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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회사로, 배우자 명의로 쑥∼ "수의계약 나도 몰랐다"는 의원님들

[끝까지판다] 견제 받지 않는 지방의회①

[취재파일] 내 회사로, 배우자 명의로 쑥∼ "수의계약 나도 몰랐다"는 의원님들
49억 9천만 원.
지난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지방의원과 그 배우자 등이 지방자치단체와 맺은 '수의 계약'의 액수입니다. 수의 계약, 즉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고 지자체 사업을 바로 따냈다는 것인데, 심지어 지방의원이 관여 돼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려 81건, 전국26곳에 걸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 수의 계약 문제는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행동강령 운영실태 점검' 중 하나의 사례로 실렸습니다. 하지만 출장비를 부적절하게 타내어 썼다는 논란에 묻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보도자료에 실린 수의 계약 언급은, 겨우 세 줄에 불과했습니다. 
 
권익위 보도자료
 
50억 원에 육박하는 나랏돈을, 언론의 견제에서 중앙 정부보다는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지방의회 의원들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들여다 봐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특히 2020년 기준 일부 지자체의 경우 1천만 원 이상 계약 실적 중 수의계약이 70%를 넘는 등 그 비중이 굉장히 높았는데요. 지자체를 운영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지방 의원이 수의계약을 통해 이윤을 취한다면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 되겠지요.

현행법은 지방 정부와의 계약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자체장, 그리고 지방의원의 경우 수의 계약 자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17년 전, 지방자치단체가 체결하는 계약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은 그 지방자치단체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 자체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족은 어떨까요? 지방 의원의 배우자 혹은 직계 존·비속이 대표를 맡고 있는 회사도 지방정부와 수의계약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습니다. 해당 회사의 지분 절반 이상을 지방 의원의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이 소유하고 있을 때도, 수의계약이 금지됩니다.
 
지방계약법 제33조 (입찰 및 계약체결의 제한)
①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지방의회 의원은 그 지방자치단치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사업자(법인의 경우 대표자를 말한다)인 경우에는 그 지방자치단체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1.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2.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의회의원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그렇다면, 이 법은 과연 현실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요?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지자체 홈페이지에 공개된 수의계약 내역, 지방 의원 재산 공개 자료, 회사 법인 등기, 정보 공개 청구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법을 어기고 있는지, 그 사례를 조사해 봤습니다.
 

▶ 시는 물론 산하 기관까지…시의원 배우자 운영 의류업체와 수의 계약한 사례

강원도 삼척시, 지역의 한 아웃도어 업체와 무려 14차례나 수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7천 2백만 원에 가까운 금액입니다. 삼척시는 아니지만, 삼척시 산하의 공공기관과 맺은 수의 계약도 3건(900여만원) 더 있었는데요,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은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공공기관이라도 수의 계약을 삼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척시 뿐 아니라 산하 공공기관까지 연달아 계약을 맺는 이 의류업체, 바로 삼척시 A시의원의 배우자가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조사 기간: 2018년 7월~2021년 12월><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data-captionyn="Y" id="i201682616"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20715/201682616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v_height="1434" v_width="1280">명백한 지방계약법 위반. 그러나 A의원은 SBS와 통화에서 이러한 계약 행위 자체가 법 위반인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의원이 되기 전부터 배우자의 업체가 시와 오랫동안 계약을 해왔고, 때로는 시가 먼저 요청해서 계약을 한 사례도 있다는 것이 그의 해명이었습니다. 
 
A의원
"그냥 원가에 공급하다시피 하면서 거의 이윤도 안 보고 해줬는데 그게 나중에 문제가 됐더라고요."
"삼척에 아웃도어 업체가 몇 개 없어요. 한 곳만 할 수 없으니 돌아가면서 한 것 같은데.." 
 

▶ 지방 의원이 사실상 소유한 회사가 시와 수의계약한 사례

경북 구미시에서 다선 시의원이었던 B전 의원의 경우, 현직 시의원일 때 자신이 사실상 소유한 회사가 5차례, 7천 5백만 원 상당의 수의 계약을 따냈습니다. 심지어 B 전 의원은 해당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산 공개 때 밝히지 않았는데요. 결국 지역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며 들고 일어나, 감사원에서 감사까지 진행됐던 사안입니다. 지방 의회도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고 징계에 나섰는데, '공개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습니다. 2018년 8월, B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이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먼저 저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시민들과 동료 의원 여러분께 깊은 심려 끼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일을 성찰의 계기로 삼아 앞으로 시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공개 사과 내용 中 - 
 
<조사 기간: 2018년 7월~2021년 12월><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data-captionyn="Y" id="i201682617"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20715/201682617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v_height="858" v_width="1280">해당 의원은 이때 공개 사과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 지분을 팔겠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지분을 절반 이하로 줄여 법적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B전 의원의 소유한 회사는 공개 사과 뒤에도 계속 지자체와 수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8월 이후 맺은 계약 액수만 무려 7천 2백만 원이었습니다. SBS 취재 결과, 여전히 현직 의원이었던 2021년 3월엔 무려 1건에 4천 6백만 원에 달하는 거액의 수의 계약을 체결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혹시 그 사이 공언한 대로 회사 지분을 절반 이하로 줄인 것일까? 하지만 B 전 의원과 통화 결과, 그는 여전히 회사 지분을 50% 넘게 갖고 있었습니다. 
 
B 전 의원 
"지분 팔려고 내놨거든요. 농협에 신탁해서 팔려고 했는데 아직 안 팔리고 있어요"
"대표직을 넘겨주고 나서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고, 지금도 안 하고 있어요" 
 
공식 사과 이후 발생한 추가 수의 계약 건에 대해 물었지만, B 전 의원은 계약 관계는 전혀 모른다는 입장을 거듭 고수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정치를 그만뒀지만, 정치를 하면서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한 청탁 같은 건 아예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밖에도 인천의 한 전직 구의원은 버젓이 자신이 대표로 있는 업체가 자신의 지역구와 2천3백만 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하기도 했고, 전북의 한 도의원은 자신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6천1백만 원 수의계약을 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명백한 위법 사실도 있지만, 아직 규명이 안돼 의혹 단계인 사례도 많습니다. 충북 지역의 한 군의원은 2018년 지방의원 당선 직후 건설회사 대표직에서 물러났는데, 그 이후로 해당 지자체와 수의 계약 건수가 지난해 말까지 42건에 금액으로는 16억 원 정도였습니다. 이전에는 수의 계약 건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의심할만한 사례지만, 지방계약법 위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몰랐다, 관여 안 했다"지만…

취재 과정에서 연락이 닿은 해당 전·현직 지방 의원들은 공통적으로 해당 규정 자체를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하나 같이 계약에는 압력을 행사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일부는 지방 의원 월급과 의정 활동비로는 생계 자체를 꾸리기 힘들다며 지방계약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경제 활동을 아예 하지 말라는 소리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계약을 담당한 공무원들은 자신들을 감시하고 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들의 존재를,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몰랐을까요? 알아서 편의를 봐준 것은 아닐까요? 여전히 저희가 취재한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릅니다. 지방 의원들의 해명을 들으며 지방계약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이어지는 취재파일에서는 징계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지자체와 수의계약을 한 사례와 함께 부적절한 수의계약이 되풀이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디자인 : 채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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