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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한국영화 성공의 숨은 주역 '시각효과와 특수효과'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36

     2022년 여름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외계+인", "한산", "비상선언", "헌트" 4파전의 초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들에게 경쟁작이 뭐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영화계는 다 같은 배를 탄 동료이자 공동체"라고 입을 모으면서 "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진심이겠지만, 관객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냉정합니다. 쇼비즈니스의 숙명입니다. "외계+인 1부"는 개봉 한 주가 지나면서 박스오피스 순위와 예매율이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한산:용의 출현"은 개봉 나흘째인 어제 1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다만, 역대 흥행 1위인 "명량"때에 비하면 절반 수준입니다. 다음 주 개봉하는 "비상선언"은 "한산"에 이어 예매율 2위까지 치고 올라왔고, 개봉까지 열흘 정도 남은 "헌트"는 이정재 씨와 정우성 씨가 나머지 3개 영화 주연 배우들의 홍보 물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할 정도로 총력 홍보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언론시사회까지 마쳤는데, '항공재난'과 '첩보액션'이라는 장르물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사회성 짙은 묵직한 영화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최종 흥행 성적이 개인적으로 더 궁금해집니다.
   '빅4'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작 과정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그 예술을 빛내는 건 배우들이지만, 한국 영화가 이 정도 만듦새까지 올라오는 데는 시각효과(VFX)와 특수효과(SFX)라는 숨은 주역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외계+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외계인과 외계 비행선이 고려 시대와 현대 한국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니 당연히 대부분의 장면에 CG가 들어갔습니다. 외계인과 외계 비행선, 로봇 등은 온전히 CG입니다. "한산"의 대규모 해상 전투씬은 100% 세트장에서 찍었습니다. 얘기인 즉은 "한산"에 나오는 바다는 100% CG라는 겁니다. "한산"의 김한민 감독은 "'명량' 때만 해도 직접 바다에 배를 띄워야 했어요. 물에 대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인 지점에서 노하우가 쌓이면서 '한산'에서는 물에 배를 직접 띄울 필요가 없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비상선언"은 특수효과(SFX)가 빛을 발한 영화입니다. '항공재난' 장르의 영화라 보잉 777 여객기가 하늘에서 비상사태에 처하는 장면, 즉 비행기가 엄청나게 흔들리고, 추락하고, 360도로 회전하는 장면을 촬영해야 했는데 CG나 카메라 트릭으로 해결하지 않고 비행기 동체를 얹을 정도로 큰 대형 짐벌을 사용한 특수 효과로 해결했습니다. 사건 전개상 80년대의 미국, 일본, 태국 등 해외 로케가 필요했던 "헌트" 역시 미술과 VFX로 그 시대와 배경을 그럴싸하게 재현해냈습니다. 오죽하면 이정재 감독이 이 영화를 보면 앞으로 해외 로케 없이 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고 얘기했을 정도입니다.

VFX는 예술이자 과학   
"외계+인"의 CG와 VFX는 코스닥에 상장 돼있는 한국 최고의 VFX기업 중 하나인 덱스터 스튜디오가 맡았습니다. 김용화 감독이 "미스터 고"를 만들다가 2011년 설립한 덱스터는 "해적", "신과 함께", "백두산", "모가디슈", "승리호" 등을 거쳐 사실상 모든 종류의 VFX 기술이 집대성된 "외계+인"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의 VFX 슈퍼바이저 역할을 한 제갈승 덱스터 스튜디오 본부장을 만나 "외계+인"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실적인 묘사로 눈길을 끈 외계 비행선의 주차장 파괴씬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우선 조도와 광원을 측정하는 장치를 매단 자동차를 실제 주차장에서 비행선의 동선대로 운행시켜서 공간 정보를 얻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명값과 카메라 동선을 설계하는 한편 실제 주차장 천장과 기둥 등에 쓰인 자재의 물성을 3D 소프트웨어에 입력해 우주선이 부딪힐 경우 건물이 어떻게 부서질지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이너들이 그래픽 작업을 합니다. 중력이나 마찰 같은 물리적 현상에 최대한 부합하는 개연성 높은 수치들을 찾아가면서 CG를 만들기 때문에 실제와 유사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설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했던 CG가 사실은 물리적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바다 없이 찍은 해전
100% CG로 제작됐다는 "한산"의 해전 장면에도 실은 수조에서 찍은 장면이 몇 컷 들어가기는 했습니다. 바다 속의 앵글에서 물에 빠지는 왜군을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하지만 이 몇 컷을 빼면 학익진을 롱샷으로 보여주는 장면을 포함해 전함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 마련한 3천평 세트에서 거대한 녹색 스크린을 두르고 찍었습니다. "한산"의 VFX작업은 "빈센조", "승리호" 등에 참여한 M83 스튜디오가 맡았습니다. 물처럼 충돌에 따라 형태가 천변만화하는 물질을 CG로 표현하기란 정말 쉽지 않겠죠. CG티가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한산"에서 후반 50분 가량 몰아치는 한산대첩을 몰입감을 유지하면서 볼 수 있을 정도까지 국내 VFX 수준은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실제 전투가 벌어졌던 바다가 아니라 세트장에서 해전 장면을 찍게 되면 배우들이 감정 잡기가 쉽지 않겠죠.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박해일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물 위에서 찍는 장면도 아니었고 큰 세트에 배를 지어서 그 배에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배우가 해내야 되는 전투 장면들이 많다 보니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고 다시 연극했었을 때의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산"을 비롯한 최근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흔히 '프리 비주얼(사전 시각화작업)'이라는 불리는 동영상 애니메이션 콘티를 제공합니다. CG로 각 씬의 애니메이션을 미리 제작하기 때문에 모든 스태프가 촬영하는 장면이 최종적으로 어떤 앵글과 화면 사이즈, 미장셴으로 나올지 알 수 있습니다. 사전 시각화 작업도 VFX업체의 몫입니다. 박해일 씨는 덧붙였습니다. "사전 시각화 작업을 통해서 연기의 감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보조적인 준비가 돼있어서 오히려 집중하는데는 훨씬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할리우드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너무나 많은 작업을 하고 있잖아요. 이런 방식에 앞으로 적응도 많이 해야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수효과(SFX)의 힘으로 탄생한 항공재난 씬 
"비상선언"은 VFX뿐 아니라 SFX라 불리는 특수효과에 크게 의지한 영화입니다. "비상선언"도 비행기 창 바깥에 녹색 천을 두르고 찍거나 대형 LED월을 세워  비행기 바깥 풍경은 VFX 작업을 했지만, 비행기 내부 장면은 모두 실제 여객기 세트에서 찍었습니다. 일단 비행기 내부로 들어오면 특수효과의 영역인 거죠. "비상선언" 촬영에 쓰인 보잉 777 여객기는 미국에서 해체한 뒤 국내에 들여와서 미술팀이 국내 사정에 맞게 개조했습니다. 그런 뒤 비행 중 비상사태에 처한 상황을 촬영할 때는 비행기 동체를 짐벌이라 불리는 대형 기계 장치 위에 올려놓고 흔듭니다. 이 영화에는 전후좌우로 흔들 수 있는 3축 짐벌과 전후좌우는 물론 각도를 더 비틀어 흔드는 것이 가능한 6축 짐벌, 그리고 비행기를 아예 360도로 돌려버리는 회전 짐벌이 동원됐습니다. 많을 때는 3축 짐벌에 올린 동체에 100 여명이 함께 탑승한 채 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360도 회전하는 장면 등에서는 촬영 감독이 자신의 몸을 기동에 묶어 놓고 찍었고, 스튜어디스 대역도 와이어로 몸을 묶은 채 연기했습니다. 한재림 감독과 제작진은 SFX 효과를 위해 처음에는 영국 업체를 섭외하려 했다가 코로나로 여의치 않자 국내로 눈길을 돌렸는데요, 국내 최고의 특수효과(SFX)업체인 데몰리션의 류영재 실장이 이 작업을 맡았습니다.

  데몰리션을 방문했을 때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류영재 실장이 조정한 6축 짐벌의 조종기였는데요, 데몰리션이 직접 개발한 이 조종기는 정말이지 직관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실제 대형 짐벌과 똑같이 생긴 미니어처 짐벌을 조종하면 그대로 실제 짐벌에 적용되는 방식이었던 거지요. 제가 데몰리션에 갔던 날은 이 업체 설립자이자 한국 특수효과의 산 증인인 정도안 대표가 중국 출장을 가기 하루 전이었는데요, 정 대표는 중국의 세계적인 거장 첸 카이거 감독의 요청을 받아 중국에 십 개월 여정으로 출장을 간다고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데몰리션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겁니다.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헌트"의 VFX
다음으로는 이정재 씨의 감독 데뷔작인 "헌트"입니다. "헌트"는 사실 보고 나서도 일반 관객들은 "VFX가 어디 쓰였어?"하고 할만한 영화입니다. 그만큼 한국, 미국, 일본, 태국의 80년대 풍경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죠. 실내 장면들은 미술팀에서 고증된 소품을 구하거나 제작해서 80년대 분위기를 낼 수 있지만, 커버해야하는 범위가 넓은 80년대 거리 장면 등 야외 촬영은 미술팀이 아무리 꼼꼼하게 챙긴다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카메라에 잡히는 원경까지 모두 미술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한계는 CG로 메꿉니다. 세트와 CG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마치 시대를 역행한 것 같은 미장셴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시사회 직전 인터뷰에서 이정재 감독에게 "헌트"가 80년대의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냐고 물었더니 약간 두루뭉술하게 답을 하길래 스포 걱정 때문인가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헌트"는 80년대의 특정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80년대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사건과 정서, 사회 분위기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서울처럼 도시 풍경이 빨리 바뀌는 도시도 드물죠. 그러니까 "헌트"는 더더욱 VFX를 필요로 하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코로나 대유행의 한가운데서 촬영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VFX가 없었다면 아예 영화 촬영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아웅산 사태를 연상케 하는 태국에서의 폭탄 테러씬은 강원도 고성에 대규모 세트를 지어 놓고 찍었다고 하는데요, 굉장히 사실성 높은 세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세트에서는 특히 총격전과 폭발씬이 생생하게 촬영됐는데요, 역시 데몰리션이 특수효과를 맡았습니다.

고성에 차려진 태국 세트장과 배경의 VFX 효과 (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M)
    올해는 그동안 빌드업해온 한국 영화의 성가가 폭발한 해입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에 경쟁 부문 2편을 포함해 모두 5편이 진출했고,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또 "오징어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정재 감독/주연의 "헌트"가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 뒤에는 화면에는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영화 산업의 인프라인 한국의 시각효과(VFX)와 특수 효과(SFX)가 있었습니다. 2~300억원 이상 들어간 '빅4' 보다는 적은 예산이 들어간 "헤어질 결심"에서도 VFX로 매만진 장면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마지막 해변 시퀀스를 포함해 멋진 비주얼의 장면들은 대개 VFX로 만지고, 색보정을 거쳤다고 보면 됩니다. 저는 솔직히 VFX를 최소로 사용한 영화가 좋습니다만, 비용과 촬영상의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앞으로도 VFX는 대중상업영화에서는 상당한 규모로 사용될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VFX라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면, VFX를 쓸 수 밖에 없어서 못 보여주는 앵글, 사이즈, 감동도 있겠죠. CG와 실사 사이에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도 있을 수 있고요. 영화는 꿈의 공장입니다. 꿈은 역설적으로 현실감이 있을 때 비로소 꿈의 역할을 합니다. 때론 너무 많은 CG는 마블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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