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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요즘 이 더위, '무더위'일까?

더위와 습도 이야기

[뉴스쉽] 요즘 이 더위, '무더위'일까?
덥다. 너무 덥다. '너무'라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더위의 양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날씨를 다루는 기사나 각종 말,글에는 '무더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며칠 전, 미국 서부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 산불을 다룬 어느 매체 기사에선 산불이 발생하고 끄기도 어려운 이유로 '무더위'를 들기도 했다.

그런데, '무더위'란 말의 뜻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1. 무지 더운 날씨
2. 물기(습기)가 많은 더위 



(※ 투표기능은 포털에선 지원되지 않는다. SBS뉴스 홈페이지나 앱에서 가능하다.)

답은 2번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라고 정의되어 있다. 산불이 나던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의 날씨는 31도 이상의 기온에 습도가 15%밖에 되지 않았다. 숲이 바짝 말라 땔감이 되는 이런 건조한 더위는 무더위라고 하지 않는다.

'무더위'라는 말은 어떻게 생겼을까?

'무더위'라는 단어의 어원을 따져보면 '물+더위'다. '무지+더워'가 아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 실린 어원 설명이 그렇다. 여기서, 이런 궁금증이 생길 법 하다. '물'의 ㄹ 받침은 어디로 갔는가?
[뉴스쉽] 물과 더위가 만나 무더위가 되는 언어적 원리- ㄹ의 탈락
우리말에는 'ㄹ 탈락'이라는 음운 현상이 있다. 단어 2개가 합쳐서 하나의 단어가 될 때, 뒷단어 앞자음이 ㄴ,ㄷ,ㅅ,ㅈ인 경우 앞단어 끝소리 ㄹ이 떨어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게 발음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다.
솔+나무 -> 소나무 / 딸+님 -> 따님 / 활+살 -> 화살

물론, 예외도 꽤 있다. '물+난리'이지만 '물난리'라 쓰고 (무난리 아님) '불+놀이' 이지만 '부놀이'가 아니라 그냥 '불놀이'로 쓴다.
'술+잔'도 그냥 '술잔'이다.

언어는 집단의 습관으로 형성되고 변천되므로, 왜 여기선 ㄹ이 떨어지는데 저기선 그대로 있느냐고 너무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어원을 생각해가면서 단어를 쓰면 보다 정확한 의미전달이 가능해진다.

 

찜통더위와 불볕더위: 찌느냐 굽느냐

더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방금 어원을 살펴본 '무더위'가 대표적이고, 그 외 '찜통더위', '불볕더위', '한증막 더위', '가마솥 더위' 등이 많이 쓰인다. 요즘 일반인의 언어생활에서는 보기 어려워졌지만 '한더위' '강더위' 등의 단어도 있다. 뉴스에는 '폭염'도 많이 나온다. 이 단어들은 모두 '무지 더움' '매우 더움'을 나타내는데, 온도 외에 다른 요인에 따라 쓰임새가 나뉜다. 바로, 습도다.

[뉴스쉽] 무더위 대표이미지
찜통에 옥수수나 떡, 만두 등을 넣고 찔 때를 생각해보자. '찜'은 바닥에 물을 넣어 가열함으로써 고온의 증기를 발생시켜 재료를 익히는 요리법이다. 뜨거운 김의 느낌 그대로 고온다습하다. '찜통더위'는 그런 더위다. '한증막 더위'가 유사표현이 되겠다. '무더위'는 '물+더위'이니 찜통 계열이다.

양상이 다른 더위도 있다. 햇볕이 뜨거워 온도는 높으나 습도는 높지 않은 경우다. '불볕더위'가 대표적인 표현이다. 매체의 기사에선 체감상 습도가 70%가 안되면서 온도가 높을 경우 '불볕더위'라고 쓰는 경향이 있다. '가마솥 더위'도 이 계열이다. 가마솥을 달구는 장작불의 기운처럼 몹시 뜨거운 날씨를 말한다. 요즘은 잘 안 쓰이는 말이지만 '강더위'도 건조한 더위를 표현하는 단어다. 비가 내려 열기를 식혀주는 일 없이 여러날 계속되는 더위를 '강더위'라 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습할 때 '무더위'라고 하는걸까?
 

습도가 어느 정도일 때 '무더위'?

습도가 몇% 이상일 때 무더위라고 하는지, 기상청이 정해둔 기준은 따로 없다. 그러면 기상 보도에서는 어떤 경우에 '무더위'라는 표현을 쓰는지, SBS 정구희 기상전문기자에게 물어봤다. 정 기자는 습도가 몇% 이상이면 무더위로 부른다는 식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면서, "무더위는 1)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습한 남쪽 공기가 들어오거나 2) 북태평양 고기압권에 아예 들어가서 습도가 높을 때 쓰는 표현"이라고 답했다.

[뉴스쉽] '무더위'는 어떤 경우에 쓰는 표현인가 - 정구희 기상전문기자의 설명
습도는 하루 중에도 수시로 바뀌고 지역별로도 편차가 크기 때문에 습도가 몇%라는 숫자만 갖고 '무더위'를 판별할 수는 없고, 기압의 배치를 봐서 한반도로 습한 공기가 많이 유입되는 상황이면 '무더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주의 날씨는 '무더위'에 해당할까? SBS가 위치한 서울 목동 일대를 보면, 이번 주 한낮에는 기온이 32~35도를 오르내린 반면 습도는 50~65%대에 머물렀다. 뜨겁긴 해도 푹푹 찌는 느낌은 덜했으므로, 일반인의 체감상 서울의 이번 주 한낮은 무더위라기 보단 불볕더위에 가까웠다.
기사 작성 시점인 29일(금) 오후 SBS 본사 소재지의 날씨. 기온이 37도인 반면 습도는 50% 이하다. 기상청 홈페이지 캡처.
반면 이번 주 서울에선 해가 진 이후에는 습도가 80% 안팎으로 오르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낮에 없던 습기가 밤에 어디선가 몰려왔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중의 수분의 양은 그대로인데 (즉, 절대습도는 그대로인데) 기온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같은 공기라도 온도에 따라 품을 수 있는 습기의 양이 달라진다. (즉, '상대습도'가 달라진다. 우리가 보통 '습도'라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상대습도'를 말한다.) 더 뜨거운 공기는 더 많은 습기를 품을 수 있다. 공기가 식으면 품을 수 있는 습기가 줄어든다. 새벽에 온도가 떨어지면 이슬이 맺히는데엔 그런 원리가 작용한다. 이번 주에 낮에는 좀 뜨겁더라도 견딜 만 했는데 저녁이 되자 눅눅한 느낌을 받았다면 상대습도 탓이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는 어떨까? 이번 주의 더위는 '무더위'라고 부를 만 한가? 정구희 기상전문기자는 서울만 보는 게 아니라 남부지방 등 다양한 지역을 고려하면, 그리고 밖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무더위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압배치 상으로도 덥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점점 강한 영향을 주고 있어 기사에서 '무더위'라고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게다가 열대저압부에서 발달한 5호 태풍 송다가 올라오고 있어 덥고 습한 공기가 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9일(금) SBS 8뉴스 날씨 캡처.

실제로 느끼는 더위는 다르다? 습도와 체감온도

같은 온도라도 불볕더위는 무더위보다 견디기가 좀 낫다. 그늘로 피하고 바람까지 살짝 불면 그래도 좀 견딜 만 해 지는게 불볕더위다. 여름의 미국 서부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이 그렇다. 사막지역인 중동 각국에서 손목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이유도 습도가 낮으므로 햇볕만 가리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중동지역의 습도가 높았으면 (사막도 안 생겼겠지만) 의복 문화도 다르게 발달했을 것이다.

메카를 찾은 순례자들. 사우디아라비아가 습한 기후를 가졌다면 의복이 다른 방식으로 발달했을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습도가 높은 더위, 즉 무더위는 짜증을 유발한다. 날이 더워지면 사람은 땀을 증발시켜 피부의 온도를 낮추는데, 습도가 높은 경우 이게 잘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습한 더위일수록 불쾌지수도 높아진다.

체감온도는 온도 뿐 아니라 습도에 좌우된다. 체감온도를 구하는 수식은 매우 복잡한데,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수준으로 뭉뚱그리자면 여름철 사람의 체감온도는 50%의 습도에서 기온과 같은 값을 가지고, 습도가 10% 높거나 낮아지면 체감온도가 약 1℃ 상승 또는 하강한다.


[뉴스쉽] 체감온도. 습도가 50%에서 10% 높아지면 체감온도는 1도 올라간다예를 들어, 기온이 33℃일 때 습도가 50%이면 체감온도도 33℃이지만, 습도가 70%이면 체감온도는 35℃로 높아진다. 반대로 습도가 떨어지면 체감온도도 기온보다 내려간다. 지난 28일(목) 오후 서울 목동 일대는 습도가 45%에 불과해, 기온(34.3도)보다 체감온도(33.2)가 더 낮았다.
 

바뀐 '폭염' 기준: 체감온도를 반영하라

기상청이 원래 운영하던 폭염특보 기준은 일 최고 '기온'만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폭염이 실제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같은 온도라도 습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체감하는 더위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기상청은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하루 최고 "체감"온도를 반영한 폭염 특보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2020년 5월부터다. 폭염주의보는 '일(日)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이 예상될 때, 폭염 경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이 예상될 때 발령한다.

29일 오전에 발효된 폭염 특보 현황. 진한 색이 경보, 점 표시된 곳은 주의보. 한반도 거의 모든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돼 있는 모습. [기상청 날씨누리 캡처]

'마른 더위-불볕더위'에서 생기는 문제

습도가 높은 더위에선 생활 악취도 잘 난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음식물도 더 쉽게 상한다. 장마철 더위에는 집에 세탁기가 있는 사람도 건조기를 돌리기 위해 빨래방을 찾기도 한다. 사막 기후를 가진 나라는 다르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름 2주 동안 취재했던 적이 있는데, 현지인들 모여사는 동네에 가 보니 설거지 한 물을 그냥 골목에 내다 버렸다. 저러면 악취가 나고 공중위생에 좋지 않을텐데..했더니, 땡볕에 금방 말라서 별 문제가 없단다.

그렇다면 습한 더위는 악이고 마른 더위는 선인가? 그렇게만 볼 수도 없다. 뜨겁고 건조한 지역의 경우 자연발화하는 산불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의 산불. 지난 23일 [사진: 게티이미지]
우리나라는 건조하다는 한겨울에도 습도가 40%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별로 없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 서부의 한여름엔 온도보다 습도가 더 낮아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온도-습도 크로스오버'라 하는데, 북미 서부의 소방당국은 이런 상황이 되면 산불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바짝 긴장한다.

[뉴스쉽] 북미 서부에서 발생하는 온도와 습도의 크로스오버 -산불위험 증가특히, 온도가 섭씨 30도를 넘고 습도는 30%아래로 떨어지면서 시속 30km/h에 이르는 바람이 부는 '30-30-30 크로스오버'가 발생하면 초비상이 된다. 작은 불씨도 대규모 산불로 확산하기 쉽고, 날씨가 바뀌지 않는 한 불길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체감온도 높은 무더위, 점점 심해지는 추세

그것도 큰 일이긴 하지만 우리 쪽에서는 사람잡을 '무더위'가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6월의 서울에 열대야가 발생했다. 뜨겁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은 예년같으면 7~8월에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큰 세력을 미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빨리 확장했기 때문이다.

8월 들어서도 평년보다 더울 전망이다. 기상청은 지난 7월21일 발표한 장기예보에서, 8월 초중순까지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가능성이 50%라고 예보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점선은 평년 기온수준, 실선이 다음주 예상치이다.

[뉴스쉽] 기상청 날씨누리의 예보: 8월 첫주까지 평년보다 더울 전망 자료: 기상청 날씨누리 (캡처)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면서 북태평양고기압의 위치가 변하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더위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APEC기후센터와 부산대학교의 공동연구 논문(2021)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기온 상승에 비해 체감 더위의 강도가 훨씬 강해지고 있다. 북서태평양 아열대고기압이 남서진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남서쪽 바다의 뜨겁고 습한 바람이 한반도로 더 밀려오게 됐으며, 이것이 한반도의 체감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폭염이 사람의 몸과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복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1981년부터 2018년까지의 한반도 일대 체감온도 변화를 분석했다. 논문의 주저자인 APEC기후센터 이현주 박사는 1981년부터 2018년까지의 여름 동안에 체감온도(HPT)의 상승 경향이 최저기온, 평균 및 최고기온의 상승 경향보다 훨씬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래 그래프에서 제일 위의 HPT(Human-perceived temperature)는 한반도 여름 체감온도, HPT_Land는 한반도와 비슷한 북위 30-40도 일대 육상 체감온도, 그 아래는 실제 기온을 나타낸다.

(출처: APEC기후센터 이현주 박사의 2021년 논문 '한반도 여름철 더위 체감온도의 변동성과 이와 연관된 대기순환 패턴')
이는 실제 기온의 상승 추세보다 사람들이 느끼는 폭염의 강도가 더 강하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커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논문에 따르면, 열사병 등 온열질환 가능성이 큰 '위험'수준(체감 41-54 ℃)의 체감온도 발생빈도도 2010년대 이후 크게 늘고 있다. 아래 그래프의 점선이 트렌드를 보여준다.

자료 출처: 같은 논문(2021,APCC)

폭염에는 낮잠이 보약 (feat. 기상청 '국민행동요령')

기상청 날씨누리 국민행동요령에 따르면, 폭염 발생시 "직장에서는 직원들과 함께... 점심시간 등을 이용하여 10~15분 정도의 낮잠으로 개인 건강을 유지합니다."라고 나온다. 건설현장 등 실외 작업장에서는 물,그늘, 휴식 등 폭염안전수칙을 항상 준수하고,
특히 취약시간대(오후 2~5시 사이)에는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적극 시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스페인 베트남 등 더운 나라에선 점심 먹고 나서 가장 뜨거운 시간에는 낮잠을 자고 그 후에 더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문화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점점 무더워지는만큼 잠깐씩이나마 '시에스타'식의 문화가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에어컨의 혜택을 보고 사는 건 아니니까.

무더위를 피해 낮잠자는 인도 노동자, 지난 16일 (사진:AFP)

(구성·편집: 이현식 D콘텐츠제작위원 /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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