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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학생 튜터링…헌신과 현실 사이

새로운 교육 결손 회복 사업…대학생 선생님들의 헌신이 꽃 피우려면

오랜만에 학교 현장에서 사랑스러운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학력 저하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가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대학생 튜터링> 현장을 보고 싶어 찾아간 강원도 원주의 명륜 초등학교에섭니다.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는 고학년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처음엔 취재진이 낯설고 부끄러운 듯 하더니 곧바로 인터뷰에 응하고 싶다며 손을 번쩍 들고, 엑스트라가 되기는 싫다면서 적극적인 촬영을 요청했습니다.
 

대학생 튜터, 과외 교사인가 놀이 친구인가

<대학생 튜터링>에 참여한 학생(튜티)들은 일주일에 1시간씩 대학생 선생님과 1:1 또는 2:1 수업을 합니다. 대면, 비대면 수업 모두 가능하지만 초등학교에서는 라포(rapport) 형성과 사회성 함양 등을 위해 대면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30분은 수학이나 영어 등 부족한 공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레크리에이션 게임을 합니다. 공부 시간에는 각자 문제집을 정해서 선생님과 찬찬히 풀어보는데, 일대일 수업인 만큼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진행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습니다. 제가 인터뷰했던 학생들은 평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힘들었는데, 석 달 넘게 대학생 튜터링에 참가한 뒤로는 조금씩 나아진다고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학생들은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더 열정적으로 임했는데, 수학 문제 풀기는 즐겁지 않지만 대학생 선생님들과 노는 게 너무 신나서 온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특히 나중에 커서 대학생 선생님들처럼 멋지게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고백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엄해민 교육복지사 선생님은 <대학생 튜터링>이 이처럼 학습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원격 수업을 받아온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서적인 지원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학습 결손이 많이 심각해졌잖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우울감이나 무기력감, 또래 관계에 어려움을 많이 느껴서 이런 걸 보완하기 위해 <대학생 멘토링>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대학생 튜터링>이 튜터와 튜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멘토링 활동을 해봤거든요. (대학생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면, 그런 걸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하는 걸 느껴봤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학습적인 성취는 그렇게 티가 나지는 않아요. 그런데, 대학생 선생님들이 말하기를 (아이들이) 문제집을 푸는 속도가 처음엔 엄청 느리다가 점점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활동하면서 많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해요."

대학생 튜터로 참가하고 있는 박종혁 씨(연세대학교 임상병리학과 2학년)도 같은 경험을 얘기했습니다.

"돈을 번다는 것보다는 활동 과정에서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도 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어렸을 때 선생님들이 흥미 있게 가르쳐 주시면 제가 그 과목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이 공부를 하게 되더라구요. 그런 경험을 살려서 조금 더 재미있게 가르쳐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학업적인 향상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튜터링, 지방에서만 인기…수도권 참여율 27%뿐

올해 초 교육부는 2022학년도 1년 동안 1,050억 투입해 초·중·고교생 총 24만 명에게 <대학생 튜터링>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코로나 1년 차인 2020년에 이어 2년 차인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학력 저하가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올 1학기 <대학생 튜터링> 참여율을 알아보니, 초·중·고교생 튜티는 2만 530명, 대학생 튜터는 9천464명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 참여율이 확연히 갈렸는데요, 초·중·고교생 튜티 기준 수도권 27%, 비수도권 73%였습니다. 수도권에선 사교육 접근성이 높은데다 성적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대학생 튜터링>에 대한 선호도는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문제는 수요가 많은 비수도권에서 대학생 선생님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제가 방문한 원주 지역에는 이 사업을 위해 일선 학교와 긴밀히 협력하는 대학들이 있었지만, 원주 시내를 벗어나면 교통편과 이동시간 때문에 대학생 지원자가 아예 없고, 시내 지역이라고 해도 대학 수업 시간 등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가 꼽혔습니다. 지난해 강원도 횡성에 있는 고등학생들과 비대면 멘토링을 진행한 바 있다는 김시현 씨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4학년)도 만약 대면 수업이었다면 교통편 자체가 없는 지역이라 시간이나 교통비 때문에 참가를 고려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비대면 수업은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정서적 교류엔 한계가 있어 반쪽짜리 <대학생 튜터링>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교육부가 많은 예산을 투입해 사업을 시작했는데도 현실의 벽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네요.
 

알파벳 모른 채 중학교 진학…<대학생 튜터링>으로 충분할까?

현장에서 느꼈던 또 하나의 한계는 주당 1시간 튜터링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한참 떨어진 학력을 끌어올리려면 좀 더 집중적인 수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했던 거죠. 현장에서 '알파벳을 모르는 채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튜터링 참여 학생들 가운데 실제로 알파벳을 거꾸로 쓰는 친구를 봤기 때문에 더 걱정이 컸을 겁니다. <대학생 튜터링>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경우엔 교사들도 교실에서 뒤처진 친구들을 봐주고 있다고 현장 선생님들은 강조하셨습니다. 누구누구만 남으라고 하면 성적 부진 학생이 드러날까 봐, 원하는 아이들은 모두 남아서 공부하자고 제안하신 선생님도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선생님이 그렇게 챙겨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대학생 튜터링>이 도입된 것인데, 이마저도 충분하다고 보기는 힘든 게 문제인 거죠. 한 대학생 튜터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년별로 다르게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튜터 개인의 노력으로 체계적인 틀을 갖추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경계성 지능 장애나 ADHD처럼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경우엔 역부족일 겁니다.

이날 학교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든든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려면 우리 공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저의 고민과 관련 취재는 진행 중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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