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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간첩' 누명 50년, 숨진 다음날…"불법구금" 재심 결정

<앵커>

과거에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북한에 끌려간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다시 남쪽으로 돌아온 뒤에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서 유죄 판결을 받고, 평생을 고통 속에 보내야 했던 사람도 많습니다. 간첩으로 결론 내렸던 당시 수사가 불법으로 이뤄진 정황을 저희 끝까지 판다팀이 두 달 전에 전해드렸었는데, 최근 법원이 그 자료들을 근거로 재심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반석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정반석 기자>

지난 1972년 9월 납북된 지 약 1년 만에 돌아온 김진용 씨를 기다린 건 수사기관의 지독한 신문이었습니다.

[박종식/당시 속초 여인숙 주인 : (여관에서) 잠을 안 재우고 계속 돌아가면서 조사를 받았어요. 구타해서 소리를 지르고.]

결국 반공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평생 간첩 낙인이 찍힌 채 살았습니다.

과거 간첩 검거 기사

가혹 행위로 인한 허위 자백이었다며 2017년 재심을 신청했지만, 증거가 충분치 않다며 기각당했습니다.

김 씨는 곧바로 항고했고, 재판부는 당시 수사기관들에 사실 조회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군과 국정원 등은 응답하지 않거나, "자료가 없다", "국가 안보사항"이라며 사실 확인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SBS가 국가기록원을 통해 입수해 지난 5월 보도한 당시 수사자료에는 어부들을 근처 여관으로 끌고 가 고문했고, 불법 구금 상태에서 짜놓은 각본대로 신문했다는 정황이 담겼습니다.

[지난 5월 15일, SBS 8뉴스 :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신문 기간은 귀환일 자정부터 일주일간, 신문의 방향은 간첩 지령 사항을 캐내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항고심 재판부는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김 씨 등이 입항한 이후 약 40일간 경찰과 군부대에 불법 구금된 채 조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취소하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습니다.

김 씨가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0년, 누명을 벗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 나선 지 5년 만입니다.

(영상취재 : 하 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서승현, 자료제공 :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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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신 거처럼 50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된 김진용 씨를 만나기 위해서 저희 취재진이 김 씨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재심 결정이 나기 전날, 김 씨가 세상을 떠난 겁니다.

남은 가족들이 전한 이야기를 원종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원종진 기자>

김진용 씨가 오래전 낙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남 함안으로 찾아갔습니다.

[김두홍/납북어부 고 김진용 아들 : (집배원이 재심 개시 결정문을 들고 온 게) 아버지 돌아가시고 일주일 뒤일 겁니다. '김진용 씨가 등기 받아야 됩니다.']

납북됐던 고 김진용 씨 가족

재심 결정 하루 전 김 씨가 세상을 떠난 겁니다.

김 씨가 말기 담도암 판정을 받은 건 지난해 10월.

[김두홍/납북어부 고 김진용 아들 : 이거 다 쓰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배액 담즙 주머니라 해 가지고. 계속 모시려고. 죽기 전에 무죄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도 못 보고, 좀만 버티시지…]

국가가 버린 김 씨가 절대 간첩일 리 없다며, 마지막까지 보듬어 안은 건 이름 없는 이웃들입니다.

[안현주/이웃 주민 : 남한테 베풀고, 오는 사람마다 좋다고 그러고. (암에 걸렸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 '아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사람을 살려야 되겠다,' 싶어서 제가 모금을 했습니다. 저도 100만 원 내고.]

[김두홍/납북어부 고 김진용 아들 : 눈을 계속 감겨 드렸는데 계속 뜨시더라고요. 감겨드려도 뜨고. 임종하시기 직전까지도. 그러다가 눈 뜬 채로 돌아가셨죠.]

김 씨는 낙향한 뒤 이웃의 소개로 부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김필규/이웃 주민 : 알음알음해서 아는 분을 통해서 결혼을 시켰지.]

평생 남편을 따라다닌 낙인과 감시, 또 가난은 시골 아낙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김필규/이웃 주민 : 농사 지을 때도 내가 여기서 지켜봤지만 엄청난 고통을 받았어요.]

김 씨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직후, 아내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두홍/납북어부 고 김진용 아들 : 엄마는 사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습니다. 뭐 하려고 하면은 방해를 하니까. 경찰들이 와서 '누구랑 이야기했습니까.' 거기서 우울증 오시면서….]

국가의 폭력이 낳은 고통은 대를 이어 전이됐습니다.

[김두홍/납북어부 고 김진용 아들 : 저도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중학교 때 집을 나왔습니다. 사고도 많이 치고.]

하지만 민주 정부의 기관들조차 명예 회복을 위한 힘없는 이들의 싸움에 무심합니다.

[류제성/고 김진용 재심 대리 변호사 : 민주화가 되고 난 이후에도 조명을 못 받은 거죠. 이 분들이 민주화운동을 하거나 투사가 아니니까, 배운 분들이 아니니까 자기 억울함을 호소를 못 했고..]

김 씨가 사망해 이제 아들이 재심 신청을 다시 해야 합니다.

[김두홍/납북어부 고 김진용 아들 : 돌아가시고 하루 지나니까 (재심 결과가) 나오는 거 보니까 '아…안 되는가 보다'. '안 되는 놈은 안 되는가 보다…']

(영상취재 : 하   륭, 영상편집 : 황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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