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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개운치 않은 서울시 '새 소각장' 발표

서울시 새 광역자원회수시설 최종 후보지, '마포 상암동'으로 결정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사흘 전(31일) 발표된 서울시 새 쓰레기 소각장, 즉 광역 자원회수시설 최종 후보지 말입니다. 돌고 돌아 '마포 상암동'이었습니다. 이미 2005년부터 광역 자원회수시설이 가동되고 있는 곳입니다. 부지는 기존 시설 바로 옆입니다. 소각장과 악취를 유발하는 쓰레기차 진출입로를 지하화해서 짓고, 원래 있던 소각장은 2035년까지 철거하겠다는 게 서울시 계획입니다. 지상에는 1천억 원을 들여 주민 편익시설을 만들고 연간 100억 원 규모 주민 기금도 조성하겠다고 합니다.

마포구 상암동 새 자원회수시설 부지

발표 이후 상황은 예상대로입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과 지역구 시의원들은 "이미 소각장을 돌리고 있는 지역에 추가로 짓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상암동과 가까운 경기도 고양시까지 거들고 있습니다.

이 점은 미리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새 소각장은 반드시 지어야 합니다. 급합니다. 지금 서울 안에 있는 소각장은 모두 4곳입니다. 마포구에 하나 있고, 강남구와 노원구, 양천구에도 각 한 개씩 있습니다. 네 곳을 다 합쳐서 하루에 소각할 수 있는 게 약 2천200 톤인데, 서울시에서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는 이것보다 1천 톤 많은 3천200톤이나 됩니다.

소각 못하는 1천 톤가량은 그간 인천 수도권매립지로 보내왔습니다. 이런 관행은 머잖아 불가능해집니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2026년부터는 소각하지 않은 폐기물을 수도권에 매립할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인천시는 이보다 앞선 2025년부터 매립지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서울시는 갈 곳 잃은 쓰레기를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2026년까지 하루에 '1천 톤을 소각할 수 있는 새 자원회수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입지선정위원회는 전문 용역기관을 통해 서울 전역 6만여 개소를 조사해 후보지를 5배수까지 추린 뒤, 5개 분야(입지/사회/환경/기술/경제적 조건) 28개 항목에 대한 정량평가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마포 상암동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게 서울시 설명입니다. 영향 권역인 주변 300미터 안에 거주민이 없고, 부지가 폐기물 처리시설로 지정돼 있어 행정절차가 비교적 간편한 데다, 땅 주인이 서울시라는 경제적 조건까지 갖췄으니 최적의 장소로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뚜껑 열어보니…준비 안 된 브리핑

새 쓰레기 소각장 부지 설명하는 서울시

새 소각장이 왜 필요한지, 이게 얼마나 중요한 계획인지는 더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서울시는 지난달 중순, 최종 후보지 발표를 코앞에 두고 새 소각장을 도심 랜드마크로 짓겠다는 구상을 내놨습니다. 우려되는 지점이 없지 않았지만, 내심 기대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시가 사흘 전 최종 후보지를 발표하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빈틈이 적잖았습니다. 명분 앞에 의연해야 하고, 뻔히 보이는 반발 앞에 논리가 정연해야 하는데, 설명회에 나온 서울시 담당자들한테선 의연함도 논리 정연함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즉답을 피하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던 것입니다. 당초 최종 후보지 발표일은 일주일 늦은, 이달 6일로 잡혀 있었습니다. 지난달 말 서울시로부터 "9월 6일 오전 10시 기자설명회에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던 배재근 입지선정위원장(서울과기대 교수)도 당일인 사흘 전 새벽에 조기 발표 소식을 전달받았고, 결국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입지선정위원회는 2020년 12월부터 이달까지 1년 반 넘게 회의를 이어왔습니다. 서울시는 그간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습니다. 이런 조직의 수장 없이, 부랴부랴 준비한 보도자료를 토대로 발표하니 설명이 풍성할 리 없습니다.

뭐가 이렇게 급했을까요. '보안' 때문이었습니다. 8월 말 최종 후보지가 상암동으로 확정된 뒤, 오세훈 시장은 박 구청장과의 조찬 자리에서 상암동이 후보지로 선정된 사실을 미리 알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확히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짐작은 가능합니다.

박 구청장은 오 시장과 같은 국민의힘 소속입니다. 하지만 어찌 됐건 정치인의 제1목표는 재선입니다. 당이 같든 그렇지 않든, 표가 우선입니다. 심지어 마포구에서 상암동을 지역구로 둔 시의원과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입니다. 서울시는 마포구, 시의회와의 협의 과정에서 상암동이 최종 후보지란 사실이 공식 발표 전에 새 나갈까 봐 걱정했습니다. 반발에 떠밀려 해명하는 모양새보단 허겁지겁하더라도 새 소각장 신설의 명분을 재차 알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숨기는 모양새로 보여서야


앞서 설명 드렸지만, 서울시는 28개 항목을 토대로 한 정량 평가를 실시해 후보지를 공정하게 선정했다고 밝혀왔습니다. 도대체 그 28개가 뭔지, 지켜보는 사람들은 '채점 기준'이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2주 전 랜드마크 구상을 발표할 때도, 최종 후보지를 발표한 사흘 전 기자설명회에서도 28개 평가항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브리핑 장소에서 기자와 서울시 공무원이 나눈 대화 내용 일부를 공유합니다.
 
- 기자: 28개 평가항목이 구체적으로 뭐 뭐였는지, (5배수 안에 든 지역들 가운데) 각각 어느 지역이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도 공개할 계획이 없으신가요?
- 서울시: 네, 현재로선 공개할 계획이 없습니다.
- 기자: 당연히 궁금해할 것 같은데요.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어느 항목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우리가 다른 지역보다 더 높게 받아서 선정된 이유가 뭔지.
- 서울시: 저희가 다음 주 공람 공고에 들어갑니다. 20일 이상 주민 등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인데 말씀하셨듯이 열람을 원할 경우에는 저희 평가 기준 그런 것을 저희가 공개….
- 기자: 열람하는 거엔 뭐가 있나요?
- 서울시: 저희 평가 기준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 기자: 점수는 공개가 안 되고요?
- 서울시: 예, 점수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 기자: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 서울시: 현재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최종 1순위를 결정했고, 1순위 결정된 내용만 일단 공개하는 것으로 그렇게 저희가 현재 입장을 정하고 있습니다.
- 기자: 그런 입장을 정한 배경을 여쭤보는 것입니다.
- 서울시: 아시다시피 굉장히 시민들의 예민한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저희가 굳이 1순위 외에 다른 후보지까지 2순위, 3순위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저희 입장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입지선정위원회와 상의해서 정했습니다.

 서울시는 결국 브리핑이 끝나고 몇 시간 뒤, 28개 평가항목과 마포 상암동(94.9점) 등 5배수 안에 든 지역의 총점(A 92.6점, B 91.7점, C 87.5점, D 84.9점)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이렇게 알려줄 수 있는데 오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못해 양보하는 모양새를 굳이 연출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서울시의 이런 폐쇄적인 태도는 앞으로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큽니다.

자원회수시설(소각장) 입지 선정 평가항목

상암동을 포함한 5개 지역이 28개 항목에서 각각 몇 점을 받았는지, 상암동을 제외한 2~4순위 지역이 어딘지 등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추후 마포구민과의 면담 과정에서 공개해달라는 요구가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서울시 담당자는 "세부적인 내용을 어느 선까지 공개해야 할지 정리가 덜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각장 후보지를 처음 공모한 게 2019년 5월입니다. 이후 25개 자치구 가운데 자원한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최종 선정된 후보지에서 평가 과정의 공정성, 투명성을 거론하며 반발할 게 뻔한데, 아직 이런 정리도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서울시는 괜히 밝혔다가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판단에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소각장 부지가 마포구로 최종 결정된 직후 경기도 하남시장이 낸 입장 한번 보실까요. 하남시는 한때 소각장 후보지로 거론된 서울 강동구와 접한 지역입니다. 부지가 마포구로 선정된 것은 "하남시와 강동구의 발 빠른 대응" 덕분이라고 합니다. 서울시는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발 빠른 대응'이 아닌 공정한 잣대로 평가가 이뤄졌고, 정치적인 메시지일 뿐이라면서요.

하지만 우리 지역이 어느 지역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더 적합한 부지로 판단된 것인지 모르는 상암동 주민 입장에서는 약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해도 커집니다. 시는 이런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선정 과정을 지금보다 훨씬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암동은 꽤 일찍부터 유력 후보지로 검토돼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시설 철거와 연계된 기술 용역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됐고요. 7월 초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 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마포구청장 취임식에만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소각장이 추가로 들어설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보 아니었겠느냐는 해석도 시청 안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소각장이 들어서 있는 상암동이 최종 후보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서울시가 후보지 평가 과정에서 '기존 시설 유무'를 고려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28개 평가항목이 공개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뒤늦게 공개된 평가항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서울시가 고려하겠다고 말한 부분은 <입지적 조건> 가운데 아) 항목, '환경기초시설 중복 여부'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정보가 적으면 오해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개해봤자 말만 많이 나온다고 덮어둘 게 아니라, 서울시가 보다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스무고개 식 질의응답, 쳇바퀴처럼 도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보다는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많이 설명하는 게 도의상 맞을 뿐 아니라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못 박은 철거 시점, 다소 흐릿한 대안

현 마포 소각장 부지에 새 소각장 선정

서울시는 2026년까지 쓰레기 1천 톤가량을 처리할 수 있는 지하 소각장을 신설하고, 기존 시설은 2035년까지 철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리하자면, 철거 전까지 약 9년간은 두 시설을 동시에 가동하겠다는 말입니다. 논의가 진행되다 보면 "진짜 2035년에 철거할 수 있느냐"는 말이 무조건 따라붙게 될 겁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서울시가 신규 소각장을 짓는 이유는 현재 가동 중인 소각장 네 곳만으로는 남은 쓰레기 1천 톤가량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천 톤을 소각할 수 있는 신규 시설이 추가로 들어서면, 처리 용량이 딱 맞게 됩니다.

핵심은 기존의 마포 시설이 처리해 온 쓰레기를 거뜬히 소각할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이, 철거 전까지 마련될지 여부입니다. 마포 기존 시설은 750톤을 소각하게끔 설계됐습니다. (명목상 750톤이고, 노후화 등 여러 요인으로 지난해 기준 실 소각량은 600톤에 조금 못 미칩니다.) 서울시는 마포를 제외한 기존 시설 3곳을 현대화해 '철거 조건'인 수백 톤의 소각량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종 후보지가 공개된 기자 설명회에서 서울시 관계자는 "(철거 시점인 2035년까지) 12~13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그사이 오래된 소각시설의 전면 현대화 사업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날 오후, 실무자에게 나머지 시설 현대화를 통한 소각량 추가 확보가 확실히 가능한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봤습니다. 정확한 것은 기술용역 결과가 나와 봐야 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설명회 때와는 톤이 사뭇 달랐습니다.

지난 6월 시작된 용역은 내년 12월에야 마무리됩니다. 현대화 사업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소각량을 어느 정도 늘릴 수 있을지 등 정확한 판단은 그때 가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무자는 폐비닐만 해도 하루에 230톤 정도 감량할 수 있다며 자체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철거 시점을 못 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습니다. 좀 더 명료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상암동 주민들은 이미 공약에 배신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상암 DMC 랜드마크 사업이 지지부진한데 소각장 랜드마크 구상은 또 어떻게 믿겠느냐"는 말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갈등은 격해지고 있습니다. 마포구는 법적 대응까지 검토한다고 합니다. 이번 사안은 오세훈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의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주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공정하게 선정했다면, 보다 투명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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