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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미훈련이 북침연습'이라는 북한,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취재파일] '한미훈련이 북침연습'이라는 북한,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실드'가 지난 22일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격 격퇴와 수도권 방어를 연습하는 1부에 이어, 지난 29일부터는 북한에 대한 반격작전을 연습하는 2부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30일 "또다시 핵전쟁의 검은구름을 몰아오고" 있다며, 한미훈련은 "철두철미 우리 공화국(북한)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불장난 소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외선전매체 '통일의메아리'도 30일 한미훈련이 "명백히 북침으로 대조선 지배 야망을 실현하며 나아가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제패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기도에 의한 것"이라며, "전면전쟁의 불집을 터뜨리는 뇌관으로 되지 않는다는 담보는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북한의 반발이 예상보다 약한 편입니다. 한미훈련에 대한 반발이 비중이 떨어지는 대외선전매체를 통해서만 나오고 있고, 미사일 발사와 같은 무력시위도 아직 없는 상황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김정은이 직접 "윤석열 정권 전멸"을 언급했고, 김여정이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고까지 했던 것에 비춰보면 다소 의외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 내부적으로 이번 한미훈련에 대한 반발은 대외선전매체를 통한 비난 정도로 수위를 조절한 것 같습니다.

한미군사훈련, 북한에게 달가울 리 없지만…

한미 연합훈련 을지프리덤실드 사흘째 진행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에 반발하는 이유는 북침전쟁연습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한미훈련 시나리오를 봐도 북한의 공격 격퇴에 이어 반격까지 상정돼 있는 만큼, 북한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공격과 방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먼저 공격을 받았는데 우리 땅에서만 반격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 중에는 공격이 곧 방어이기도 합니다. 북한도 상시적으로 남한을 상정한 타격훈련을 하고 있는 만큼 남침전쟁연습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 방어훈련이냐 공격훈련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쨌든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훈련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한미훈련 반대 입장을 밝혀왔고, 실제 훈련이 시작되면 각종 반발 성명을 발표하고 무력시위 등을 벌여오기도 했습니다. 남북대화나 북미대화 국면에서 한미훈련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한미훈련의 축소 내지 연기가 검토됐던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북한은 진행되고 있던 대화 국면을 중단시킬 정도로 정말 한미군사훈련에 반발하는 것일까? 즉, 한미훈련은 한반도의 대화 국면을 일거에 뒤엎을 정도로 북한에게 민감한 것인가?

지난해 8월, 한미훈련으로 남북 통신선 단절

남북 통신선 사흘째 불통 (자료화면)

지난해 7월 27일 남북 간 통신 연락망이 복원됐습니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 통신선을 끊은 지 1년 1개월 만에 연락망이 복원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친서 교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닷새 뒤인 8월 1일 일요일 저녁 김여정이 갑자기 담화를 냈습니다. 조만간 있을 예정인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라고 비난하면서, "희망이냐 절망이냐"를 선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미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실시됐고, 북한은 한미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되는 8월 10일 남북 통신선을 다시 단절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한미훈련이 대화 국면을 중단시킬 정도의 사안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한미훈련 하는 도중 남북 장관급회담 하기도


하지만, 시각을 좀 더 넓혀 보겠습니다.

남북 간에 수많은 회담과 교류가 진행됐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한미군사훈련은 진행됐습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이후 그 해 8월 하순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포커스렌즈'가 실시됐지만, 남북은 같은 해 7월과 8월 장관급 회담을 잇따라 열었습니다. 특히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2000년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는데, 이 기간은 한미훈련 기간과 겹칩니다. 그해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이 8월 21일부터 9월 1일까지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한쪽에서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는데도 북한이 평양에서의 남북 장관급회담에 응했다는 얘기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모두 21차례의 남북 장관급회담과 수많은 다른 회담들이 열렸는데, 이 기간 동안에도 한미연합훈련은 진행됐습니다. 북한이 한미훈련을 문제 삼아 회담 날짜를 연기한다거나 하는 몽니를 부리기는 했지만, 한미훈련 때문에 남북관계가 끊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이는 한미훈련이 대화 국면을 결정적으로 뒤집을 정도의 변수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이 한미훈련에 반발하긴 하지만, 북한은 당시의 정세를 판단해 필요한 만큼 반발합니다. 비교적 조용히 지나가는 게 자기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저강도로 대응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게 유리하다 싶으면 무력시위를 포함한 강한 대응에 나섭니다. 북한이 한미훈련에 반발하는 기준은 한미훈련 자체가 아니라 당시 북한이 마주하고 있는 이익이며, 한미훈련은 북한이 필요에 따라 반발하는 하나의 소재로 이용되는 것뿐입니다.

지난해 남북 통신선 단절 다시 살펴보면

서울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설치된 남북 직통전화 (사진=통일부 제공, 연합뉴스)

지난해 한미훈련으로 남북 통신선이 단절된 것도 보다 넓게 한반도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7월 27일 남북 통신선이 복원된 뒤 남한에서는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여정은 한미훈련이 '남북관계를 흐리게 하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며 사실상 한미훈련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남한이 남북정상회담을 바라고 있으니 이를 미끼로 한미훈련 중단을 밀어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미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되면서 김여정의 요구가 관철되지 못하자, 김여정이 한 말이 있으니 반발은 불가피했습니다. 결국 통신선을 다시 단절했지만 한미훈련 기간 동안 북한의 도발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한달 여 뒤인 9월 29일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통신선 복원을 발표했습니다. 한미훈련이 남북관계를 전반적으로 파탄 내는 소재로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미훈련 북한 반발 기준은 북한의 이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지금 대외선전매체를 통해서만 한미훈련에 반발하는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중국 공산당 20차 대회가 올 가을에 열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중국이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북한에게 한반도 긴장을 너무 고조시키지 말라고 요청했고, 북한은 국익에 따라 반발 수위를 조절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의 향후 행동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확실한 것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은 항상 당시의 북한 이익이 기준이었지 한미훈련 자체가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미훈련에 대해 북한이 반발한다는 것은 피상적인 관찰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해당 시기 북한의 정세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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