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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용 있는 침체(Jobful Recession), 가벼운 침체일까? 침체의 전조일까?

[취재파일] 고용 있는 침체(Jobful Recession), 가벼운 침체일까? 침체의 전조일까?
세계 경제가 침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선 지금, 그 바로미터는 미국 경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금융 위기를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그 어느 때 보다 깊은 침체가 미국 경제에 찾아올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왔던 1970년대에는 부채비율이 낮았지만,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미 완화적 정책을 진행했기 때문에 향후 경기후퇴에 대응할 추가적인 재정적 대응 역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대해 미국의 경제 수장들은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고용 시장이 이렇게 튼튼한 데 어떻게 경기 침체냐'며 선을 그었습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역시 "고용 시장이 매우 강력한 상황에서 경제가 침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며 옐런 장관과 같은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비관론과 낙관론이 난무하는 탓에 고용있는 침체(Jobful Recession)라는 새로운 정의까지 등장했습니다.
 

낙관론 :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한 고용 시장"

이달 초, 옐런과 파월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미국의 7월 고용 지표가 나왔습니다. 미국의 비농업 부문 고용은 무려 52만 8천 개나 증가했는데,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25만 8천 개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미국의 전체 비농업 고용 인구와 실업률입니다. 전체 고용 인구는 1억 5,254만 명에 달했고, 실업률은 3.5%까지 낮아졌습니다. 이는 팬데믹 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2020년 2월 고용 지표와 판박이입니다. 당시에도 실업률은 3.5%였고, 고용 인구 1억 5,253만 명이었습니다.

실업률과 고용 인구 비교
▲ 실업률과 전체 고용 인구 비교
 
경기 침체에 빠졌다고 한다면, 경기가 크게 둔화되면서 신규 일자리 창출 및 고용은 줄고 해고는 늘면서 자연스럽게 실업률이 급등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고용시장은 경기 침체 시기의 고용 시장과는 분명히 달라 보입니다. 오히려 완전 고용에 가까운 상태로 비관론자들보다는 옐런과 파월의 주장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언론에서는 완전 고용에 가까운 노동 시장을 갖고 있음에도 경기 침체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경제 상황이 '기이하다(mysterious)'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노동 인구 340만 명과 수급 불균형

그런데, 팬데믹 이후에도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노동 참여율(the 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입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63.4%를 기록했지만, 지난달에는 62.1%로 1.3% 정도 떨어졌습니다. 미국의 전체 노동 인구(15세 이상의 노동 가능 인구)는 2억 6천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노동 참여율이 1.3%만 떨어져도 노동자 약 340만 명이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미국 상공회의소는 노동 참여율이 떨어지면서 노동 인구가 340만 명이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 노동 인구 감소
▲ 노동인구 인구 감소
 
사라진 노동 인구 340만 명이 왜 중요하냐면, 지금 미국의 일자리 수급 불균형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미국에서 창출한 신규 일자리는 1천69만 개에 달했지만, 6월 한 달 동안 실제 고용으로 이어진 건 63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지만) 수치로만 따지면 약 430만 개 일자리가 일할 노동자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공석인 상태인 겁니다.

지난 2020년 2월은 어땠을까요? 신규 일자리는 688만 개, 실제 고용 인원은 589만 명으로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일자리가 100만 개였습니다. 지금은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일자리가 430만 개 수준이니까 대략 330만 개가 더 늘어난 셈인데, 공교롭게도 미국 노동 시장에서 사라진 노동자 340만 명과 수치상으로 매우 비슷합니다.

실업률도, 전체 고용 인구도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했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노동 참여율을 낮아졌고 이는 지금의 미국 고용 시장에서 일자리 수급 불균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산업 전반에 걸쳐 발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도소매업과 교육, 서비스, 내구재 제조업 등이 일손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미 산업별 일자리 수급 불균형
▲ 미 산업별 일자리 수급불균형
 

비관론 : 사라진 노동 인구가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처럼 수급 불균형이 극심할 경우, 특히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설 경우에는 (이론적으로는) 과도한 수요는 줄이고, 부족한 공급은 늘려야 합니다. 수요를 줄인다는 것은 기업이 신규 일자리는 줄이고, 해고를 늘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기가 과열돼 있을 때 정부가 금리를 올리며 긴축 조치를 취하면 자연스럽게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줄이고 고용도 줄이면서 과도했던 수요는 제자리를 찾습니다. 반대로 공급을 늘린다는 것은 사라졌던 노동 인구 340만 명이 탄력적으로 다시 노동 시장으로 들어설 수 있게끔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라졌던 노동 인구 340명이 정부나 기업 등의 정책과 조치에 탄력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들이 쉽사리 고용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그만큼 수요를 더 많이 줄여야 합니다. 당초 고려했던 것보다 더 강력하게 긴축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크게 4가지 사유로 노동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 1)자산 증가, 2)이른 은퇴, 3)돌봄 서비스 부족, 4)창업 선택. 이 가운데, 이른 은퇴를 이유로 지난해 10월까지 300만 명이 고용 시장을 떠났습니다. 또, 팬데믹 위기가 시작한 2020년 봄, 350만 명의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은퇴는 베이비붐(1946~1964년 출생 : 약 7600만 명) 세대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금 소득, 충분한 자산 축적 등을 이유로 쉽게 노동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아이들을 위한 돌봄 산업은 팬데믹으로 크게 위축됐지만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면서, 아이를 둔 여성의 노동 참여율 역시 팬데믹 이전인 수준(70% → 55%)으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뉴욕 거리 사람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라진 노동 인구 가운데 많은 수가 고용 시장으로 돌아올 마음이 크지 않거나 돌아오고 싶어도 여건이 안 돼 돌아올 수가 없다면,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수요를 더 크게 줄여야 합니다. 즉, 긴축을 더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7월 고용 지표를 다시 본다면, 앞선 해석과 전혀 다른 의미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다시 보는 미국의 7월 고용 지표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3차례에 걸쳐 기준 금리를 1.5% 포인트나 올리며(0.25% + 0.5% + 0.75%) 당국이 긴축 조치에 나섰으나 7월 신규 일자리는 예상보다 2배 이상 더 만들어졌습니다. 단기간 1.5% 포인트 금리를 올린 것은 충분히 강력한 조치이지만, 그럼에도 고용 시장은 원하는 만큼 진정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공급 측면의 병목 현상은 수요 과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금리를 올리더라도 단기간에 노동시장 수급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기는 쉽지 않고, 따라서 (금리 상승에 따른) 정책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미국 고용 시장은 누군가에는 과열된 경기를 식히기 위한 연준의 강력한 긴축 조치도 버텨줄 수 있는 튼튼한 고용 시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웬만한 긴축 조치로는 진정시킬 수 없는 타이트하고 불균형한 고용 시장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누군가는 연준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 조치에 나서도 대규모 해고 사태 없는 약한 침체를 거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가벼운 침체는 망상에 가깝고 물가 상승 압력과 불균형한 고용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긴축 조치가 필요해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신들은 연준이 위험천만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비유합니다.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긴축 조치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필요 이상의 강력한 긴축 조치는 자칫 침체로 이어질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가는 만성적인 고물가가 경제를 짓누를 수 있습니다. 물론, 고용 시장만이 이 줄타기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전쟁의 장기화, 최악의 기후 변화 등 다양한 외부 변수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고용 지표만으로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완전 고용에 가까운 노동 시장이 연준의 줄타기에서 언제나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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