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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권할 순 없어도 내 마음의 컬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북적북적]

차마 권할 순 없어도 내 마음의 컬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47 : 차마 권할 순 없어도 내 마음의 컬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이 다음이 기대돼요. 내 정신이 공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말입니다. 헤헤, 그러니까 나는 걱정 같은 건 안 합니다. 안 하겠습니다.”
 
남에게 차마 권하거나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참 좋아하는 무언가,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죠?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제게는 그런 작품입니다. 왜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도 딱히 풀이해줄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 깊이 남은 책.

이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게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995년 초판이 나왔던 이 작품이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름의 매니아층을 형성했고, 헌책방에선 한 권에 10만 원에 팔리기까지 할 정도로 일종의 ‘컬트’ 반열에 올랐다는 겁니다. 결국 절판됐던 작품의 개정판이 거듭 나왔고, 출판사 역시 ‘헌책방 순례 열풍을 몰고온 바로 그 도서’라고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나만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찾는 사람이 은근히 그리 많다는 1995년의 초판… 나 갖고 있는데.’ 나만 좋아하는 이상한 책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을 용기(?)를 내봤습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입니다.
 
“언제나 장미 같은 새빨간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의 공 색깔이 크랜베리 주스 같아 보이면 그건 그놈이 애인하고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공이 보이는 것은 꾸준히 3할 4푼을 치는 타자만으로, 양 리그(역자주: 일본의 프로 야구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로 나뉘어져 있다)를 합쳐서도 10명이 안 된다. 그러니까 올스타 벤치 안에서는 “어땠어?” “그 슬라이더는 팥 색깔이었어. 회전이 좀 모자라니까 톱스핀을 먹이지 않으면 스탠드까지 보내는 건 무리야.” “땡큐, 알았어”라든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데, 톱스핀을 먹이면 시속 138킬로미터로 나선상으로 날아오는 공 중심에서 8밀리미터 정도 위를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대개의 타자는 날아오는 공을 어림잡아 치기만 하는데 그런 건 배팅이 아니다. 하기야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그런 말 할 자격도 없지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20세기 말 일본에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기수로 꼽혔던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썼습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요.

일단 제목은 모리스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에서 따왔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온라인에서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빌려보자면, ‘야구가 사라진 미래 어느 시대 야구광들의 이야기’입니다. (좀더 정확히) 책 뒤표지의 홍보 문구에서는 ‘1985년 한신 타이거즈의 우승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이후 진정한 야구를 찾아 떠난 선수들의 미래 이야기’라고 축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은 여전히 아리송한 느낌만 남길 뿐이고, 그 이상 이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의식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신 이 책을 번역한 박혜성 교수의 해설을 인용하겠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서는 과연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무척이나 당황해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소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언뜻 보았을 때 ‘본 줄거리’ 없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은 단편들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이야기들이 점차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어느 사이엔가 본 줄거리로 바뀌어 간다. 그것이 여러 번 되풀이되면서, 과연 나는 무엇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하고 적잖이 당혹하게 된다.” (역자 후기 ‘언어 표현의 해체와 재구축’ 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대해 접근할 때의 일반적인 시각대로 이 소설을 ‘진정한 야구’, 즉 ‘진정한 문학’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야구를 빌어 해체적인 글쓰기로 소설문학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라고요. 그도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꼭 문학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삶이나, 다른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야구 얘기를 엄청나게 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읽었는지 남에게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책입니다. 이 문장과 문장들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남에게 차마 전할 수 없을 뿐이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 이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입소문을 타며 컬트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거겠죠. [북적북적]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오늘 낭독으로 한 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내 팀의 주전 투수도 역시 이 연결이 끊겼나 봐요. 그 때문에 심한 슬럼프에 빠져 버렸죠. 확실히 성적은 좋아요. 그렇지만 그런 것은 야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죠. 그건 슬럼프예요. 76타수 3안타라도 나는 슬럼프가 아니에요. 나는 야구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쳐야 할 공이 안 오는 것뿐이에요. 선생님 저놈들에게 말해 주세요. 마운드 저쪽에서 공을 던져 오는 너절한 투수들에게, 내가 칠 수 있는 공을 던지라고 말해 주세요. 그냥 던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이 던지는 공이 맞아야 할 공인지 아닌지 잘 생각하고 던지라고 말해 주세요. 그러면 그놈들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슬럼프는 커녕 나는 지금 야구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상태입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7개의 장(또는,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입니다. 오늘 낭독에서는 그 중 두번째 장인 ‘라이프니츠를 흉내내어’를 읽었습니다. 미적분을 발견한 걸로 유명한 독일의 천재 합리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 빗대어, 언젠가부터 게임에 들어가도 날아오는 공을 바라만 보다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된 에이스 4번 타자의 독백이 펼쳐지는 장입니다. 그는 어째서 시합에 들어가 놓고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구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상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경쾌한 리듬감마저 느껴지는 대화체로 현란하게 펼쳐지는 그 독백에 일단 귀를 한 번 기울이기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빠져드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궤변이야’ 불쾌하기까지 한 시작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경박한 듯 절박하게 이어지는 토로의 끝에 문득 그에게 설득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남에게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그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을 맛보기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스무 살 때 저는 그랬습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 대해 “분명히 좋아하시게 될 책!”이라고는 차마 소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낭독에서 문득 마음에 감응하는 어떤 부분들을 발견하신다면, 무엇이 그 공명을 불러일으켰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북적북적]과 함께 우아하고 감상적인 여유가 있는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웅진지식하우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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