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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갓생이 당신을 사로잡은 이유

자기계발 트렌드 흥망사, 갓생은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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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트렌드는 참 빠릅니다. 하나에 익숙해지려 하면 금세 따라잡아야 하는 다른 말이 생기죠. 요즘에는 추임새처럼 붙는 말에 '갓생'이라는 신조어가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갓생은 신(God), 또는 그에 준하는 위엄을 가진 대상에게 헌사하는 일종의 감탄사인 '갓'과 생(生)의 조합으로 이뤄진 말입니다.

타인에게 귀감이 될 정도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단어로, 주로 긍정적 맥락에서 쓰입니다. 다만 종래 '알파'가 붙은 지칭들(가령 알파남, 알파녀)이 특정인의 '능력'과 '결과'를 강조했던 것과 달리 '갓생'의 긍정성은 '과정'에서 온다는 차이가 결정적입니다. 의미를 살린다면 영어로는 '허슬러(Hustler)'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용례는 이러합니다. "정혜경 기자의 <어쩌다>를 읽다니, 나태해지기 쉬운 주말에 아침부터 교양을 쌓는 당신은 정말 갓생이군요!"

어쩌다 뉴스 갓생편

구글에 따르면 '갓생'이 검색어로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20년 상반기부터입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검색량이 폭증했고 올해 들어 만연해졌습니다. 어느덧 SNS와 유튜브 채널에 인증되는 '갓생' 관련 포스팅도 수 십 만 건에 이르고, 어떤 기업에서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이른바 '갓생기획팀'이라는 프로젝트 부서도 신설됐습니다.

참여 조건으로 나이를 엄격하게 제한한 이 팀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상품 기획부터 마케팅, 출시까지 모두 도맡아 구매자들의 소유욕을 자극할 만한 상품을 빠르게 고안하고 시장에 내놓습니다. 이렇게 내놓은 상품들이 연이어 '완판' 실적을 내며 덩달아 '갓생기획팀'이라는 부서 이름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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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보면 '갓생'을 좌우하는 것이 마치 성공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이 선망 받는 삶의 형태가 명백히 '성취'를 지향하긴 하나, 그 성취의 모습은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승진, 부의 획득, 신분의 변화 등과 같은 극적인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사소할 수 있는 '작은 성취들'이 갓생을 이루는 핵심 요소입니다.

갓생이 등장한 배경엔 코로나19 팬데믹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재택과 사회적 고립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학교나, 회사가 아닌 스스로 삶의 규칙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습니다. 매일 작은 목표들을 시간 단위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예를 들자면 '이른 기상 시간'은 가장 대중화된 갓생의 시행 규칙입니다. 아주 작은 습관처럼 보이지만 꾸준히 지속하기는 어려운 루틴, '갓생러'들은 이를 '리츄얼(Ritual)'이라 부르고 가능하면 매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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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기상 시간'은 자기계발 씬(scene)에서 처음 등장한 트렌드가 아닙니다. 차라리 이 분야 트렌드의 변하지 않는 상수로 봐도 무방합니다. 명심보감에 따르면, 일찍이 유명했던 인플루언서 공자는 삼계도(三計圖)에서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고(一生之計在於幼),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一年之計在於春), 하루의 계획은 인시(새벽)에 있다(一日之計在於寅)"라고 말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인(寅) 시는 십이시의 세 번째 시로, 오전 3시부터 5시까지입니다.

요컨대 새벽잠을 줄이는 것은 문명사회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부지런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그만큼 일반적으로 성취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겠죠. 실상 방만해지기 쉬운 생활과 마음의 자세를 수련하는 '자기계발'의 역사는 이 어려운 것을 해내고 그에 따른 성취감을 맛보기 위한 '강제력'의 역사라 봐도 무방합니다.

1970년대엔 국가가 이런 자기계발(?)을 적극 독려했습니다. 1972년 3월 7일 대통령령으로 설립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근면, 자조, 협동의 3대 이념을 당시 갓생의 요건으로 정립하고 '새벽 종'을 울려 전 국민을 깨웠습니다. '표준 인간'의 모습이 제정되었고 이는 관습으로 강제되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당시의 기억은 한국인들의 유전자 어딘가 깊숙이 각인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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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또 중요한 동기부여의 해로 기록될 시기는 바로 2003년입니다. 책 한 권이 현해탄을 건너옵니다. 'Y2K(Year 2000)'로 시작한 2000년대 초는 새로운 희망과 기대 그리고 쇄신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시기였습니다. 양한방 의학자 사이쇼 히로시의 책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은 출간 즉시 히트작에 등극하며 성장에 목마른 현대 한국인의 공허함을 채워주었습니다.

주요 논리는 이러합니다. 남들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 두 세 시간을 추가로 이용할 수 있는데 이 시간을 밑천 삼아 소속 조직과 집단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구가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즉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앞서가기 위해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저자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생활 습관이 인체 리듬과 자연의 섭리에도 부합한다는 설명도 덧붙여졌습니다.

'아침형 인간'은 한국인들의 구미에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이런 '갓생'적 생활 태도는 이내 전 국민적인 유행으로 번졌습니다. 작용엔 반작용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아침형 인간에 대한 성토와 분노, 국가주의적 음모라는 견해, 올빼미형 인간이 오히려 더 영리하다는 취지의 세계 각지 연구 등이 쏟아졌습니다.

영국 서레이 대학의 사이먼 아처 교수팀은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생체 시계를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PER 3'라는 유전자의 길이에 따라, 그러니까 사람마다 고유한 유전자에 따라 능률이 좋은 시간대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반동 측 목소리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도 '아침형 인간'에 반대하는 측의 주요 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기상에 관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거듭됐습니다. 그 사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욜로(YOLO)와 미니멀리즘, R=VD(Reality=Vivid Dream), 시크릿 같은 사조(?)가 반짝이며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약 10년이 흘러, <미라클 모닝>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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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는 메시지는 같은데, 성격이 좀 다릅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기업정신건강 진단 및 관계 치료 전문가인 마인드루트 이경민 대표는 이때부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성공'의 형태가 달라졌다고 지적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표준화된 성공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젠 타인의 시선에서 '성공'이 어떤 모습일지의 중요성이 떨어졌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시간표가 아닌 내가 내 삶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 아침 시간을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난 겁니다."

실제로 <미라클 모닝>의 저자 할 엘로드는 20살에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겪고 난 뒤 삶의 여러 굴곡을 거치면서 인생의 목표를 기억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경영하기 위한 가이드로 '아침 시간'을 제안합니다. 회사나 조직에서 성공하기 위해 '더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자기만의 시간으로 말이죠.

이 대표에 따르면 현재의 갓생은 이러한 미라클 모닝의 이데올로기를 기원에 두고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에 따뜻한 물 마시기, 짤막하게라도 감사 일기 쓰기, 명상하기 같은 작은 것들을 계획하고 또 이를 실천하면서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획득합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의미가 있는 '성공'보다는 자신의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데 더 큰 의미를 둡니다. 국가나 조직의 인정과 신뢰가 아닌 나 자신이 납득할 만한 성취가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 '갓생' 트렌드는 이런 작은 성취들을 '함께' 실현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과 같은 각종 목표들을 완료했다는 표식을 자신의 SNS에 전시하고 공유합니다. 자기 효능감을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홍보합니다. 심지어는 같은 목표(매일 일기쓰기 등)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모아주고 또 이를 독려해주는 코치(혹은 인플루언서)를 돈을 주고 함께 고용하는 서비스 플랫폼도 여럿 등장했습니다. 개별적이나 확실하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들은 이렇듯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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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워라밸' 같이 손꼽히는 'MZ 세대'의 상징어들은 사실상 소위 '요즘 것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힐난이 포함되어 있는 말로도 인식되곤 합니다. 이런 상징어들은 젊은 세대를 못 마땅하지만 협력하기 위해 이해해야 하는 대상으로, 끊임없이 불가해한 미지의 대상으로 만듦과 동시에 그 속에 있는 다양성을 뭉개며 납작한 이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근래의 '갓생' 트렌드는 자기계발의 유구한 DNA를 공유하는 후배 세대로서, '성장'에 대한 갈망을 품은 MZ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다른 방향으로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다만 모든 세대가 경험하고 또 시달려왔던 '번 아웃' 증후군과 '타임 푸어' 증후군은 여전히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은' 갓생 트렌드에서도 부작용이 될 수 있습니다.

버즈피드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인 앤 헬렌 피터슨가 쓴 저서 <요즘 애들(2021)>은 MZ 중에서도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책에선 밀레니얼 세대가 필연적으로 처하게 된 번 아웃 증후군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들은 대표적인 '낀 세대'입니다.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일군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바뀐 현실 속에서('부모보다 적게 버는 최초의 세대') 악전고투를 경험하게 됩니다. 심지어 부모 세대로부터 학습된 '낙관론', '체제에 대한 순응',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믿음과 현실 사이에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으며 결국엔 번 아웃 증후군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소진 증후군을 이겨내고 또 예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자기계발의 동기는 아래처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분들도 자신이 어떤 자기계발에 매진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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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박수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긍정하는 태도는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오늘 계획한 작은 것들을 성취한 나를 위해 체크리스트에 표시를 하는 것도 좋지만, 만약 이를 성취하지 못했더라도 내가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방향'을 믿고 내일 다시 뚜벅뚜벅 걷는 힘이 '자기 착취'의 굴레로 빠져들지 않는 길입니다. 우리는 '갓생'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뿐, '갓'은 아니라는 겸허함과 함께 말입니다.

30년 경력의 직장인이자 '꾸준함'의 대명사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 디렉터는 단기적인 목표에 매진하기보다 방향성 설정에 더 할애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 열정의 근간엔 수 십 년 간 다져온 '체력'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50살이 되어서도 과감히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 벨리 본사로 떠나게 된 가장 큰 지원군이었다는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 지치지 않는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리얼 꿀팁'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어쩌다> 특별부록으로 준비한 30년 경력 구글러 워킹맘의 프로 갓생기 인터뷰 풀버전을 확인하세요.)
▶ 쉰 살에 구글 본사행 잘 봐, 이게 찐 갓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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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요즘 애들>, 앤 헬렌 피터슨, RHK코리아, 2021.
<스펙경쟁 사회에서 자기계발 동기와 자기계발 강박이 취업준비생의 심리상태에 미치는 영향>, 허창구, 2017.
<자기계발의 사회학: 대체 우리는 자기계발 이외에 어떤 대안을 권유할 수 있는가?>, 전상진, 2008.
<특집: 위기의 청년>, 문화과학 통권 제37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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