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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뒤통수' 쳤다는 한국…그래도 이득 아니냐는 미국

안보 동맹을 넘어 경제 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는 한미 양국의 밀월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문제입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불리지만 그 안에는 기후변화 대응에서부터 법인세 인상과 메디케어까지 다양한 미국 내 현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미국 내 친환경 산업 육성책 가운데 하나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이 포함돼 있는데 이게 문제가 됐습니다.

현대기아차

당사자인 현대차와 기아는 물론 우리 정부와 국민까지 모두 미국 정부가 뒤통수를 쳤다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방문 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따로 만나 조지아 공장 설립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대차 투자 유치를 자신의 경제적 성과로 알려놓고도 불과 몇 달 만에 '고맙다던 그 회사'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린 결과가 됐기 때문입니다.
 

전방위 문제 제기…미국은 왜?

현대차의 조지아 공장은 빨라야 올 연말에나 착공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2025년 완공이 목표인데 이대로라면 앞으로 최소 2년 반 동안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북미 지역에서 생산한 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법 규정 때문입니다. 조지아 전기차 공장에 55억 달러, 우리 돈 7조 2천억 원 외에도 오는 2025년까지 미국에 모두 10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결과입니다.

법안 논의 과정을 모니터해왔던 정부도 의회에서 법안 내용이 확정되자 상·하원 통과 전 부당하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지만 이를 관철시키진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전기차 보조금은 전체 법안 내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산업 육성이란 측면에서 우리만 예외로 해주기 곤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법은 통과됐고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과 함께 한국산 전기차에 지급되던 대당 보조금 7천500달러, 약 1천만 원은 즉시 끊겼습니다.

'전기차 보조금 차별' 정부 대표단 방미

그러자 당장 지난달 미 국무부 초청으로 한미일 의원 외교차 미국을 찾은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 의원단부터 전기차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습니다. 초청 목적과는 무관한 일이었지만 미 정부 주요 인사들과 만나 국내 정서를 전하고 이 문제가 자칫 국내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전달했습니다. 이어 산업부, 기재부 등의 실무자들로 구성된 정부 합동대표단이 미국을 찾아 협상을 벌였고, 한미 안보수장 회의에까지 이 문제가 테이블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전방위 문제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크지 않느냐는 미국

WTO 규정과 한미 FTA 위반이라는 우리 측 주장에 미국도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의 '분노'를 안다고 전할 만큼 국내 분위기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 개정을 해야 해 행정부 차원에서 당장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미 행정부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수세'인 셈인데 왜 이렇게까지 문제를 키운 걸까요?

지난 1일 열린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동에서 이런 결정의 배경이 일부나마 공개됐습니다. 당초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반발이 이 정도로 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전기차 보조금 분야에서는 한국 업체가 피해를 보지만 배터리나 태양광 등 다른 분야에서는 한국 업체가 이익을 얻는 만큼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의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이 간과한 것…동맹에 대한 예의

구체적인 추산액까지 제시한 건 아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한국은 얻을 게 더 많으니 반발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건데,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미국이 간과한 게 있습니다. 국가 간 경제 교류에서 모든 게 다 좋을 순 없으니 일부 손해를 보는 분야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이익도 최소한의 규범과 상호 신뢰를 깨는 것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 상대가 동맹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미국 내 생산 강조

이번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커진 배경에는 미국이 WTO 규정과 한미 FTA 같은 양국 간 교류의 원칙을 무시했다는 점이 깔려 있습니다. 동맹이라 믿고 거액의 투자까지 했는데 정작 나중에는 원칙에도 맞지 않는 일을 힘으로 밀어붙여 손해를 보게 만들었다는 불쾌함이 여론을 자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일에 여론이 이렇게 편들고 나서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미국도 늦게나마 상황 파악을 하고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NSC가 이 문제를 검토해보겠다고 밝히는 등 나름 성의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법 개정 없이는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미 의회가 나서줘야 한다는 건데, 11월 중간선거를 코앞에 둔 의원들이 당장 나서 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나라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며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도 "the future will be 'made in America'"라며 미국 내 산업 육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래저래 당분간은 인고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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