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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엇갈린 국민의힘 '비상상황'…과거에는?

[사실은] 엇갈린 국민의힘 '비상상황'…과거에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이준석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습니다. 지도부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법원 결정에 국민의힘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비대위 체제는 당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임시로 구성하는 당 지도부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민의힘에 비대위를 둘 정도의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비대위는 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봤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지도부를 바꾸기 위해 비상상황을 만든 것이며, 이는 지도부 구성에 참여한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준석 가처분 사실은

국민의힘에서는 지금껏 비대위가 여러 차례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비상상황'이 얼마나 심각했기에 비대위 체제가 가능했을까요.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다만, 법원이 '비상상황'을 체제 정당성의 중요한 기준으로 판단한 만큼, 과거의 비상상황과 지금이 어떤 점이 다른지 짚어보려고 합니다.

이준석 가처분 사실은

국민의힘 비대위의 역사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 6월 김무성 비대위 체제를 시작으로 2011년 5월에도 정의화 비대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의미의 '전권 비대위'의 시작은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당헌 보칙 111조를 신설, 비대위에 선출 지도부와 같은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당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될 경우, 비대위를 구성해 최고위 권한을 위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즉, 비대위가 설치되면 최고위는 즉시 해산되며 비대위는 최고위의 기능을, 비대위원장은 당 대표의 지위와 권한을 각각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 2011년 12월 비대위 체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년의 국민의힘 비대위의 역사를 훑어보겠습니다.

이준석 가처분 사실은

비대위 전환 이유에 '선거'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2011년 말, 당시 한나라당은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을 내주고, 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까지 일면서 몸살을 앓았습니다. 당시 친박계를 중심으로 홍준표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홍 대표는 저항했지만, 선출직 최고위원이었던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이 사퇴를 선언하자, 결국 홍 대표는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사퇴 파동의 중심에 친박과 비박의 계파 갈등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8리]한나라+홍/홍준표 대표 결국 사퇴(OK)
2011년 12월 9일,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나를 쇄신이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당내 계파 투쟁 권력 투쟁은 없어야 한다"면서 사퇴를 발표했다.

당 내부의 혼란은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세워지면서 마무리 됐지만, 외부에서는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반박도 있었습니다.

이듬해 1월, 유시민 당시 통합진보당 대표는 MBC 100분 토론에 나와 "보궐선거 다 이기고 서울 한 군데만 졌다, 그런데 뭐 그렇게 비상상황이라고 비대위 만들어 전권을 박근혜 위원장에게 다 주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당이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대선을 앞두고 친박 세력이 박근혜 당시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억지로 전권 비대위 체제를 세웠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당의 '비상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습니다.

다음 비대위는 2014년 5월에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였습니다. 참사 여파로 6월 지방선거 패배론이 고개를 들었고, 비상상황인 만큼, 비대위 체제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즈음 황우여 당시 대표의 임기도 끝났을 시기였습니다. 당시 이완구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았지만, 7월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 대회를 준비하는 사실상의 '관리형 비대위'였습니다. 전당대회에서는 김무성 전 의원이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다음 비대위는 2016년 4월 총선 이후 세워졌습니다. '옥새들고 나르샤'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친박 비박 간 공천 갈등 여파였습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이 떨어져 나왔음에도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패배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4.13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총선 다음 날인 2016년 4월 15일,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 참패에 모든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당 외부 인사인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고, 이후 전당대회에서는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같은 해 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본격화됐습니다. 새누리당은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습니다. 12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친박계였던 이정현 대표는에 대한 사퇴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12월 16일,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영상pick] "탄핵 강행하면 장 지진다" 이정현 그때 그 영상
2016년 12월 16일, 이정현 대표가 사퇴를 발표했다.

그렇게 목사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세워졌습니다. 당명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습니다.

그 다음 비대위는 2018년입니다. 자유한국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18개 시도지사 가운데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를 제외하고 모두 자리를 내주는,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습니다. 당시 홍준표 대표는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홍 대표는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 모두가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2020년 4월 비대위는 총선 직후 있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4·15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비례 정당인 미래한국당과 합해 103석을 얻는 게 그쳤고,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180석을 얻어냈습니다. 

당시 황교안 대표는 선거일 자정쯤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를 발표했고, 이후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습니다. '국민의힘'으로 당명도 바꿨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게 지금 비대위 체제입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성 접대 의혹으로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을 받았습니다. 국민의힘은 당 대표가 당원권이 정지된 상황을 비상상황이라고 보고 주호영 비대위 체제를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이준석 전 대표는 체제 전환에 반발하며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국민의힘 비대위 역사에서 전직 대표가 체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현장영상] 이준석 가처분
지난 10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반발하며 법원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간의 비대위 체제 수립에 정당성을 부여한 당의 '비상상황'은 모두 선거와 맞물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선거에 참패했거나, 혹은 선거 패배가 예상될 때 비대위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계파 갈등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권력 체제의 전환은 곧 주도권 싸움이기 때문에, 선거 패배를 지렛대 삼아 상대 계파를 공격하는 명분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정당에게 선거는 워낙 무겁기 때문에, 선거에 패배한 지도부는 당장은 반발하더라도 끝내 당권을 비대위에 내주는 것으로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누군가 내키지는 않더라도, 당내 비상상황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당선인

그렇다면 이런 선례들을 따져 볼 때, 이번 비대위는 과거와 어떻게 달랐을까요.

먼저, 국민의힘의 최근 선거 성적이 좋았다는 데 있을 겁니다.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3·9 대통령 선거, 6·1 지방 선거까지, 국민의힘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간 '비상상황'이 선거와 맞물려 정의됐고, 그렇게 비대위가 세워졌던 역사를 감안하면, 이번 비대위, 이례적인 건 사실입니다.

여기에 당 대표에 대한 유례 없는 징계 속, '비상상황'에 대한 당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비대위가 세워질 때마다, "지금이 그 정도로 '비상상황'인가"라는 반론이 나오기도 했고, 계파 갈등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결과적으로 비상상황에 대한 당내 정치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정당 운영의 안정성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정치로 해결되지 못한 비상상황은 법원의 판단에 넘어가게 됐고, 그렇게 법원은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가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 비대위 체제가 지지하고 있는 명분은, 그간의 '비대위 공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를 떠나, 당내 정치적 합의를 통해 정의 내려졌던 '비상상황'의 개념을 법원에 의탁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국민의힘 역사에 또 다른 선례를 남겼습니다. 어쩌면 정치가 실종되는 우리 시대의 단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로 해결됐다면, 법원까지 갈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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