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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가뭄 뒤 지진" 우려가 현실로…중국 당국 '난감'

지난달 말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한 속설이 급격히 확산했습니다. 이른바 '한진이론(旱震理論)'으로, '큰 가뭄 뒤 대지진이 온다'는 내용입니다. 쓰촨성을 중심으로 60여 년 만의 큰 가뭄이 찾아온 뒤였습니다. 이런 우려는 불과 열흘도 안 돼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5일 쓰촨성에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한 것입니다. 한진이론이 퍼질 당시 가뭄과 지진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던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들은 무색하게 됐습니다.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한 쓰촨성 루딩현 모습

쓰촨성 2017년 이후 최대 지진…72명 사망 · 12명 실종

지난 5일 낮 12시 52분 쓰촨성 루딩현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지진으로 지금까지 72명이 숨졌습니다. 아직 12명이 실종된 상태라 희생자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250여 명이 부상했으며, 주택 등 건물 249채가 무너지고 1만 3,500채가 파손됐습니다. 수력발전소 7곳도 훼손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이재민은 5만여 명에 달하고 4만여 가구의 통신과 전기가 끊겼습니다. 관광객 200여 명은 관광지인 하이루오구에 고립돼 있습니다. 7일 오전까지 13차례의 여진이 발생해 주민들의 공포는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017년 주자이거우에서 발생한 규모 7.0 지진 이후 쓰촨성에서 발생한 최대 지진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쓰촨성은 중국에서 가장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입니다. 쓰촨성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 지각의 경계에 있는데, 이 두 지각판이 충돌하면서 단층 활동이 활발해지는 게 원인으로 꼽힙니다. 2008년 8만 6,00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던 원촨 대지진이 발생한 곳도 쓰촨성입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원촨 대지진은 룽먼산 단층대에서 발생한 반면, 이번 루딩현 지진은 센수이허 단충대에서 발생해 두 지진 사이에 연관성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센수이허 단층대에서는 몇십 년마다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쓰촨성 루딩현 지진 피해 현장

"한진이론 다시 한 번 입증" vs "가뭄 · 지진 인과관계 없어"

'한진이론'은 1972년 지진전조예측소 소장 등을 지낸 겅칭궈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규모 6.0 이상 지진이 발생한 곳은 지진이 발생하기 1~3년 전 가뭄을 겪은 건조한 지역이 많다는 취지입니다. 이론의 근거로 '지열 기원설'과 '운실 효과 기원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 "큰 가뭄 뒤 대지진 온다"…중국 공포 확산

한진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중국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한진이론이 또 한 번 입증된 셈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는 #큰 가뭄 뒤 반드시 대지진이 온다#는 해시태그가 다시 등장했고, '한진이론을 살펴보기를 제안한다', '반드시 맞는 건 아니더라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적어도 탕산 대지진과 원촨 대지진은 이 이론으로 예측했다'는 댓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여전히 가뭄과 지진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웨이보에는 #전문가들은 이번 쓰촨성 지진은 가뭄과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는 해시태그가 함께 올라와 있습니다. 한진이론은 여전히 가설일 뿐 과학적 연구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가뭄을 지진 예측 기준으로 이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큰 가뭄 뒤 반드시 대지진이 온다는 것은 가설일 뿐 법칙은 아니다'라고 보도한 중국 매체 신경보

중국 네티즌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이번 지진은 가뭄보다는 단층대와 관련이 있다', '지진은 극한 날씨와 관련이 없다' 등과 같이 당국의 발표를 옹호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전문가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 '내가 아는 전문가는 며칠 전 큰 가뭄 뒤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문가의 말은 참고용일 뿐이다' 등과 같이 당국과 전문가의 발표를 불신하는 댓글도 적지 않습니다. 지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지진을 예측했더라면 적어도 피해는 줄일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비판적인 시각이 반영돼 있습니다.
 

중국 매체 "지진 구조 모습, 홍군의 장정(長征) 연상케 해"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들은 오히려 이번 지진을 애국주의를 고조시키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7일 지진 피해 소식을 전하면서 '특별기동대가 급류 위에 밧줄 다리를 설치한 뒤 맨손으로 밧줄을 타고 주민들을 구조하는 영상이 웨이보에 널리 퍼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영상은 1934~1936년 홍군의 '장정'을 연상케 한다고 적었습니다. 장정은 중국 공산당군인 홍군이 국민당군의 포위를 뚫고 1만 2,000km를 걸어서 이동한 행군을 말합니다. 글로벌타임스는 '당시 홍군은 국민당군의 맹렬한 기관총 사격 속에서도 널빤지가 없는 루딩교의 쇠줄에 매달려 국민당군이 장악하고 있던 다리를 마침내 점령했다'고 서술했습니다. 루딩교는 이번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한 쓰촨성 루딩현에 있는 다리입니다. '80여 년 전이든 미래든 중국 군과 경찰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도 썼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논평. '인민 대중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적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논평을 통해 "생명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삼아야 한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사항을 전달했습니다. 이어 "재난 상황은 명령이고 시간은 생명이다"라며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달 16일에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개막합니다. 시 주석의 '대관식'을 앞두고 자연 재해로 자칫 민심이 악화할까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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