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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승소냐? 패소냐?…론스타 판정의 진짜 성적표는?

20년 가까운 시간, 한국 사회를 관통하며 '변양호 신드롬', '검은 머리 외국인', '먹튀 자본' 등 다양한 논란과 의혹을 낳았던 론스타 사건은 지난달 말 국제투자분쟁에서 결론이 나면서 일단락됐습니다.

판정 일주일 만에 법무부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이번 사건의 판정 요지서를 공개했고, 이에 앞서 판정문 공개를 위한 협의를 론스타 측과 시작했습니다. 결론이 나왔고 그 내용들이 하나둘씩 공개되고 있습니다만, 론스타 사건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들 중 일부는 해소되기는커녕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 일부 논란과 의혹들은 국제투자분쟁(ISDS)이라는,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국제중재재판에 대한 부족한 이해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의장 중재인*으로 선임돼 활동 중인 김준기 연세대학교 로스쿨 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갖고, 이번 중재 판정에 대한 '진짜 성적표'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국제투자분쟁 사건을 다루는 중재 재판부는 투자 분쟁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에서 각각 1명씩 중재인을 선임하고,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서로 합의해 의장 중재인을 선임해 총 3명으로 구성. 만약, 양측이 의장 중재인 선임에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세계은행이 직권으로 의장 중재인을 지정.
김준기 교수
▲김준기 교수
연세대학교 로스쿨 교수
국제중재실무회 회장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부위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의장 중재인

론스타 사건, 우리 정부는 승소했나? 아니면 패소했나?

지난달 말 판정 결과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법무부는 "95.4% 승소하고 4.6% 일부 패소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론스타 측의 청구 금액인 46.8억 달러 가운데 2억 1,650만 달러에 대해서만 배상 판정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아무리 4.6%라고 하지만, 배상액은 이자까지 포함하면 2,985억 원(배상금 2,800억 + 이자 185억)에 달합니다. 국민의 혈세로 무려 3,000억 원을 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패소나 다름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김준기 교수는 이번 판정을 두고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김 교수는 '승소냐 패소냐'라는 이분법적인 판단 대신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사건 자체에 대한 관할권부터 시작해 '고의 매각 지연'과 '부당한 가격 인하' 및 '위법한 조세 부과' 등 론스타가 제기한 수많은 쟁점에서 설득력 있는 반론으로 방어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판정 결과만 놓고 보면 천만다행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주요 쟁점을 대부분 이긴 것으로 보이며 청구 금액 대비 95% 승소하여 결국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투자분쟁을 총괄하고 담당하는 업무를 일원화하고 법무부에 국제분쟁대응과를 신설하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대응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했다고 평가합니다."
 

'론스타=산업자본'이라는 방어 전략을 포기했다?

우리 정부의 변론 전략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민변에서 국제통상위원장을 지낸 송기호 변호사, 론스타 사건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홍익대학교 전성인 교수, 론스타를 상대로 한 주주 대표 소송에서 외환은행 주주들을 대리한 김성진 변호사 등이 이 주장을 오랜 시간 일관되게 펴왔습니다. 주장의 핵심은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매입할 당시 론스타는 국내에서 은행 지분을 매입할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이었다는 점을 입증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매입할 당시에는 산업자본은 은행 주식 10% 이상을 보유하는 것을 법으로 제한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 등에 따르면, 외국계 사모펀드로 알려진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매입 당시 골프 사업체나 건설사 등 자산 총액이 2조가 넘는 비금융 회사를 보유하고 있어 국내법에 따르면 산업 자본으로 분류돼 외환은행의 지분 51%에 대한 투자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론스타는 외환은행에 투자해 배당금과 매각 차익을 챙겼고 그것도 모자라 정부를 상대로 중재소송을 제기했는데, 애초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투자이기 때문에 중재 대상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동안 중재 과정에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 은행 지분에 대한 투자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중재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 이 주장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건이긴 하지만) 의장 중재인으로서 실제 국가와 투자자 간의 중재 실무를 맡고 있는 김준기 교수는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국제중재판정부는 국제법에 따른 위법성 여부를 심사하고 판단합니다. 해당 협정에 특별한 명시가 없는 이상 단순히 국내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당연히 (우리 정부 측이)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 있는데 이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봅니다."

투자자와 국가 간 소송(ISDS)은 투자보장협정에 따른 투자자 보호 의무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주요 쟁점입니다. 실제로, 법무부가 공개한 론스타 판정 요지서에서도 주요 쟁점은 '투자보장협정에 따라 국제중재판정부에게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이 있는가', '투자보장협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대한 공정‧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했는지'였습니다. 이런 쟁점과는 무관하게 국내법(금산분리 규정) 위반 여부를 입증하는 것에 천착할 경우 실제 중재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ISDS는 외국계 투자자만을 위한 방패?

물론, 'ISDS 중재 판정부는 국내법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투자자를 제대로 보호했는지 여부만 판단하는 것인가'와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이번에 법무부가 공개한 판정 요지서를 꼼꼼히만 봐도 충분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법무부가 공개한 판정 요지서에 따르면, 중재재판부는 론스타가 하나은행에 지분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매각 가격이 당초보다 낮아진 것에 대해 우리 정부의 책임도 인정했지만 절반의 책임은 론스타에게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 근거는 다름 아닌 우리 법원의 판결이었습니다.
 
(법무부가 공개한 론스타 사건 판정 요지서 중)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관련 형사 유죄 판결 확정을 받았던 점에 비추어보면, 소위 '먹튀(Eat and Run)' 비유를 더 발전시켜 론스타가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도 볼 수 있음. … 주가 조작 사건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유죄 판결로 인한 금융위의 외환은행 주식 매각 명령에 따라 론스타 측은 '12. 5. 18. 이후에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지분을 더 이상 보유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금융당국이 매각 가격 인하를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음."

거듭 강조하지만,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의 주요 기능은 정부의 공정하지 못하고 자의적인 정책 결정으로 외국 투자자가 협정에 보장된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국제중재판정부에 특정 외국계 자본의 국내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을 구할 수도 없고, 국내법 위반 여부가 국제중재소송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국내 법령이나 법원의 판결은 국제중재판정부가 해당 정부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레퍼런스로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김준기 교수는 이러한 국제중재판정의 원칙은 투자자 보호라는 약속을 위한 것이고, 이러한 약속에 대한 존중 덕분에 한국 투자자 역시 외국 정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개입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투자보장협정은 체결국이 협정에 열거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의무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국제적인 약속입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외국 투자자에게 하는 약속이며 한국 투자자도 상대국에 투자할 때 동일한 보호를 받게 됩니다."
 

론스타 사건에서 우리가 보완해야 할 점은?

물론, 이번 론스타 판정이 잘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계도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가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국제 중재 사건 평균 중재 기간은 26개월 수준입니다(국제상업회의소, ICC 기준).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청구 금액이 크고 쟁점이 많다면 결론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사건 심리가 길어질 경우 정기 인사 이동 등을 이유로 전문성과 협업 등의 측면에서 한계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중재 사건) 담당 부서에서 전문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 때가 되면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인사 이동, 충분한 예산 및 전문 인력 양성이 부족한 실정, 부처 간 원활하지 못한 협력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처럼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우리 정부는 론스타 사건으로 지난 10년간 변호사 보수와 중재 수수료 등으로 478억 원을 사용했습니다. 때문에, 투명한 법 집행을 통해 소송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혹시 모를 천문학적인 배상금과 소송 비용을 아낄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론스타 사건에서도 우리 정부가 3,000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내는 이유도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판매) 승인 심사를 보류했던 것은 정당한 규제 목적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국제중재판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원칙에 충실하고 법의 지배에 근거한 법 집행이 요구됩니다. 전 세계에 투자보장협정은 3,000개 이상 있습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정치적인 시류와 편향된 여론에 휩쓸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법을 집행하지 않으면 대부분 협정을 위반합니다.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법과 제도를 운용하면 국제 경쟁력 있는 투자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국제 분쟁을 대부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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