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신에게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지난 1962년과 1979년에 사용했던 문구입니다. 중국은 이후 각각 인도,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가 최근 중국 관영매체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 추진을 겨냥한 것입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 문구가 29일 열린 중국 최고위 싱크탱크인 중국 사회과학원 타이완문제연구소의 포럼에서 자주 언급됐다고 전했습니다.
비슷한 문구가 또 있습니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6일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 방문을 강행할 경우 "좌시하면서 손 놓고 있지 않겠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표현은 6·25 전쟁 당시 저우언라이 중국 전 총리가 사용했던 말과 유사합니다. 당시 저우언라이는 미군의 북진을 경고하면서 "미국 군대가 38선을 넘어 전쟁을 확대하려 한다면 우리는 좌시하면서 외면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후 중국은 참전했습니다. 이처럼 최근 중국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할 경우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 펠로시 타이완 방문에 반발하는 이유는
중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더 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1991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톈안먼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현수막을 펼쳤다가 구금됐던 미국 의원 중 한 명입니다. 현수막에는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펠로시 의장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주요 국면마다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중국을 압박했습니다. 이런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하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할지, 타이완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중국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이 성사되면 이후에 더 많은 인사들의 타이완 방문이 잇따를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중국 관영매체,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
중국 관영매체들은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고 나섰습니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 등은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해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할 경우 다양한 군사행동이 가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타이완 주변 공역과 해역을 비행·항행 금지 구역으로 선포하거나, 타이완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전투기를 보내 펠로시 의장이 탄 수송기를 가로막거나 전투기가 펠로시 의장의 수송기를 따라 감시 비행하다 펠로시 의장이 착륙한 공항의 상공을 통과할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중국 전투기들의 타이완 상공 진입, 타이완 주변에 대한 탄도미사일 발사까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환구시보는 인민해방군이 군사적 대응에 나설 경우 "1995~1996년 타이완해협 위기 때보다 더 크고 복잡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푸젠성 핑탄 해사국은 오늘(30일) 오전부터 핑탄섬 부근에서 실탄 사격훈련에 들어갔습니다. 훈련 수역은 타이완 북부 신주현과 126km 떨어진 지점으로, 타이완과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펠로시, 타이완 방문 강행할까
펠로시 의장이 실제로 타이완을 방문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단, 바이든 행정부는 펠로시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군에서는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을 좋은 생각으로 보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난색을 표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데다, 자칫 우발적인 무력 충돌로까지 비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하지 않을 경우 중국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11월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펠로시 의장 개인의 자존심도 구겨질 수 있습니다.
중국도 오는 10월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당 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 여부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하게 될 경우 미중 간 긴장 수위가 최고조로 올라갈 것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