스크가 전부입니다.

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지난달 초.

고온에 밀폐된 공간에서 살포 작업은 농약을 마시거나 피부에 닿기 쉬워 더 위험합니다.

이들이 일하고 있는 경기 포천 비닐하우스 단지를 찾아갔습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혼자 혹은 삼삼오오 모여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보입니다.

막 파종 작업을 끝낸 비닐하우스에서 이주노동자 2명이 농약을 뿌리고 있습니다.

역시나 방독 마스크 없이 스카프로 입만 겨우 가렸습니다.

경운기에 실린 통에는 샛노란 농약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오늘 총 몇 동 뿌렸어요?) 오늘 11동 뿌려요. (지금 저녁 6시까지 총 12시간 일했나?) 지금 야간 있어요. 야간. (또 야간에 일해요?) 네.]

사업주는 농약을 뿌리는 근로자에게 방독마스크 등을 지급하도록 안전보건 지침이 마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력 없는 지침이라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보호장비를 요구하고 위험한 일을 거부하고 싶어도 고용주 동의가 있어야 한국에 더 머무를 수 있는 이주노동자 처지에서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김달성/포천이주노동자센터 목사: 고용허가제가 농장주와 이주노동자 사이를 철저하게 주종관계로 만듭니다. (농장주는) '방독 마스크 사주면은 (이주노동자들이) 답답하다고 안 써요.' 이런 말을 하는데 그건 궁색한 얘기고요.]

그러다 보니 건강 악화로 이어집니다.

6년 동안 방독마스크 없이 농약 살포 작업을 한 네팔 출신 노동자는 불임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류현철/일환경건강센터, 직업환경의학전문의 : 당연히 농약이 호흡기로, 피부로 흡수돼서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거든요.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라도 이것을 표현하고 드러낼 만한 통로라든가 자신의 권리로서 누릴 제도가 없어요.]

위험은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겨지고 고용주의 환경 개선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

정부가 실태 조사부터 시작해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에 나서야 합니다.

(영상편집 : 박기덕, CG : 서승현·박천웅, VJ :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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