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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꿩 잡는 게 매'?…대놓고 미국에 굴욕

[월드리포트] '꿩 잡는 게 매'?…대놓고 미국에 굴욕
세계 안보와 경제를 양분하는 두 축을 들라고 하면 역시 미국과 중국입니다. 신(新) 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미국은 유럽, 일본과… 중국은 러시아, 북한 등과 손잡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 특히 정치적 현안(선거나 당 대회 등)이 걸린 달린 문제에서는 달라집니다. 이른바 동맹국이라는 곳조차 뒷전이기 일쑤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우리나라와 유럽 국가들을 향한 방위비 분담금 압박 문제가 그랬고 현 바이든 대통령 때도 한국, EU, 일본을 상대로 한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가 그렇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지금이야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워낙 강력해 찰떡궁합이지, 또 언제 서로 틀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중소 분쟁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이런 자기중심적인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맹국이라는 나라들도 따지고 보면 그 힘이 필요해서 같이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나라 중에서 꼽자면 아직까지는 미국이 한 수 위입니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진행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에다 경제력, 기술력까지 갖춘, 비록 예전만은 못하다고 해도 아직도 '슈퍼 파워'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번 타이완 사태만 놓고 봐도 아직 힘의 저울추는 미국 쪽에 보다 기울어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슈퍼 파워' 미국도…사우디에 굴욕

사우디 왕세자와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사우디 왕실 제공, 연합뉴스)

그런 미국에게 굴욕을 안긴 곳이 있습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오랜 맹방으로 미국에게는 중동지역의 핵심 동맹국이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양국 간 갈등은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의 살해 배후로 지목되면서부터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사우디의 인권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빈 살만 왕세자를 국제사회에서 '왕따'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유가 폭등은 물가 상승과 공급망 문제 등으로 구석에 몰린 바이든 정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갤런(약 3.78리터)당 평균 5달러를 넘어서자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에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인권 소신을 포기한 것이냐는 비난 속에 방문 전부터 시끄러웠지만 지난 7월 사우디 방문은 별 성과 없이 '주먹 인사'와 '비웃음' 논란만 남겼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을 마치면서 "에너지 생산 업체들이 이미 증산했고 향후 수개월 내 벌어질 일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가 내놓은 답은 '감산'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두 달 만입니다. OPEC+는 현지시간 5일 월례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10월 하루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1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경기 침체를 우려해 9월 하루 10만 배럴 증산하기로 했던 걸 다시 8월 수준으로 되돌린 결정으로, 미국을 골탕 먹이겠다는 의도는 아니지만 바이든 대통령 입장이 여간 곤란해진 게 아닙니다. 미국에서 운전은 생존 수단이나 다름없다 보니 휘발유 가격은 가장 중요한 '민생 물가' 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11월 중간 선거를 코 앞두고 나온 발표여서 더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OPEC+ 감산 발표에 백악관 화들짝

석유수출국기구 OPEC 로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백악관도 즉각 대변인 성명을 내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카린 장 피에르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 공급을 강화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 국민들은 이번 여름에 기름값이 내려가는 것을 목격했고, 주유소 기름값이 12주 연속 내려갔는데 인하 속도도 10년간 가장 빨랐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미국 내 원유 생산은 연초보다 하루 50만 배럴 이상 늘어났으며 연말까지는 100만 배럴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국이 자체 증산과 비축유 방출로 기름값을 잡았고 앞으로도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보면 미국 대통령이 논란을 무릅쓰고 중동까지 날아가 부탁하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체면만 구겼다는 걸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입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중국도 눈치를 보는 미국의 요구를 사우디가 가볍게 제쳐 버린 겁니다. 물론 그 힘은 '석유'입니다.

사우디 왕세자는 자신을 비판한 미국 대신 중국을 향해 손을 내미는 모양새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팬데믹 칩거 후 첫 방문지로 사우디를 방문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이런 상황을 뒷받침합니다. 외교도 뭔가 믿을 구석이 있어야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에게는 늘 실리 외교라는 숙제가 따라 붙습니다. 사우디 같은 자원도 없으니 (비록 강대국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경제력이든 군사력이든 외교력이든 그들이 혹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끼리 말로만 떠드는 실리 외교는 공허할 뿐입니다. 힘도 자원도 정보력도 없이 그저 이쪽 저쪽 붙다가 나라만 넘겨준 구한말 상황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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