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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Not My President!…분열의 시대, 지도자는 없다

대통령제, 사라진 지도자

[월드리포트] Not My President!…분열의 시대, 지도자는 없다
입법, 사법, 행정 3권 분립을 바탕으로 한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시작돼 여러 나라로 수출됐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제는 상당수 나라에서 독재에 악용됐고 이를 제대로 정착시킨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론과 제도로만 존재했던 탄핵을 실행에 옮길 만큼 대통령제를 명실상부하게 운영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역시나 짧지 않은 기간 독재라는 쓰라린 내재화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인 동시에 국가원수의 역할도 맡게 됩니다. 특정 정파의 대표가 아니라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제를 탄생시킨 미국에서조차 이제 '지도자'의 모습은 점차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가 낳은 결과입니다. 특히 미국은 4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어 다음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대통령은 정파적 대결 일선에 설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바이든 vs 트럼프…"앞당겨진 재대결"

바이든, 트럼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간 지지층 사이에서 행정부와 의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도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하다는 불만을 사 왔습니다. 물론 모든 정책에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초당적 협력을 강조해온 그의 업무 스타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직도 자신이 상원의원인 줄 아느냐. 대통령이라면 해야 할 일을 하라.'는 식의 압박이 없지 않았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랬던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연방 학자금 대출 탕감 등 민주당 지지층을 겨냥한 일련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연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화당을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현지시간 지난 1일에는 저녁 8시 황금 시간대에 TV 생방송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자 2024년 잠재적 대선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인)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원들은 우리나라의 근본을 위협하는 극단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대선 불복 파동인 '1·6 의사당 폭동'을 거론하며 "미국에서 정치적 폭력이 발붙일 곳은 없다. 누구도,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5일에도 '마가'(MAGA)를 '준(準)파시즘'(semi-fascism)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30일에는 백악관 기밀 유출 혐의 등으로 마러라고 별장을 압수수색한 미 연방수사국 FBI를 공격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을 향해 "역겹다"는 표현을 써가며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다음 날 'Rematch Between Biden and Trump Comes Two Years Early'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이 2년 앞당겨 벌어졌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전투 모드'로 전환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런 바이든 대통령의 공격에 트럼프 전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 연설 이틀 뒤인 현지시간 지난 3일 바이든 대통령을 '미국의 적' (enemy of the state)으로 규정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집회에 참석해 "역대 미국 대통령 연설 중에서 가장 포악하고 혐오스러우며 분열을 초래하는 발언으로 7,500만 명을 비난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민주주의를 악화시키지 않고 구하려 한다"며 "민주주의의 위험은 우파가 아닌 급진 좌파에게서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미국을 되찾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24년에 우리가 훌륭한 백악관을 되찾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올해 11월 중간선거가 "바이든과 급진적인 민주당의 극단주의와 부패에 대한 국민투표"이자 "치솟는 물가와 광란의 범죄에 대한 국민투표"라면서 공화당에 표를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야 2020년 대선도 도둑질 당했다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이런 식의 반응이 이상할 게 없지만 현직 대통령이자 지지층의 불만에도 초당적 협력에 무게를 뒀던 바이든의 이런 변신(?)은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2024년 대선과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동력이 달린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지도자인 대통령에서 민주당 승리에 앞장선 정치인으로 탈바꿈한 셈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상황을 'Ahead of Midterms, Biden Shifts From Compromise to Combat'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타협에서 전투로 전환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약화된 국가원수의 상징성…사라지는 구심점

대통령도 선출직인 정치인이고 보면 사실 이런 일이 크게 놀라운 건 아닙니다. 다만, 국민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선거 승리를 위해 한쪽 정파를 대변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상당히 모순적입니다. 애초에 정파의 대표성과 국가원수의 상징성을 동시에 갖도록 설계된 대통령제의 맹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 대선 사전투표하는 시민

문제는 정치적 양극화가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 상당수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현재 상당수 공화당원들도 바이든 대통령을 국가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거철이면 대통령 스스로 정파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인데 유권자 성향까지 양극화되면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자칫 대의 민주주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처럼 선거 불복 사태까지 겪진 않았지만 대통령제와 함께 사실상 양당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미국과 달리 5년 단임제라 대통령이 자신의 다음 임기를 위해 뛰는 일이 없는데도 이런 분열적 상황은 미국 못지않습니다. 정치적 양극화에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일부 정치권의 행태까지 더해지면서 국가원수로서 갖는 대통령의 상징성은 많이 약화된 게 현실입니다. 국민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이 사라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미국인 10명 중 7명은 다음 선거에서 후보들이 투표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로 조사됐습니다. 미 CBS 방송이 여론조사업체와 함께 지난달 29일부터 사흘 동안 미국의 성인 2,0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음 선거에서 후보자 가운데 누군가가 승복을 거부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2%가 '매우 그렇다', 45%가 '다소 그렇다'고 답해 전체의 67%가 불복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발 이런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남북 분단만도 버거운 대한민국입니다.

(사진=연합뉴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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