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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조성진의 핀란드 작은 시골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인-잇] 조성진의 핀란드 작은 시골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SBS 뉴스

작성 2022.08.20 10:13 수정 2022.08.20 12: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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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작은 새처럼 보이는 피아니스트의 건반은 중력의 힘을 받지 않는 듯했다. 한없이 자유자재로 하늘로 날아오르다, 갑자기 땅속 뿌리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리듬과 함께 그의 긴 앞머리도 같이 움직였다. 신기하게 연주홀 창문 뒤 자작나무 가지도 같은 방향으로 흔들렸다.

그는 수직운동에만 능한 것이 아니었다. 곡의 마지막 부분, 화룡점정을 찍을 때면 손가락이 10개밖에 안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횡적으로도 꽉 찬 소리가 나왔다. 이럴 때면 왼쪽 손도 분수처럼 공중으로 내뿜어졌다. 이런 힘이 작은 몸에서 나왔기에 더 '괴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8월 6일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핀란드 소도시 만타(Mänttä)에서 벌어진 음악 페스티벌 마지막을 장식한 피아니스트는 바로 조성진이었다. 늦게 도착해서 뒷자리에 앉았음에도 관객이 200명밖에 안 되는 소극장이어서 가까이에서 그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조성진

58유로(한화 약 7만 5천 원 정도)인 푯값 덕택에 귀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클래식 콘서트의 입장권이 비싸지 않은 이유는 기업과 지자체, 나라로부터 모두 후원을 받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몇 주전 아들과 함께 다녀온 2021년 쇼팽콩쿠르 우승자 부르스 리우(Bruce Liu) 콘서트도 비슷했다. 헬싱키가 아닌 핀란드 소도시에서 이루어졌고 표도 비싸지 않았다.

이번 콘서트가 더 인상적인 이유는 같은 한국인이어서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콘서트홀의 크기가 작았던 것이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이번 콘서트 장소는 전문 음악홀이 아니다. 미술관 한쪽 빈 홀에 의자를 쭉 펴놓고 이루어졌다.

조성진

적은 관중 앞이지만 그는 열광적 기립 박수에 앙코르곡을 2곡이나 들려주었다. 콘서트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 감동을 넘어 마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앞에 있던 할머니는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라며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뒤쪽의 젊은 청년 무리도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어리둥절한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콘서트가 끝난 후, 홀에 잠시 머무르는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앞에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나타난 것이다. 연주회 때 단 3번만 보여주었던 옅은 미소를 다시 띄고 있었다. 다가오는 관객에게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사인도 해주었다. 나도 '기회는 이때다' 싶었지만, 이미 음악을 통해서 그와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큰 미련을 가지지 않고 콘서트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조성진

이번 콘서트가 벌어진 곳은 소도시라는 말도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1999년 이래, 매년 여름이면 만타(Mäntta)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페스티벌은 특히 피아노 소극장 공연에 특화되어 있어 가까이서 세계적인 거장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조성진 외에도 2010년 쇼팽콩쿠르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2016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콩쿠르 우승자 사스키아 조르지니 등 쟁쟁한 피아니스트가 초청되었다.

글을 쓰며 주최 측에 관련 사진을 부탁드렸다. 호기심에 이렇게 멋진 음악 페스티벌이 처음 1999년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물었다. 페스티벌 총책임자인 니클라스 포끼(Niklas Pokki) 씨로부터 직접 놀라운 답장이 도착했다. 이 페스티벌은 그가 22세 피아노 전공 음대생이었을 때 친구들과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핀란드에 다른 실내악 페스티벌은 있지만 피아노 페스티벌이 없어 스스로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과 친구들이 주로 연주했지만 해가 지나며 이렇게 국제적인 음악 페스티벌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성진

핀란드의 성공한 많은 이벤트를 보면 이렇게 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유독 많다. 이것이 저력(底力), 즉 밑바탕에 깔린 핀란드의 힘이고 '음악 선진국' 핀란드의 진면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음악회가 벌어진 호수를 끼고 있는 그림 같은 세를라키우스 요스타 미술관(Serlachius Museum Gösta)은 눈도 즐겁게 해주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도 이곳에서 이틀간 머물며 핀란드의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쉴 수 있었다고 주최 측에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요즘 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도 콘서트를 따라 짧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번 1박 2일 여행도 '작아서' 더 행복했던 것 같다. 20년, 30년 뒤에도 오늘 콘서트장을 반 이상 채웠던 핀란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만큼만 행복할 수 있기를.

조성진
◇ 조성진 콘서트 연주곡
헨델 : 건반 모음곡 F장조 HWV 427
헨델 : 건반 모음곡 E장조 HWV 430
헨델 : 건반 모음곡 F단조 HWV 433
헨델 : 건반 모음곡B ♭ 장조 HWV 440
브람스 :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슈만 : 교향적 연습곡(Symphonic Etudes)

◇ 조성진 콘서트 앙코르곡
슈만 : 숲속의 정경, Op. 82 - 고독한 꽃
쇼핑 : 쇼팽 스케르초 2번 Op. 31

(사진 제공 : Ville Hautakan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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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이보영 행복을 연습하며 사는 전 셰프,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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