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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그 알래스카 빙하 7년 만에 330m 후퇴

오바마의 그 알래스카 빙하 7년 만에 330m 후퇴
2015년 9월1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알래스카주 남부 키나이피오르 국립공원의 한 빙하를 찾았습니다.

그는 '엑시트'(Exit)라고 불리는 이 빙하를 바라보며 "우리 손자들이 반드시 이 빙하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방문으로 엑시트 빙하는 '기후변화의 아이콘'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가 찾은 날로부터 만 7년이 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했던 엑시트 빙하가 있던 주변에는 삼림욕장처럼 우거진 푸른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빙하가 물러난 흔적으로 보이는 넓은 자갈밭 사이로 흐르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도 보입니다.

빙하에서 녹은 회색빛 물이 이제는 빽빽한 숲 또는 빙퇴석(빙하에 의해 침식·운반돼 하류에 쌓인 돌무더기) 무더기로 변한 옛 자취를 따라 멀리까지 흘러내려 온 것입니다.

방문자센터인 '엑시트 빙하 네이처센터'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는 19세기 특정 연도를 적은 표지판들이 이어졌습니다.

산 위에서 시작된 빙하가 해당 연도에는 표지판이 세워진 지점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관측 사상 엑시트 빙하가 가장 멀리까지 팽창했다는 '1815년'을 알리는 표지판은 생각보다 빨리 등장해 방문객을 당황스럽게 합니다.

빙하 트레킹의 시작점인 네이처센터는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빙하로 뒤덮였을 1917년 표지판 바로 뒤에 있습니다.

엑시트 빙하를 직접 트레킹하며 "기후변화를 얘기할 때 이만큼 좋은 증거는 없을 것"이라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호소를 아는지 모르는지 빙하는 지난 7년간 더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관리인 해처는 "2015년 오바마의 방문 이후 330m쯤 후퇴했다"며 "아직 지도에 표시되진 않았지만 지난해엔 40m 이상 더 물러났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의 안내인인 '해나'는 "1980, 90년대에는 연간 약 12m씩 빙하가 물러났는데 작년에만 약 43m 가까이 후퇴했다"고 했습니다.

올해는 하루에 1피트, 즉 30㎝씩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빙하의 후퇴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빙하는 겨울철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얼음으로 응축돼 더해지는 양보다 여름철에 녹아서 없어지는 얼음양이 더 많으면 당연히 길이가 짧아져 후퇴하고 폭과 두께도 얇아집니다.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겨울 강설량이 줄어들면 빙하가 수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다짐처럼 '손자 세대들도 엑시트 빙하를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해나는 "녹는 속도가 빨라서 손자들은 보지 못할 것 같다"며 자신없는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최근 들어 엑시트 빙하가 빠르게 녹는다는 증거는 후퇴 현상뿐만이 아닙니다.

키나이피오르 국립공원 내 30여 개 빙하에 얼음을 공급하는 하딩 아이스필드에서도 얼음 두께가 얇아지고 있습니다.

빙하 옆 산책로 초입의 1917년 표지판을 시작으로 1926년, 1951년, 1961년 위치를 각각 알려주는 표지판을 차례로 지날 때는 한 세기 동안 진행된 기후변화의 연대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숲속 한복판에 돌기둥으로 세운 오래된 휴게소 같은 건물에 도착하자 해나는 이 건물의 35년 전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지금은 얼음 한 조각 구경할 수 없지만 사진 속 건물 옆까지 거대한 빙하가 뻗어있었습니다.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숲속 쉼터가 아니라 빙하 전망대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15분쯤 더 걸어 올라가 2005년 표지판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멀리 산등성이에서 아래로 길게 뻗은 엑시트 빙하가 보입니다.

현재 모습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찾았을 때와도 뚜렷하게 다릅니다.

2010년 표지판에 도착하기 직전 해나가 당시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푸른 초목과 회색 암벽이 섞인 맞은편 산자락이 12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 부분 두꺼운 빙하로 덮여 있습니다.

해나는 "지금은 나무와 돌만 있는 푸른 산이 예전에는 다 빙하였다"며 "불과 10년 사이에 이렇게 변한 것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빙하 소멸의 주범은 기후 온난화입니다.

2018년 제4차 미국기후평가(NCA) 보고서에 따르면 알래스카에서 기온이 따뜻해지는 속도는 전 세계 평균의 2배로 그 중 북극권 지역은 평균치의 3배 이상입니다.

등반 내내 괴롭히는 모기떼는 알래스카 온난화의 증거와도 같습니다.

예전 같으면 7월 말부터 사라지는 모기가 8월 말에도 기승을 부린다고 합니다.

해나는 "여기보다 북부와 내륙 지방이 더 심하다. 늪이 많고 온난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50년 알래스카의 연 평균 기온이 화씨 4도(섭씨 2.2도) 이상 오른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대로라면 빙하는 더 빠르게 녹을 수밖에 없습니다.

NPS의 측정치를 보면 지난 13년간 엑시트 빙하가 약 701m 후퇴했습니다.

이렇게 빙하가 계속 녹는다면 우리 손자 세대가 살게 될 30, 40년 뒤 빙하는 전설이 될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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