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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국, 중국 비난하더니…흉 보면서 닮는다?

[월드리포트] 미국, 중국 비난하더니…흉 보면서 닮는다?
미국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산업 투자와 의료비 지원, 재정 적자 감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문학적 재정 확보를 위해 법인세를 최소 15%로 올리는 등 미국 국내적으로 이런 저런 파장이 작지 않습니다. 여당인 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는데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정치적 승부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그 법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직격탄을 맞은 게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수차례 보도된 전기차 보조금 문제입니다. 사실 전기차 보조금은 해당 법이 담고 있는 폭넓은 친환경 산업 지원과 탄소배출 감축 분야에서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대차의 조지아 공장 건설에 대해 감사 입장을 밝혀놓고 정작 이 회사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 역설적 상황에 대해 미국 내 어느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전기차 보조금, 설명할 수 있는 논리 없을 것"

사실 미국에서 설명을 내놓고 있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를 설득할 만한 논리 자체가 없을 거라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이번 법안 준비 과정에서 미 의회는 상무부 등 행정부 측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걸로 알려졌습니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법안 통과가 급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법안 통과 후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미 행정부가 보조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실무적으로 검토 중인 걸로 알려졌는데 세계무역기구 WTO 규정이나 자유무역협정 FTA 위반이란 지적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이 관련 사항을 워낙 명확하게 규정(북미지역에서 제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급 등)해놓아서 하위 법령인 행정부 차원의 시행령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걸로 전해졌습니다.

미국 전기차 충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규정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은 크게 3가지입니다. ①북미에서 조립 생산된 전기차일 것. ②장착된 배터리의 핵심 광물 40% 이상 미국 또는 FTA체결국가 생산물을 것. ③배터리 부품 50% 이상이 북미에서 생산된 것일 것. 1번은 기본 전제 조건입니다. 그리고 2번과 3번은 지급 조건으로 각 조건이 충족될 때마다 3,750달러씩 지원됩니다. 즉, 3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대당 지급액인 7,5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특히 광물 조건은 앞으로 수년에 걸쳐 80%까지, 배터리 부품 조건은 100%까지 강화될 예정입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는 모두 한국에서 조립 생산되기 때문에 아예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전제 조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법 발효와 함께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 가격이 하루 아침에 1천만 원 가량 뛴 셈이 됐습니다.

미국 업체인 테슬라와 GM도 판매 대수가 보조금 지급 상한인 20만 대를 넘어 현재 보조금을 못 받고 있으니 같은 조건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앞서 지급이 중단됐던 미국 기업과 이제 막 아이오닉5 등 인기 차종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던 우리 기업이 갑자기 보조금을 못 받게 된 게 같을 리 없습니다. 특히나 미국 업체들은 내년부터 판매 대수에 따른 보조금 지급 제한이 없어지기 때문에 테슬라와 GM도 다시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5년 전 중국 배터리 보조금과 닮은꼴

사실 이런 식의 전기차 보조금 차별은 이미 중국에서 5년 전에 시행됐습니다.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에 한해 중국 내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의 배터리 업체가 급성장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정책은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했던 중국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꼴이 됐습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경제, 안보 정책을 펴왔다는 점에서는 사실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미국은 자국 이익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나름 자신들이 정한 규칙 혹은 원칙을 내세웠던 반면, 중국은 그 원칙이 훨씬 불분명하거나 자의적이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전기차 보조금 조항)은 교역 상대국을 설득할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상소 기구가 무력화 돼 있는 상태라 큰 의미는 없다는 게 정설입니다. 또 혹여 이긴다 해도 그간 행태로 볼 때 미국이 WTO의 결정을 따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자국 내 정치 상황에 미국이 내세웠던 최소한의 '논리나 원칙'까지 뒷전으로 밀린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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