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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19로 깊어진 학력 양극화…해법이 있을까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지난해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코로나 2년차인 지난해, 교육 당국이 원격 수업의 폐해를 깨닫고 가능한 대면 수업을 위해 노력했는데도 학생들의 학력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의 경우, 14.2%가 기초학력 미달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 1.5명 꼴로 완전 수학포기자인 셈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영어는 9.8%, 국어는 7.1%가 기초학력 미달이었습니다. 교육부는 이때 상위권 학생들의 수준은 보통학력 이상이라고 뭉뚱그려 발표했는데, 상위권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궁금했습니다. 지난 5년간 성취수준별 학생 비율이 모두 나타난 자료를 받아보니, 지난해 고2 수학과 국어에서 우수학력 비율은 오히려 늘어난 걸로 나타났습니다. 수학은 2020년에 비해 8% 포인트 가까이 늘었습니다. 상위권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는 기간 스스로 또는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한 겁니다. 결국 코로나 2년차인 지난해 최상위권과 하위권 학생들이 모두 늘어나 학력 양극화가 매우 심각해진 겁니다.
 
학업성취도 평가 고2 수학 성취수준별 비율
 

학업성취도 평가…등급 나누기에서 탈피하려면?

현재 실시하고 있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중3과 고2에 한해서, 그것도 모든 학생이 대상이 아니라 표집 조사일 뿐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따라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평가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교육 과정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타난다면 그 원인을 파악해 지원하는 게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원인 진단 부분에서 우리 정부는 큰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학습을 돕기 위해 <대학생 튜터>를 지원하지만, 정작 학생의 문제가 의학적 장애 때문인지, 가정 불화 또는 교우 관계 때문인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알지 못한 채 학업 능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없는데 제대로 된 치료가 되진 않겠죠.
 

"나의 학습 유형을 알아보자"…MBTI 같은 학습종합진단검사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를 중얼거리며 학력 부진의 원인 진단과 처방 방안을 찾고 있을 때, 경기도 오산시와 오산교육재단이 실시하는 학습종합진단검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올해는 중2 2천6백 명, 초5 1천650명 등 총 4천250명을 대상으로 5천8백만 원을 투입해 진행합니다. 인지.심리.행동 특성을 분석해 MBTI처럼 학습 유형을 제시합니다. 논리분석형, 성실노력형, 자신만만형, 감성중시형, 관계협동형, 실습중시형 등 6가지 학습 유형과 더불어 각각의 장단점과 이를 감안한 공부 방법을 알려줍니다.

오산 매홀중학교 워크숍, 학력진단 결과표 내용

요즘 초등학교에선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는데다가 중학교 1학년에는 진로 탐색을 위한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면서, 사나흘에 걸친 전과목 시험은 중2 1학기 중간고사가 처음입니다. 처음 경험하는 정식 시험에 자괴감을 주는 성적표까지, 중2는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워크숍에 열심히 참가했습니다.

오산 매홀중학교 워크숍, 학습종합진단검사 표지
오산 매홀중학교 워크숍
송예표 /오산 매홀중학교 2학년
"검사 결과를 받고 흘려버리는 친구들도 많은데 워크숍을 통해서 나에게 맞는 학습법을 파악해서 활용하면 좀 더 진로 목표를 성취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승아 / 오산 매홀중학교 2학년
"제 학습 방법에 대한 단점이나 장점을 들었거든요. 장점은 더 발전시키고 단점은 고쳐서 할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셔서 그렇게 하다 보면 성적이 자연스럽게 오를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감을 갖게 될 거 같아요. 학습 태도에서 제가 집중력이 약한 부분이 있다고 나왔거든요. 저의 단점을 알았으니까 이제 그걸 고쳐서 하면 되는 거잖아요"

MBTI처럼 재미로 하는 검사가 아닐까 했는데, 지난해 같은 검사를 받고 심화 수업을 들었던 학생의 학부모는 아이를 지도하는데 뿐만 아니라 아이 스스로 공부 방향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김현아/ 오산 중3 학부모
"검사 결과지에 보면 아이에게 칭찬을 좀 많이 해주고 인정도 많이 해주라고, 주변 사람들의 인정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나와있더라구요. 집에서 아이가 스트레스 받는 부분을 저에게 계속 얘기했을 때, "엄마, 공부했는데 이 부분은 정말 모르겠어" 라고 얘기했을 때, 제가 공부를 대신해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때 아이한테 "너는 할 수 있어. 00아 너는 할 수 있어" 라고 얘기해줬을 때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 아이는 '학습플래너' 같은 걸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상담을 받고 나서 '학습플래너'를 쓰면서 시간 관리를 하는 걸 보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오산시가 발벗고 나선 이유…"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보통 학생 개개인의 학습 유형을 알아보는 검사는 학원가에서 이뤄집니다. 물론 유료입니다. 그런데, 오산시가 예산을 들여 이런 검사를 실시하는 이유는 뭘까요? '나DO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오산교육재단의 노은영 진로진학팀장은 학생들이 자기가 원하는 걸 찾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라고 사업 목적을 설명합니다.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부분은 자기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이라고 생각해요. 그 효능감이 있어야 그 다음으로 내가 무얼 해야겠다는 동기를 생각해낼 수 있고요, 동기를 생각해내야 그 다음에 목표라는 것이 생길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꼭 학습이 아니어도 자기 인생에 뭔가의 목표를 찾을 수 있다는 이 프로젝트는 성공한 프로그램입니다. "

오산에서 실시하는 학습종합진단검사와 이어지는 워크숍은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뭘 하더라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겁니다. 노은영 팀장의 설명에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이유가 단순히 상급학교 진학이 목적이 아닌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제대로 지원해 끌어올려야 하는 것도, 단순히 점수 문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학교 공부라는 게 결국은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이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도 "나도 뭔가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효능감을 가져야 미래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을 겁니다. 진단 검사 결과를 놓고 진행하는 워크숍에서도 수학.영어 만점이 목표가 아니라, 현재 자신의 점수보다 살짝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이걸 이루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작은 성취가 모이면 어느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란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나서 6-7개월일 때 삶은 달걀을 주면 완전히 으깨 버려요. 돌이 됐을 때는 삶은 달걀을 이제 손에 쥘 수 있게 되거든요. 아이들이 뭔가 손에 쥘 수 있었을 때의 성취감, 이처럼 하나하나 성장기를 거치면서 단계별로 가질 수 있는 작은 성취감들이 모여서 아이들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아이가 정말 어렸을 때 부모들이 삶은 달걀 한 번 손에 쥐는 걸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최고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하며 성취감을 느끼던 학부모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이 성취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일 수 있으니 목표를 조금씩 조금씩 낮게 잡고 아이들의 행복을 생각하면서 변화를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중학교 2학년부터 성적 때문에 자존감이 꺾일 수 있는 학생들에게 절망 대신 효능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이들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낼 수 있다면 수 천만 원의 투자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 자치단체가 자기 효능감, 유능감을 가진 지역 인재를 키우기 위해 나서는 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학습에 대한) 자신감은 2-3시간의 워크숍으로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희가 작년부터 학습 심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요 7번에 걸쳐 2-3개월 동안 진행합니다. 그러면 자기 관리라든지, 자기 효능감이 올라갑니다. 그 부분은 (사후 효과 조사) 수치로도 확인해볼 수 있고요, 아이들이 스스로 적은 소감문에서도 그런 문장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
 

학업 부진 원인도 알 수 있다!…국가적으로 확대 시행한다면?

그런데, 학생들의 학업 부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도 이 진단 검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는 게 재단 측 답변입니다. 경계성 지능 장애의 경우 검사 결과를 도출할 수 없음으로 나오기 때문에 드러나고, 정서적 또는 경제적 문제들도 질문 문항에 포함돼 있어서 파악할 수 있다는 거죠. 검사 결과로 드러난 학생의 상태는 교사와 학부모가 공유하는데, 성적 뿐 아니라 학생의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이 이뤄지면 학교와 학부모, 오산교육재단이 함께 해법을 찾아보는 구조입니다.

오산 매홀중학교 워크숍, TV화면(결과표 사진)

그렇다면 정부 차원에서 학업성취도 평가만 할 게 아니라 오산시의 학습종합진단검사 같은 원인 진단도 함께 해야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산교육재단의 노은영 팀장은 국가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변별 검사로 진행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저희가 지금 쓰는 검사는 진단 검사이기는 한데요, 가끔 변별 검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거든요. 진단 검사라는 건 성적을 1부터 10까지, 등수라면 1등부터 100등까지 쫙 매기는 게 진단 검사라면, 변별 검사는 패스/논 패스로 결정하는 검사이거든요. 그래서 학습 방법에 있어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들은 변별 검사로 해서, 아이들에게 '너는 이만큼 수치가 높고 너는 이만큼 수치가 낮아'가 아니라 '이 정도까지는 괜찮고, 여기는 뭔가 좀 도움이 필요해' 라는 식으로 변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은 초등학생이 정서적인 측면에서 불안정하고 학습 역량도 떨어지는 결과를 얻었다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초등학교 5,6학년에 대해 변별 검사를 실시하면 좋겠다고 노 팀장은 덧붙였습니다. 단순히 학업 스킬을 가르쳐주기 위해 프로그램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학업 부진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서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돕는다면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확한 진단 · 처방에 치료까지 완성되려면

마지막으로 원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교육복지사 선생님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전교생 8백 명 가운데 25%가 넘는 2백 명이 교육복지사 선생님의 관리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즉, 뭔가 지원이 필요한 상태라는 겁니다. 오산처럼 학교 차원에서 진단 검사를 실시하지는 않지만, 담당 교사들이 한 학기에 한 번씩 다중지원협의회를 열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을 각각 병원으로, 심리 상담 센터로, 후원 기관으로 부지런히 연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엔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이 때를 놓친 경우를 발견해 안타깝다고 하시면서, 아이들의 상태에 맞게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인력이나 예산이 충분히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하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취재진이 모두 이분에 대해 "슈퍼맨이다" 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예리한 관찰을 통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학생들을 발굴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후원자 또는 후원 기관을 찾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오산에서 실시하는 학습종합진단검사 이후에 이런 종합적이고 다층적인 지원이 들어가면 완벽한 시스템이겠다 싶었습니다. 참, 교육복지사의 배치는 의무가 아니라 각 시도별로 상황에 맞춰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선 교육복지거점학교에만 교육복지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명칭도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 살짝 다르네요. 저소득층과 다문화 학생 비율에 따라 교육복지거점학교가 지정되는데, 서울시 전체 초등학교 607개교 가운데 170개교, 중학교 389개교 가운데 123개교가 해당됩니다. 고등학교는 아예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교육 결손 회복, 새 정부의 중점과제

이번 주 금요일(29일) 교육부의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결손 회복 사업도 중점 과제로 다뤄질 겁니다. 대학생 튜터링, 1학급 2교사제 등 연초에 발표됐던 사업 외에 다른 내용도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든, 학생들에게 맞춤형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미래의 소중한 인재인 만큼 더 이상 대증요법이 아닌 맞춤형 해법으로 미래를 위한 학습 역량을 갖도록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TV광고에서 배우 이병헌은 "영어, 수학에도 PT가 필요해"라고 말하곤 있지만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전체 교육 과정에 맞춤형 솔루션이 제공돼야 하고, 이건 사교육 시장이 아니라 우리 학교의 임무가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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