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두 달째 1300원…'고환율' 굳어지나

[취재파일] 두 달째 1300원…'고환율' 굳어지나
한국인에게는 IMF DNA가 있습니다. 10대 그룹이 부도나고, 가장들이 직장에서 마구 잘려 나가고, 환율이 2000원까지 치솟던 그 IMF 말입니다. 뼛속까지 새겨진 그 때의 기억은 동시대의 사람들은 물론 이후 태어난 세대들에게까지,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IMF DNA 가운데 가장 명징한 것 중 하나가 아마 환율에 대한 경계심이 아닐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고환율의 경험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두 차례의 위기 때만 일어난 것이다 보니 이 두려운 믿음은 2010년대 이후 오히려 더 공고해지는 느낌입니다. 외환 보유고 발표를 보면서 '아, 세계 몇 위라네..충분하구나' '아, 좀 줄었네..시장 개입하는 데 썼나' 따위의 생각이 여전히 떠오르는 것도 이 때의 후유증입니다.

최근의 원달러 환율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고,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도 다양합니다. 여기서는 금리의 측면에서 현재 환율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시작은 높은 물가 상승률입니다. 미국이 두 번 연속 기준금리를 0.75%p 올렸습니다. 지금의 물가 상승률이 유가, 곡물 등 공급 쪽에서 촉발된 면이 있긴 하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시중에 풀린 돈이 많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 수요 쪽을 둔화시켜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겁니다. 미 연방은행 한 곳의 관계자는 SBS와의 통화에서 "연준 내부에서도 금리 인상 시기를 실기했다는 평가가 이미 내려졌다. 실업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자신있게 금리를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요 국가들 가운데 이렇게 금리를 올릴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합니다. 유럽이 지난달 11년만에 기준금리를 0.5bp 인상했지만, 이제 겨우 제로 금리를 벗어난 수준인 데다 앞으로의 인상폭도 미국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을 바로 옆에서 맞아 경기 침체 우려가 큽니다. 금리를 함부로 올렸다가는 이탈리아처럼 부채가 많은 국가들의 상환 부담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국가마다 부채 규모도 다르고, 실업률도 다르고, 산업 구조도 다른데 일관된 통화정책을 적용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EU의 태생적인 한계입니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수준의 인상폭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또 다른데, 일본은 여전히 돈을 푸는 '양적 완화'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발언을 보면, '2%의 물가상승률을 위해 양적 완화를 지속하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 나라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6%, 9% 나오는 동안 일본은 여전히 2%대에 그치고 있습니다.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6년 반째 이어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환율1

유로나 엔, 파운드 등 주요 6개 통화 묶음과 비교한 달러의 가격을 '달러 인덱스'라는 지표로 만드는데, 유로의 비중이 절반이 넘고, 엔도 10%가 넘습니다. 원화는 영향력이 미미해서 달러 인덱스에 포함되지 않고, 달러 인덱스에 연동되는 수준입니다. 결국 달러 인덱스를 구성하는 주요 통화 발행국 가운데 유럽과 일본이 미국만큼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갑니다. 1%로 대출받아 2%예금에만 넣어놔도 이득입니다. 금리가 낮은 곳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상품에 투자하면 됩니다. 이건 엔화를 빌리고 달러로 바꿔 예금이든 채권이든 주식이든 달러 자산에 투자하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달러로 바꾸는 이 과정,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이 단계에서 외환 시장에는 엔화가 풀리고 달러에 수요가 몰립니다. '캐리 트레이드'라고 부르는 이 거래를 거치면서 엔화 가격이 내리고 달러 가격이 오릅니다. 또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실제 거래 뿐 아니라 방향성 자체에 베팅하는 투기 세력까지 몰리면서 변동성은 더욱 커집니다.

물론 반대의 측면도 있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이미 보유하고 있던 달러 자산을 처분하려는 움직임도 생깁니다. '기존 (캐리 트레이드) 포지션을 청산한다'고 표현하는데, 환율이 올랐을 때 파는 게 환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는 달러 자산을 팔고 자국 통화로 바꾸게 되니 위의 경우와는 반대가 되면서 달러 가격 하락 요인이 됩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요 며칠 엔화 가격이 오르고 달러 인덱스가 조금 내려온 게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미국만의 급격한 금리 인상을 상쇄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러가 '원탑'이 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1300원 언저리를 두 달째 맴돌고 있습니다. 1300원을 넘어본 게 13년만인 데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두 번을 제외하고는 넘은 적이 없다보니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의 사례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금융위기 때를 돌이켜 보면, 부동산 대출에서 파생된 복잡한 금융상품들의 위험에 금융기관들이(심지어 대형 은행마저도)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가 전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금융 시스템이 붕괴될 거란 공포가 시장을 짓눌렀고, 투매와 청산이 나타났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 10% 넘게 올랐다 떨어지며 순식간에 15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평온하게' 올라왔다는 게 큰 차이입니다. 1150원에서 1300원까지 오는 최근 1년 동안 1% 변동을 보인 게 닷새 뿐입니다. 시장 상황에 맞춰 천천히 올라왔고, 우리 나라만의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환율2

각국 금리의 측면에서 보면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큰 폭으로 내려갈 거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높은 환율은 수입 물가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역 적자 요인이 됩니다. 고환율이 수출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면 수출 물량 자체가 줄기 때문에 환율 효과도 반감됩니다. 앞으로 환율은 각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발표 때마다 크게 변동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느려질 때쯤 환율도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