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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재심 변호사' 박준영의 꿈

우리들의 '인권 변호사'

[그사람]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재심 변호사' 박준영의 꿈

1. '국선 재벌'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였다. 학력 콤플렉스, 가난 콤플렉스, 하다못해 머리숱 콤플렉스까지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모든 콤플렉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던 2002년, 고졸 출신 변호사 노무현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입에 발린 말인 줄 알지만 제2의 노무현이라고 불리는 게 싫지 않았다. 인생의 궂은 날은 가고 화려한 날이 오는 줄 알았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니 뛰어난 인재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검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시 합격으로 쉽게 벗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가난은 여전히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2001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준 2억 원에 가까운 빚까지 5남매의 장남인 이 사람 몫이었다. 월말이면 8개 카드로 돌려막기에 급급했다. 빚 때문에 사법연수원까지 휴학하고 과외를 하며 돈벌이에 나섰지만 빚이 줄지는 않았다. 대기업을 비롯해 로펌 등에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오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전남 완도 노화도라는 섬에 있는 고교 출신에 대학은 겨우 한 학기를 다녔을 뿐이다. 그것도 지방 대학이었으니 학연은 말할 것도 없고 인맥이니 빽 같은 것도 없었다. 어쩌다 운 좋게 사시에 합격한 섬 출신 촌놈에 불과했다. 사시 합격을 내세워 중매 시장에 나섰지만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은 저쪽이 마뜩잖은 표정이었고, 돈 때문에 본가보다는 처가를 먼저 챙겨야 하는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대와 희망이 컸던 만큼 사시 합격 이후 좌절감은 합격 이전에 못지않았다.

서울에서는 오라는 곳이 없었고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 형편도 못 됐다. 연고가 없는 수원으로 향했고 2007년 7월 어찌어찌 수원에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 사람 이름과 실력을 보고 사건을 맡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다행히 국선변호인 제도라는 게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서 자기 힘으로 변호인을 선임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변호인을 선임해주는 제도다. 많을 때는 한 달에 70건까지 국선 변호를 맡았다. 한 건에 20-30만 원을 받았는데, 사건 한 건 수임으로 몇천만 원, 몇억 원을 챙기는 유명 전관 변호사들 수임료에 비하면 푼돈이지만 그것도 모이면 그런대로 돈이 되었다. 그 시절 자신을 '국선 재벌'이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그사람' 인터뷰 진행하는 박준영 변호사

2. 유명해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

한 달에 60-70건의 국선 변호를 하자면 법정 쫓아다니기도 바빴다. 국선 변호를 누구보다 성실히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무엇인가 하는 척 시늉만 낼 때도 있었다. 의뢰인의 돈을 받아 변론을 할 때는 진실보다 의뢰인의 입장을 앞세운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내가 제대로 된 변호사인가 싶었다. 돈도 많이 벌고 정의도 추구하고 어려운 사람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변호사였다. 2008년 1월, 수원역 10대 소녀 살인사건 국선 변호가 맡겨졌다. 가출 청소년 5명과 노숙자 2명이 수원역 부근에서 10대 소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었다. 기록을 들여다볼수록 말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드디어 뭔가 기회가 온 느낌이 들었다.
 
"저는 이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내 인생을 바꿔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수원 사건도 그렇고 다른 재심 사건도 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게 열정으로 이어지던 데요. 알려져야 되잖아요. 이 사건으로 유명해져야 되잖아요. 인정받고 싶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현장에 자주 가고 그 사건에 모든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무명 법조인의 설움을 한 방에 날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몸이 떨렸다. 그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 속내를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때 저희 센터에서 이 사건을 돕기 위해 TF를 꾸렸거든요. 거기에 가셨던 선생님들 이야기가 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으로 개인적인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니, 그러더라는 겁니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순수한 정의감으로 일하면 좋겠지만 아이들을 도울 변호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고 그분의 그런 의도를 우리도 이용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생각했습니다." 유순덕/수원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전 소장

2013년 관련자 7명 전원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수원 사건은 시국사건이 아닌 중대 형사사건으로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두 번째 사례였다. 이 사건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돈 되는 사건도 들어왔고 '돈 걱정 없이 수입 맥주를 마실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재심 변호사로 이름이 알려지자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나라슈퍼 3인조 살인사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등이 재심을 맡아 억울한 누명을 벗겨준 사건들이다. 국가가 버린 사람들, 법의 이름으로 살인범의 누명을 쓴 사람들, 짓지 않은 죄 때문에 20년 이상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 옆에 이 사람이 있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 재심을 맡았을 당시의 박준영 변호사(왼쪽)

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난 사건을 다시 따지는 게 재심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인 흠이 있을 경우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재심 사건으로 무죄가 난 사건은 민주화운동 관련이나 간첩 사건 등 대부분 시국사건들이다. 민주화 이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진상을 밝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법원에 재심을 권고한 결과다. 그런 사건은 수많은 변호사들이 나서고 시민단체, 인권단체들이 응원한다. 그런 사건에 비하면 형사 재심 사건은 찬밥 신세다. '정치'가 없고 유명인이 없으니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다. 나라슈퍼 3인조 사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관심을 보인 시민단체는 없었고 무죄가 확정되었을 때 그 흔한 성명서 한 장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박 변호사님이 이 사건은 혼자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동료 변호사들을 모으려고 했어요. 저희 센터에서도 지역 변호사단체, 평소 아는 인권변호사들에게 연락을 해봤는데 아무도 호응을 안 해주셨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저희는 박 변호사님에게 고마움이 있죠." 유순덕/수원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전 소장

재심은 돈이 되지 않는다. 돈을 싸 들고 와서 재심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없다. 돈 있고 힘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억울한 일 당하지 않는다. 재심 사건은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리고 헤지고 낡은 기록을 뒤져 몇십 년 전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결론이 언제 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니 법원은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하다. 변호사 입장에서 보면 들이는 공에 비하면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사건만 맡는다. 그것도 돈을 받지 않고 맡는다.
 

3. 돈이 말해주는 이 사람의 삶

수원에 있는 아파트 전세보증금 2억 원이 전 재산이다. 거의 한도에 찬 마이너스통장을 비롯해 빚이 2억 원이니 사실 재산은 없는 셈이다. 오남매 중에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전남 해남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유일하다. 60대 중반인 새어머니는 지금도 청소 일을 다닌다. 가끔 당신 처지가 서럽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럴 때 죄송하다. 우리도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는 큰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 가슴 아팠다. 아이가 셋인데 장남이 중2, 막내가 이제 7살이다. 아이들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가끔 국민연금 예상 수령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보고 아내도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돈 문제로 답답할 때면 '어디 상 주는 데 없나'라고 혼자 소리를 한다. 그래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많이 유명해졌고 세속적으로도 이 정도면 성공한 거 아니냐는 생각 합니다. 경제적으로만 조금 안정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애들이 커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더라구요.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되는데 거기에 많이 둔감했구나 싶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칭찬을 받을수록 경제 사정은 어려워졌다. 2015년 말 대한변협이 주는 공익대상을 받았다. 그다음 해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졌다. 그때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라는 스토리 펀딩을 통해 1만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5억 6천만 원을 모아 주었다. 그 가운데 이 사람이 쓴 것은 2억 원 정도다. 파산은 면했지만 그렇다고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재심 사건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나에게 수임료로 줄 돈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했다. 수원 사건 피해 청소년들이 피해 보상금 가운데 10%를 세월호 유가족, 미혼모 시설, 위기 청소년 지원에 후원했다. 왜 그 돈 받아 자기 앞가림 먼저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이미지 관리 차원이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 말을 실천했을 때 대중들에게 비치는 제 이미지를 더 생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돈 돈 돈 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돈 돈 돈 하는 세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죠. 그런데 아이들 셋 키우고 코로나라는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사건 수임료는 없지만 강연료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더 이상 버틸 도리가 없었다. 얼마 전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 2명이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 54억 원 가운데 10%를 수임료로 줬다. 세금 등을 떼고 나니 3억 몇천만 원이 남았다. 그 돈의 절반은 전세 보증금을 올려주고 생활비로 썼다. 나머지 절반은 재심 사건 피해자 이름으로 공익 법인에 내놓기로 했다.

'그사람' 인터뷰 진행하는 박준영 변호사(왼쪽)

4. 분노하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

국가가 힘없고 약한 사람들 이렇게 짓밟았다고, 이 나라 사법제도가 이렇게 엉망이라고,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주장할 만하다. 사건 조작한 사람들, 진범을 잡고서도 풀어준 사람들, 그러고도 사과하지 않은 사람들, 어려운 사람 돕는데 이름 석 자 빌려달라는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한 사람들을 규탄할 법도 하다. 나 혼자 길거리에서 억울한 피해자들 위해 뛰어다닐 때 그 많던 인권변호사, 시민단체는 어디 있었느냐고,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기관이냐고 호통을 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과와 용서, 화해를 먼저 이야기한다.

-분노를 갖고 계실지 모르지만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 일반 사람들과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 미워하지 말아야지 생각해요. 옛날 같았으면 미워하고 분노하고 쫓아가서 그냥 따지기라도 했을 거 같은데 지금은 그런 감정은 없어요.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키고 가해자를 변화시키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함께 볼 수 있으려면 미워하고 증오하는 걸로는 안 되는 거 같아요.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2016년 2권의 책을 냈다. 그 가운데 자신이 쓴 <우리들의 변호사>는 더 이상 내지 않기로 했고 공저인 <지연된 정의>에서는 자기 이름을 뺐다. 출판 중단 이유를 물었더니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줬고 자신들이 대변해야 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부분만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건 속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라는 게 있고 이 책 속에서 비난받는 상대방의 처지나 상황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것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어요. 약촌오거리 사건이나 나라슈퍼 사건 같은 경우에는 담당 검사들이 사과를 했어요. 저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하고 용서하고 이런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이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태도를 두고 사람이 달라진 거 아니냐, 너무 타협적인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나온 당시 수사 검사와 경찰관들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변호인인 이 사람이 피해 당사자들에게 화해를 사실상 강요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을 이 사람도 잘 알지만 그런 화해도 중요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과, 완벽한 화해는 기대할 수 없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5. 혼자 한 일은 아니었다

솔직하다. 놀랄 만큼 솔직하다. 듣는 사람이 당혹스러울 만큼 솔직하다. 자신의 솔직함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핵심 포인트라는 것을 잘 안다. 솔직함에 대한 강박이 느껴지기도 한다.

"제가 거짓말 많이 했어요. 제가 이미지를 만들 줄 알거든요. 말과 글이 이미지를 만들잖아요. 변명하고 위선적인 모습 말과 글에서 다 나오거든요. 그걸 잘 활용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진정성에 승부를 걸자고 생각했습니다. 진정성이란 게 다른 게 아니라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부터 명함을 만들지 않는다. 두 달 전 광주에 사무실을 열었지만 전화번호와 주소는 비공개다. 연락처가 공개되면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찾아온다. 찾아와서 호소한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고,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죽어서도 눈을 못 감겠다고. 당사자는 억울하다지만 경찰의 수사, 검찰의 기소 과정, 그리고 세 차례의 재판 등을 통해 걸러진 사건들이다.

경찰서에서의 박준영 변호사 모습

-재심을 요청하는 사건들의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억울하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살인이면 살인, 강도면 강도 그 짓을 저지른 게 맞다면 뭐가 억울할 수 있느냐고 하시는 데 거기에 들어있는 동기나 목적, 과정 중에서도 억울한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판단 받지 못했다면 아무리 자기 결과에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억울하게 생각합니다. 20건 중에 본인이 19건을 저지르고 나머지 1건이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면 그래도 억울하거든요. 그리고 그 판결은 정당하지 못한 거거든요."

내 억울한 사연은 왜 안 들어주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방송하고 강연할 시간 있으면 내 기록 보라고 채권자처럼 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컸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한 적이 없다. 약촌오거리 사건을 처음 보도하고 재심을 제안했던 이대욱의 말이다.

"억울한 사람들, 사건이 박 변호사에게 어마어마하게 몰려왔죠. 그러면서 상처도 많이 받고… 사기꾼 같은 사람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버텨내더라구요. 유명해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쉬운데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지만 자기가 살았던 삶이 너무 불우했기 때문에 대단히 강인한 거죠. 다만 그 티를 내지 않는 거죠. 자기를 내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온 거 같아요." 이대욱 / SBS 기자

'포수가 총을 겨누고 있는데 사슴 한 마리가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냥 눈물 가득한 눈으로 그 총구를 바라보는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라고 재심 관련 인물을 표현했다. 다른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저 사람의 뭔가 좋지 않은 모습을 확인하려고 하다 보면 사건을 놓치게 돼요. 악의적이고 나쁜 사람들이 정말 있습니다. 상종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 나를 이용하고 조금만 섭섭하게 대하면 결국은 나를 자극적으로 공격할 사람들…. 그런데 그 안에 또 살펴봐줘야 될, 공감해야 될, 그걸 통해서 관심을 가져야 될 사회적인 문제는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두웠던 기억, 불행했던 일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지운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듭니다만 박 변호사께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픔과 슬픔을 지우는 것은 지혜죠. 살아가는 지혜인데 그것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라고 했거든요.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봐요. 아픔과 슬픔이라는 것은 나의 과거 경험을 끌어올리고 나를 닮은 사람들의 어떤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눈을 돌리게 하는 게 아니라?
"눈을 돌리게 하는 게 아니라 더 관심 갖게 하는 거 같아요. 그게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2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린 상주였던 저를 애처롭게 쳐다보던 동네 어른들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그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엄마 없이도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의지가 생겨요. 사회적인 약자들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각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힘든 시기를 우리가 함께 건널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고 봐요."

-그게 쉬운 것은 아니지요.
"쉽진 않죠. 그러니까 서로 노력하자는 거죠. 가끔씩 내가 뭔가 의욕이 없고 일도 하기 싫을 때는 사건 당사자를 보러 가거든요. 그 사람을 교도소로 찾아가서 당사자의 모습을 보고 의뢰인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내가 이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거기서 또 힘을 얻는 게 있습니다."

-그래요…
"저만의 방식이죠. 힘을 얻는 저만의 방식입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그에 따른 트라우마 등 과거의 기억은 밝기보다는 어두운 쪽이 많다. 가해자였던 때도 있지만 피해자였던 때도 많았다. 슬픔을 모르는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 자라기 힘들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믿는 것은 그런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두 군데 다녔고 무기정학을 당한 적이 있고, 고교 시절 결석이 100일이 넘는다. 가출은 밥 먹듯 했다. 마흔도, 쉰도, 예순도 경험하지 못하고 39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쓴 유서를 보여줬다. 오랜 암 투병으로 기력이 떨어진 어머니가 마지막 힘을 다해 쓴 흔적이 역력했다.

박준영 변호사의 어머니가 남긴 유서

"내가 너희들에게 내 사랑을 못 주고 더 따뜻하게 못해준 것이 자신이 원망스럽고 기가 막히지만 우리의 운명으로 돌리자…. 너를 때렸던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수 없다. 어린 동생들 잘 보살펴다오. 너희들이 지금처럼 공부하고 말 잘 들으면 엄마가 없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단다. 엄마가 없다고 술 먹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그것같이 불쌍하고 불행한 것은 없다. 그 점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라. 어린 너희를 놔두고 가는 내 마음을 헤아려다오."

박준영 변호사 초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한 모습

조직의 힘을 빌어 일한 적 없고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인 적도 거의 없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멀어진 사람도 적지 않다. 변호사 된 지 15년이 넘었고 재심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이지만 법조에서 뿌리를 깊게 내린 느낌은 아니다. 재심 사건이 법조인들이 보면 변방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이 사람을 대변하고, 이 사람 성과를 전파하고, 이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혼자 장구 치고 북 치고 노래까지 해야 한다. 재심 당사자들은 많은 깨달음을 주긴 했지만 이 사람을 도울 능력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 유명해졌지만 학연, 지연, 인맥 없는 것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그런 점에서 외로울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이룬 성과가 혼자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수원 사건은 청소년센터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고, 나라슈퍼 3인조 사건은 진범을 용서하면서 진상 규명을 호소했던 최성자와 박성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약촌오거리 사건에는 좌천을 당하면서까지 사건 해결에 매달린 경찰관 황상만이 있었고,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애쓴 노모가 있었다. 몇 차례 스토리 펀딩을 통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많게는 몇만 명, 적게는 몇천 명이 돈을 보내며 우리 사회가 나 하나쯤은 지켜주지 않겠느냐는 이 사람 믿음에 화답했다. 그런 사람들이 가장 큰 위안이자 힘이다.

약촌오거리 사건

6. 정치로의 권유? 정치의 유혹?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을 비롯해서 몇 개 위원회에 참여하신 것은 이제 나도 이름이 알려질 만큼 알려졌으니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나도 저 정도 자리는 갈 수 있는 사람이 됐구나라는 그런 자부심도 있었고요. 이게 또 발판이 돼서 더 영향력 있는 자리에도 갈 수 있겠구나… 그게 정치가 될 수도 있는 거구요. 저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맞지만 마이너잖아요. 배경이 있거나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인정받고 싶었어요. 저 사람 일 잘한다는 인정, 능력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는데 그런 자리에 갔다는 이력이 생기는 것은 그런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 부분이 사실 있습니다."

당신마저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말을 듣기도 하고, 당신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격려의 말을 듣기도 한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고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꼭 정치인이 돼야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주변에서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언젠가는 가겠지 또 그렇게 가야지. 그런데 세속적인 성공 기준이 꼭 이런 것이어야 되나, 이름이 알려지면 꼭 정치를 해야 되나라는 것에 대한 의문과 막 그냥 밀어내고 싶은 반감이 사실 있어요…. 이름이 알려지고도 정치를 안 하면 어떨까. 자기 능력에도 맞지 않는 자리에 간다라는 거 그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아요."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표현이 단정적이고 격해졌다. 법을 말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민주당 주류는 진보가 아니다, 형편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를 갈등으로 내몬 사람들이다. 국민의힘만 가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 죽을 때까지 거긴 안 간다 등등. 법률 전문가인 것은 맞지만 아직 정치 전문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수완박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 입장과는 다른 의견을 이야기했다. '검찰 똑똑한 걸 인정하자, 그들이 일 잘할 수 있도록 해주자, 그 똑똑한 사람들이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게 하자'는 게 이 사람 생각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우리 편으로 알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김학의가 인권 측면에서 보면 누구보다 약자라는 이야기나 지난 9년 동안 받아온 고통을 생각하면 이제 잊어줄 때도 되었다는 말은 대중의 정서와 어긋나는 말이다. 재심 사건을 다루면서 시간이 흐르면 사건은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는 깨달았다. 그 경험 때문에 정의와 불의를 일도양단식으로 가르는 것을 경계한다. 박수받는 일에 익숙했던 사람인데 지난 몇 년간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서 비난받는 일이 늘었다.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비난과 험담을 할 때면 자신이 만나왔던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살인범이 되고 무기수가 되고 수십 년 동안 옥살이를 한 사람들을 제가 다 봤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도 저렇게 버티고 사는데 내가 받고 있는 오해가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 힘은 있는 거 같아요."

이제는 얼굴이 명함이 됐고 누구 못지않게 사회적 발언권을 가졌으니 앞으로도 그에 걸맞은 자기 목소리를 낼 사람이다. 그게 곧 이 사람 방식으로 하는 정치일 텐데 현실 정치권으로 갈지 어떨지는 본인도 모르는 거 같다. 누구보다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니 제도권 정치를 하는 것으로 그 욕망을 풀어보려고 한들 이상할 것도 없고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런 각오를 잊지 않는 한 말이다.
 
"이용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치적 세력이 '약자들을 돌봤던 사람들을 우리가 쓴다'라는 그렇게 이용은 안 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박준영 변호사

7. 대법관, 헌법재판관을 꿈꾸는 당당한 비주류

주류가 되기를 원한 적도 있지만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우리 사회 주류 엘리트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김앤장 변호사들이 자신이 처리한 사건을 맡았다면 훨씬 더 잘했을 것이라고 했다. 주류에 대한 선망은 있으나 그들을 질시하거나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서 기죽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를 바꾸는 것은 잘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선한 연대라고 믿기 때문이다.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잘난 사람들은 위선적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법이 된 사례들이 꽤 있습니다. 김용균법, 민식이법, 태완이법, 임세원법이 그런 것들인데요. 이름이 법이 됐다는 것은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안타까운 사건을 겪었고 그 사건이 반향을 불러일으켜서 세상이 바뀐 거거든요. 태완이법 같은 경우도 태완이 엄마가 자식의 죽음을 가족의 불행으로 묻고 끝냈다면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법률 서적 아닌 다른 책 볼 여유는 별로 없었겠다고 묻자 이렇게 답을 했다. 반골의 기운이 확 풍겼다.

"책을 읽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좀 일찍 보았더라면 내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았을 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요. 많이 배운 사람들도 만나잖아요. 근데 많이 배운 사람들이 저렇게 행동하고 저렇게 모순되는 행동, 탐욕에 가득 찬 행동을 보잖아요. 그러면 많이 배웠다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으로 자신이 경험한 목소리들을 잘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결국 자리 욕심인가 싶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더 들어봐야 한다.
 
"재심 사건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도 없을 거 같고 강연으로 먹고 사는 것도 한계가 있을 같습니다. 뭔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아이들도 키울 수 있는데 그게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법조인으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거죠…. 저는요, 대통령이나 TV에 나오는 분들이 거창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도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 사람들도 나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런 꿈 한번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열심히 책을 보고 모임을 만들어 공부도 하려 한다. 그럴 기회가 왔을 때 능력 없다는 말을 듣지 않고 싶은 거다. 최고 재판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은 그냥 한 번 해본 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있어야죠. 50대 중반 이후는 되어야 할 거 같아요. 우선 그전에 재심 사건에서 성과를 더 내야지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요."

앞으로도 가진 게 없어서 도와달라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도울 생각이라고 했다. '찾아가서'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일반 사건도 조금 수임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안 됩니다. 왜 안 되냐면 돈을 받으면 돈 받은 사건 우선 해야죠. 그것도 양심입니다. 이런 이미지를 지키는 것도 저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지켜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사람' 박준영 변호사 인터뷰 진행하는 윤춘호 논설위원(오른쪽)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어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능력이 있길래 그 어렵다는 재심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일까요.
"제가 뭘 잘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제가 긍정적인 거 같아요. 운명에 대한 확신 같은 건 있는 거 같아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도 남들이 다들 미쳤다고 하는데 나는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재심 사건들도 마찬가지고요."

24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영화 <재심>을 통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그 영화가 이 사람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아니다. 박준영의 냄새가 나는 영화는 아니었다. 어느 한 사건, 에피소드 한두 개를 들어 이 사람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지인들의 이야기나 기록은 칭찬 일색이라 오히려 못미더웠다. 한때 이 사람과 뜻을 같이 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사람에게 연락을 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만 이 사람 가정이 그런대로 평화롭다는 말을 지인에게 들었다.

'재심 변호사'라는 말로 불리지만 썩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이 사람 이름 앞에는 '인권변호사'라는 말이 붙어야 한다. 그 말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의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목적과 정의감이 균형을 잡아가고 있고 이제는 억울한 분들의 시각과 관점을 더 중시하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보면 볼수록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었다. 4시간 가깝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이 사람의 열정과 헌신은 비현실적이다. 명성이 높아지고 얼굴이 알려지는 일의 허망함 같은 것도 말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민감한 질문, 어려운 질문, 난감한 질문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부정적인 모습이 보이면 있는 그대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질책하고 지적해달라고 했지만 이 사람을 통해 오로지 부끄러움을 배웠을 뿐이다.

※ 박준영 변호사와의 인터뷰 풀영상은 오늘(27일) 밤 8시 40분 SBS뉴스 유튜브 채널에서 최초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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