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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북적북적]

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48 : 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
 
대학교 4학년의 여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만났다.  
-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中 

사고를 ‘만났던’ 이 사람.  사고를 ‘당한’게 아니라 ‘만났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지선’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이 반가운 사람이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실 수도 있을 테고, ‘귀에 익은 이름인데 누구였더라’ 가물가물할 수도 있을 테다. 이지선 님은 대학교 4학년이던 2000년 7월, 음주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몸의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그의 사고 이후 소식과 인터뷰를 인터뷰를 언론에서 보아온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사고를 당한 사람인가. 아니면 사고를 만났지만 헤어진 사람인가. 사고와 헤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은 더뎠으며 몸이 아픈 만큼이나 마음도 많이 아팠지만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내듯 헤어졌다. 나는 음주 운전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살지 않았고, 그 때 그 자리에 마음을 두고 머무르지 않고 매일 오늘을 살았다. …(중략)… 나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다. 
-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中 


사고를 곱씹으며 그 날에 묶이지 않고, ‘피해자’로 머물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사고와 헤어져 매일 차곡차곡 ‘오늘’을 살아내면서, 이지선 님은 40번이 넘는 수술을 이겨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보스턴대와 컬럼비아대에서 각각 재활상담학과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한동대학교 상담심리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책의 ‘저자소개’에 실려있다. 

<북적북적 348회>의 책은 이지선 님의 신간 『꽤 괜찮은 해피엔딩』. 첫 책 『지선아 사랑해』가 2003년에 『오늘도 행복합니다』가 2005년에 나왔으니, 오랜만에 만나는 귀한 책이다. 이 책에는 그가 어떤 마음의 행로를 거쳐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 되었는지, 큰 외상 뒤에 어떻게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를 긴 시간 뒤 돌아보며 재해석해 새로운 시선으로 쓴 책이다. 또 좌충우돌 유학생활은 어땠는지, 새내기 교수로서의 요즘은 어떤지, 때로는 뭉클해서 눈물이 핑 돌고, 때로는 허당미 넘치는 벗 같아 웃게 되고, 때로는 정신이 번쩍 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이 다 읽게 되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그가 자신의 글로 우리에게 손을 뻗어 일으켜주고 있다는 마음에 저절로 고마움의 기도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종교가 있든 없든, 누군가가 매우 고맙고 그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보내는 건 종교와 상관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 <북적북적>에서는 책의 맨 앞에 실린 글인 <사고와 헤어진 사람>을 낭독한다. 이 글에는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가 없어 보인다. 감히 무슨 말을 보탤 수 없다. 크든 작든 사고(시련)를 만난 우리에게, 거기 머물지 있지 않을 수 있고,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을 기회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에게서 듣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한 명의 독자로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책의 첫 글을 읽고 나면 이 책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도.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는 제목은 사실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향해 가고 있다’는 말이라고, 뒤에 ‘향해 가고 있습니다’가 생략된 것이라고 썼다.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고 자신은 ‘살아남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분들도 보이지 않던 삶의 의미를 조금씩 발견하시길’ 바라고,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기대하실 수 있기를 소원한다’고.  

저자의 이런 마음은 글마다 녹아 있는데, 오늘 <북적북적>에서는 그 중에서 <7시간 22분 26초의 싸움>이라는 글을 일부 들으실 수 있다. 푸르메 재단의 국내 최초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 목표를 알리기 위해 참가해 완주했던 마라톤 이야기로, 어쩌면 무모하다고 할 만큼 용기 있고, 포기할 만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이 받은 응원의 마음을 잊지 않고 몸 속에 씨앗처럼 차곡차곡 모아서 싹을 띄워 곳곳에 다시 나눠주는 저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응원의 힘이란 놀라웠다. 없던 힘도 생기는 아주 엄청나고도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남은 7킬로미터를 열심히 걸어가며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나도 저분처럼 살아야지! 인생의 마라톤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면서 살아야지.’  
-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中 

 
7시간 22분 26초, 이 숫자는 이지선 님의 첫 마라톤 기록이다. ‘첫 기록’이라면, 두 번째 기록도 있을까? 그렇다. 그는 이후 서울에서 또다른 마라톤을 완주하는데, 이 때 했던 생각이 책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가 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그 날 마라톤은 우리사회에서 사회복지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상징했다. 약한 사람 한 명을 위해 그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 이웃, 민간단체와 전문가, 그리고 언론과 정부가 함께한다면 인생이라는 마라톤도 훨씬 더 수월하게 완주할 수 있음을 배웠다. 사회복지는 한 개인의 어려움이나 불행을 그 사람과 가족만의 일로 보지 않고 모두에게 주어진 인간답게 생활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사회가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中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면 저자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지선 님은 독자가 ‘아 재미있다 하고 덮으실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는데, 과연 ‘재미’있다. 그리고 이지선 님의 『지선아 사랑해』에 실렸던 ‘저는 글이 주는 힘을 믿습니다. 진실을 담은 글만이 전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무언가가 있음을 믿습니다’ 라는 말처럼, 이번 책에도 그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 이번 여름 진정 ‘강력한’ 책을 찾고 계셨다면, 바로 여기 있다.  
 

살면서 뜻하지 않는 일을 만났어도, 그것이 우리를 망가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이지선 『꽤 괜찮은 해피엔딩』中 


*낭독을 허락해주신 이지선 작가님과 출판사 ‘문학동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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