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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의원님, 산하기관 생수 납품이 떳떳한가요?

[끝까지판다] 견제받지 않는 지방의회③

[취재파일] 구의원님, 산하기관 생수 납품이 떳떳한가요?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 산하기관에 2,500만 원어치 생수를 납품한 영등포구의원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제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의계약한 이유를 물었다가 "인체의 75%가 수분이라 물은 마셔야 하니까" 그랬다는 황당한 해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큰 금액이 아니라 떳떳하다"며 오히려 질문이 "불쾌하다"고 했습니다. 지방의원들의 수의계약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행동강령을 위반하고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인 이름으로 대놓고 수의계약…두 차례 생수 납품

SBS 취재 결과, 영등포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이 모 의원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이 발주한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습니다. 계약 내용은 모두 공영주차장 생수 납품이었습니다. 금액은 지난해 1월 21일 1,101만 원과 지난해 12월 31일 1,396만 원으로 총 2,497만 원입니다. 의원 당선 전에는 수의계약을 맺은 적이 없었습니다.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은 구민의 편익과 복리 증진을 위해 영등포구가 전액 출자한 지방 공기업입니다.

수의계약 내역에는 업체 대표자명으로 이 의원 본인 이름이, 업체 주소란에 이 의원 집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방의원들이 부적절한 수의계약을 맺을 때 가족이나 지인을 대표로 앉히거나 잠시 지분을 넘기는 식의 꼼수를 쓰는 것과 달리 지나치게 당당해 보입니다.

업체 사무실은 따로 없었습니다. 이 의원이 생수를 받아온다는 경기 고양시 소재 생수 창고에 직접 가봤더니, 사장은 자신이 본사에서 받아온 생수를 이 의원을 비롯한 개인 사업자들이 차로 가져가 판매한다고 했습니다.

생수 납품 취재

이유 묻자, "물은 마셔야 하니까" "떳떳하다" 황당 해명

이 의원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황당 그 자체였습니다.
 
[이 모 씨 / 국민의힘 영등포구의원]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나요?) "아니 생수니까. 물은 안 마실 수 없으니까. 물은 마셔야 될 것 아닙니까?"
(징계를 받은 게 있나요?) "너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상당히 불쾌합니다. 제가 알고 그렇게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인체의 75%가 수분으로 돼 있는데 물 자체를 먹어야 되니까."

큰 금액이 아니라 떳떳하다고 했습니다.
 
[이 모 씨 / 국민의힘 영등포구의회 의원]
그런 식으로 다 따지면 대한민국 의원들 전부 그냥 다 '열중쉬어'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큰 금액이 들어가고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저도 그래서 떳떳하기 때문에…
 

"명백한 행동강령 위반"…반복된 영등포구 수의계약 논란

현직 지방의원이 해당 지자체 산하기관과 수의계약을 맺은 건 명백한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 위반입니다. <영등포구의회 의원 행동강령 조례>는 소속 의원이 산하기관과 수의계약한 사실이 확인되면 의장이 징계 요구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했습니다. 경고, 공개 사과, 출석 정지, 제명 등의 징계가 가능하지만, 동료 의원들의 의결을 거쳐야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징계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영등포구의회에서 수의계약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3년 전 다른 영등포구의원이 수의계약 문제와 관련해 '공개 사과'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된 제도 개선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산하기관에 수의계약 배제 대상자 명단을 전달하고 투명한 계약 절차를 거치도록 관리할 책임은 영등포구에 있습니다. 영등포구의회 측은 지방의원 및 가족 명단을 영등포구청에 넘겼다고 했습니다.

반면,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 측은 "수의계약을 따낸 업체 대표가 지방의원인지 알 수 없었다"며 "계약 전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청렴서약서를 작성한 쪽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소액이고 관내 업체라 수의계약을 진행한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

계약 한 달 전 "수의계약 확대" 요구…이해충돌 소지

이 의원은 수의계약 체결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12월 열린 영등포구의회 본회의 회의록을 보면 이해충돌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당시 이 의원은 영등포구에 "수의계약 기준액을 3,000만 원으로 높이고 관내 수의계약 업체 수주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모 씨 / 국민의힘 영등포구의원 (2020년 12월 영등포구의회 본회의)]
"본 의원은 수의계약 기준액을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할 것을 제언합니다."
"관내 수의계약 업체의 수주율이 낮아진 데 따른 보완책을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1인 견적 수의계약 개선의 목적이 관내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상생하는 정의로운 시장경제 조성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구 집행부에서는 이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등포구 기획재정국장 (2020년 12월 영등포구의회 본회의)]
"의원님 말씀에 공감하여 이에 2021년도에는 관내 기업 수의계약 제한 건수는 5건에서 7건으로 상향함으로써 특정 업체에 편중 계약을 방지하고 관내 업체 계약 비율이 높아질 수 있도록 시행할 계획입니다."

위 발언 바로 한 달 후, 이 의원의 생수 납품 계약이 맺어졌습니다. 이처럼 수의계약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제도 변경까지 요구했던 이 의원이 산하기관과 수의계약을 맺으면 안 된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몰랐을지 의문이 듭니다.

영등포구의회

부실한 법도 한몫…"수의계약 사각지대 없애야"

그동안 지방의원들의 수의계약 문제가 반복된 데에는 부실한 법이 한몫했습니다. 지자체와의 수의계약 체결은 지방계약법으로 금지하면서, 산하기관과의 수의계약은 법으로 금지하지 않았던 겁니다. 다만, 지난 5월 시행된 이해충돌방지법이 지방의원과 산하기관의 수의계약을 금지하면서 지방의원이 지시, 유도 또는 묵인한 경우 과태료를 물릴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모든 사각지대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광역단체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기초단체나 그 산하기관으로부터 수의계약을 따낼 경우에는 여전히 제한할 규정이 없습니다. 가령, 강남구를 지역구로 하는 서울시의원이 강남구와 수의계약을 하더라도 제재를 받지 않는 겁니다. 부당한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가 완전히 차단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SBS <끝까지판다>팀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수의계약 내역을 받아 확인해보니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수의계약이 다수 확인됐습니다.
 
[A /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2019.2~2022.4 본인 명의, 지역구 구청과 5건, 총 3,766만 원 납품 수의계약
2020.3~2022.5 본인 명의, 지역구 구청 산하기관과 14건, 총 1억 75만 원 납품 수의계약

[B / 국민의힘 경상북도의원]
2018.12~2019.10 부인 명의, 지역구 군청과 3건, 총 4,369만 원 공사 수의계약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지방의회 실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입니다.
 
[한삼석 /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행동강령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지난 5월부터 이해충돌방지법으로 상향됐습니다. 앞으로 지방의원이 부당한 수의계약을 맺으면 징계뿐만 아니라 과태료까지 부과받게 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향후 이해충돌방지법을 포함한 반부패규범이 지방의회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입니다."

이 의원 사례 보도 직후 영등포구의회 측은 의장단 회의를 열고 의원 징계에 관한 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제대로 된 징계와 제도 개선 조치가 나올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SBS 탐사보도부 <끝까지판다>팀은 지역 주민이 낸 세금이 지방의원의 사익 추구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겠습니다.

panda@sbs.co.kr

※ SBS <끝까지판다> 팀은 지방의회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제보를 받습니다. pan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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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정반석, PD : 김도균, VJ : 김준호,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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