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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육성도 모자라 방값이 공짜라는 고시원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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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금촌동엔 이상한 고시원이 있습니다. 밥과 김치, 라면만 제공하는 다른 고시원과 달리 원장이 직접 요리해 집밥 같은 식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오윤환/고시원장 : 저희들은 처음부터(20년 전부터) 밥하고 국하고 김치하고, 제가 먹는 그 밥상에서 같이 먹었으니까 다 해줬죠.]

사회복지시설도 아닌데, 당장 돈 낼 형편이 안 돼도 일단 재우고 밥을 먹인다는 게 가장 특이한 점입니다. 

[오윤환/고시원장 : 방은 25만 원을 받아요. 돈을 벌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비가 오는데 아기를 업고 온 거예요. 이 사람이 가정불화가 있어서 왔구나, 이런 생각이 언뜻 들더라고요. 그러면 어디 갈 데 없으면 우선 여기서 계시라고, 그래서 여기에 와서 계시게 됐죠. 그렇게 해서 한 사람 두 사람 (무료 투숙객이) 늘다 보니까 이게 소문이 났어요. 나는 그냥 방이 비어 있으니까 있는 방 그냥 내준 것뿐이고, 나 그냥 밥 먹는데 같이 밥 한 그릇, 수저 하나 놓고서 같이 먹은 것뿐인데, 세상에 무엇인가를 조금 기여할 수도 있네, 보람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2002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서울로 출근하는 의사, 세무사 등 전문직이 많았지만,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 부양가족 없는 노인, 몸이 불편한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주로 살고 있습니다. 고시원비를 내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 원장은 신고하지도, 짐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오윤환/고시원장 : 섭섭한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을 하죠. 이 사람이 오죽하면 나갔겠나, 이 짐까지 그대로 놔두고 참 무슨 사연일까. 요즘 같은 여름에는 이 사람이 지금 밖에서 노숙을 하고 있나, 그럼 옷이라도 갖고 갔어야 되는데…. 그 사람이 밉기도 하지만 오히려 안쓰럽고 안 됐어요.]

이렇게 고시원을 운영하다 보니, 한 해 적자만 수백만 원입니다. 그럼에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건 오 원장 스스로도 갈 곳 없고 배고팠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윤환/고시원장 : 1997년도 11월에 IMF가 와서 98년도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그만두게 됐어요. 막상 그만뒀는데 집에 얘기도 못해서 (아침에) 늦게 나올 수도 없잖아요. 애 엄마한테 돈을 달란 소리가 안 나오니까, 있는 주머니에 있는 돈도 아껴서 써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점심을 좀 굶고 그러죠. 배고픈 서러움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이 고시원을 하면서 밥을 해주고 이렇게 하는 게 그래도 밥이라도 챙겨주고 그러면 이 사람들 마음 따뜻하고 뭐 나쁜 생각 안 하고 있지 않을까.]

최근엔 가파르게 오른 물가 때문에 더욱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 원장이 조용히 이어온 선행을 멈출 수 없는 건 좌절 속에 이곳을 찾은 뒤 돈을 모아 식당을 차리고, 가족을 일구고, 실패했던 사업을 다시 일으킨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입니다.

[오윤환/고시원장 :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마음 아프고 정말로 다 도와주고 싶은 안타까운 사람들만 많이 와 있어요. 누군가가 조금만 도와주고 관심만 가질 수 있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가 될 수 있고 새 삶을 살 수 있거든요.]

(취재 : 백운 / 영상취재 : 홍종수 / 영상편집 : 이홍명 / 구성 : 박정현 / CG : 성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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