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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행동 없는 쇄신…빙하기의 정의당

[취재파일] 행동 없는 쇄신…빙하기의 정의당
"비난보다 무관심이 더 뼈아픕니다."

정의당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고민입니다. 5년 전 대선에서 6.17%를 득표했던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2.37%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습니다. 중요한 건 하락 추세입니다. 200만 표가 80만 표로, 5년 사이 120만 표가 증발했습니다. 원내 3당의 초라한 현 주소입니다.

거대 양당 체제라는 정치 구조로 인해 3당이 손해 보는 측면도 부인할 순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아닌 중도라는 한국판 제3의 길을 주장했던 안철수 의원도 10년 간의 힘겨웠던 여정을 접었습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국민의당을 제치고 원내 3당으로 등극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호황형 적자보다 불황형 흑자가 훨씬 암울한 법입니다.

진보정치는 20여 년 전 노동의 대표성을 내걸고 야심차게 출발을 외쳤습니다. 통합진보당 시절인 지난 2012년 13석을 기록하며 차기 교섭단체 구성의 야망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석기 사태'를 시작으로 연합체 성격의 진보정당은 분열하기 시작됐고 그들의 앙금은 10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보 정당을 취재하며 느꼈던 건 어느 정당보다도 그들만의 철저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당을 구성하는 계파의 지분만큼 철저하게 권한을 보장하는 편입니다. 당원 비율 등 특정 계파의 정치적 지분율에 따라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순번과 숫자를 결정하기도 했으니까요. 한번은 정의당 관계자에게 진보 정당의 지분 보장 구조가 대기업에 버금간다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정치는 인물이 아닌 조직이 하는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고 당원 중심의 정당이 갖는 강점도 분명 있겠지만 엄격한 질서는 혁신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대 양당은 총선과 대선의 결과에 따라 패배한 정당은 때로는 기상천외하게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4월 재보선 전까지 주요 선거에서 내리 4연패를 당했던 국민의힘에선 30대 이준석 대표가 전면에 나섰습니다.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에선 20대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이 깜짝 등장했습니다. 선출이냐 임명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국민들과 언론이 주목할 정도의 변화로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비례대표 의원들의 총사퇴 권고 여부를 결정하는 정의당의 당원 투표는 찬성 40.75%에 반대 59.25%로 부결됐습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고 강제성은 없지만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당원 투표의 결과라 관심이 집중됐지만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습니다. 일각에선 특정 비례대표 의원들이 소속된 연합에서 막판 조직적으로 반대 투표를 던졌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정의당 당원 총투표 관련 의원단 합동 기자회견

물론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총사퇴만이 정의당 혁신의 해법은 아닐겁니다. 파괴적인 수단보다는 정당의 화학적 결합을 이끌고 저력을 되살릴 구심점을 찾는 게 정답이겠죠.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정당의 특정 세력이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인 투표에 나섰다는 내부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건 정의당이 처한 암울한 현 주소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을 뿐 정의당의 추락은 아주 오래된 일이었습니다.

류호정, 장혜영 의원도 등장 초기 충분히 주목받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준석, 박지현 또래 정치인들보다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거대 양당과 군소 정당 정치인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이준석, 박지현 두 정치인이 헌법기관이라는 특혜를 받지 못한 채 그동안 광야에서 활동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온당한 지적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정의당 추락의 가장 큰 책임이 심상정 대선 후보에게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선 민주화 이후 진보 계열 인물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노동 존중의 사회, 소수자와 서민 중심의 사회를 꿈꾸던 심상정의 진보 가치는 2022년 여전히 민주당 2중대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당원 총투표 결과를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인다,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약속한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되묻습니다. 정의당의 비전과 쇄신의 방향은 무엇입니까? 정의당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정의당의 정치는 여전히 조직이 하는 겁니까?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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