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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의사에게 보낸 사진인데…'구글'은 보고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약속 등 챙겨야 할 일정이 많아 늘 수첩을 사용해왔습니다. 주요 일정은 물론 중요한 사항도 메모해 놓았는데 양이 많아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나중에 보니 쌓인 양이 제법 됐습니다. 연초면 늘 하나씩 사던 수첩을 쓰지 않게 된 건 편의성 때문이었습니다. 지갑과 함께 늘 갖고 다니던 수첩이었지만 혹시라도 놓고 나오면 불편함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수첩의 자리는 휴대전화, 그 중에서도 구글 캘린더가 대신했습니다. 그날 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건 물론 알람으로도 알려주고 메일과도 연동되고 언제 어디서나 입력과 삭제, 메모까지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한 번 쓰기 시작하니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메일은 물론 사진, 자료도 구글 드라이브에 백업 해두고 휴대전화를 새로 바꿀 때면 이런 저런 자료를 다시 내려받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내 일상을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게 찜찜하긴 했지만 구글 같은 대기업에서 나 같은 개인 자료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겠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요즘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라면 안드로이드이든 애플이든 대부분 비슷한 앱을 쓰고 계실 겁니다. 오히려 이런 서비스를 쓰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개인정보 유출 혹은 이른바 '빅 브라더'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지만 누가 내 정보를 그렇게까지 들여다보겠느냐는 생각도 없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게 있습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모든 계정을 들여다보는 존재, AI입니다.

뉴욕타임스 기사 남승모 월드리포트용

물론 이런 AI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인터넷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구글 등 IT 기업이 도입한 자구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범죄 예방과 자정 작업에서 톡톡한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예기치 못한 피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A Father Is Flagged for Photos Sent to a Doctor : 의사에게 보낸 사진들 때문에 범죄자 표시가 달린 아빠>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사(지면판 제목입니다)에는 이런 상황과 함께 초연결 사회에서 우리가 주의하고 생각해봐야 할 점이 담겼습니다.
 

의사에게 보낸 아기 사진…'경찰 수사'


가사 일을 하는 마크 씨는 지난 2021년 2월, 막 걷기 시작한 어린 아들에게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이의 음경이 부어 올랐고 아파하고 있었던 겁니다. 휴대전화를 들어 병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찍었습니다. 마크 씨 아내는 다음 날 아침 응급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 상담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다음 날이 토요일인 데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라 화상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간호사는 의사가 미리 검토할 수 있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고 마크 씨는 아픈 부위 사진을 보냈습니다.

사진을 본 의사는 항생제를 처방했고 덕분에 아이의 통증 부위는 빨리 치료됐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마크 씨는 10년 이상 써온 연락처와 이메일, 사진 등을 더는 쓸 수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경찰 수사 대상에도 올랐습니다. 그가 의사에게 보낸 아이 사진이 아동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구글이 가동 중인 알고리즘에 적발된 겁니다.

구글

처음 휴대전화에서 구글 정책을 심각히 위반했다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상세 링크에서 아동 성적학대와 착취란 문구가 떴을 때 마크 씨는 당황했지만 곧 아들 사진을 찍은 게 생각났고 잘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마크 자신이 문제 비디오를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기 때문에 담당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자신의 사례를 설명하면 계정이 곧 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구글은 "아동 성 학대 자료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우리는 자체 플랫폼에서 그런 것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마크 씨가 거듭 항의했지만 구글은 계정을 복구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구글의 제보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관련 자료 등을 확보해 범죄 혐의를 따졌지만 문제가 없다고 결론 냈습니다. 마크 씨는 경찰이 얘기해주면 계정을 돌려받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경찰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구글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크 씨는 경찰 보고서까지 제출하면서 구글에 다시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자신의 계정이 영구 삭제된다는 통보를 받은 마크 씨는 구글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문에 소개된 이런 사례는 마크 씨 사건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누구든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내 스마트폰이니까 괜찮아?…초연결사회 명과 암


구글이 융통성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문과 인터뷰 한 아동 보호 전문가는 구글의 정책에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원격 의료가 보편화되면 이런 일은 더욱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의사의 지시라고 해도 아이들의 성기를 찍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의사들도 이런 사진 촬영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을 거란 겁니다. 반드시 찍어야 한다면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지 않도록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휴대폰 스마트폰 채팅 (사진=픽사베이)

이런 배경에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아동 성 착취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말해줍니다. 부모가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일일지라도 자칫 실수로 이런 자료가 유포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가 받게 된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다만 한 법률 전문가는 아동 성착취 근절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이런 실수의 경우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구글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단순히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게 더 손쉽겠지만 아이들을 향한 어떤 행동이 적절하고 부적절한 것인지, 보다 어려운 질문을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 겁니다.

보다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구글의 책임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이용하고 있는 앱과 인터넷 서비스가 어떻게 관리되고 또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어떤 것이든 편리하고 좋기 만한 것은 없습니다. 초연결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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