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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 정권 감사 주도하는 '감사원 실세 사무총장'

[취재파일] 문 정권 감사 주도하는 '감사원 실세 사무총장'
"6개월 동안 문자, 통화, 이메일로 집요하게 물어봤습니다. 원하는 정보가 안 나오면 직접 찾아와서 알려줄 때까지 물어봤습니다"

월성원전 감사 당시 유병호 국장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2020년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던 한 현직 대학교수는 당시 유병호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장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이 교수는 유병호 국장에 대해 '주요 단서를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맨땅에 헤딩했다. 성의는 대단했다'라는 식으로 평가했습니다. 긍정에 가까운 뉘앙스였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점 조사를 받았던 다른 교수는 당시 유병호 국장의 감사 스타일을 가리켜 '쌍끌이 저인망식 감사'라고 표현했습니다. 부정적 뉘앙스에 가까웠습니다. 대부분의 피감사자들은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나올 때까지 털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유병호 국장은 이렇게 1년 여간 월성원전 감사를 이끈 뒤 산업부 간부들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고, 죄명까지 적시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산 권력에 칼을 들이댄 셈이라 2020년 7월 당시 국회에 출석한 최재형 감사원장과 함께 민주당으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민주당은 '탈원전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를 방해하는 것이냐'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1월 중순 비(非) 감사 부서인 감사연구원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좌천성 인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비(非)감사직에서 5개월 만에 '감사원 실세'로 부활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직 시절부터 유병호 국장의 '소신'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병호 국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합류했고, 지난달 감사원 실세 자리인 '사무총장'에 임용됐습니다. 유병호 국장이 영전한 감사원 사무총장직은 감사원 내부에서 '2인자', '실세' 자리로 평가 받습니다. 감사원 사무총장직은 1,080명 직원의 인사와 예산, 그리고 감찰까지 주무릅니다. 차관급 호봉을 받습니다. 일반직이 아닌 정무직 공무원으로 분류됩니다. 바로 밑에는 사무총장을 보좌하는 2명의 사무차장도 있습니다. 처우뿐 아니라 권한도 막강합니다. 사무총장은 정기 감사를 비롯해 특정 감사나 기획 감사를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유병호 사무총장을 지난달 14일 임명 제청하며 "오랜 현장 감사 경험을 가진 정통 감사관", "강직한 면모의 원리‧원칙주의자" 등 사무총장 적임자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동료 간부들 역시 공통적으로 '소신 있게 일을 하기 때문에 일 가지고 장난 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인자' 유병호 국장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간부들도 여럿 있습니다.  한 간부는 최근 유병호 사무총장이 정부 기관을 상대로 대대적으로 벌이는 감사에 대해 "요즘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정권 출범 전이나 직후만 해도 감사원이 중립을 지키려 애썼는데…"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감사원, '월북 판단' 해경 지휘부 조사 착수

감사원에 대한 따가운 시선

감사원은 최근 해양경찰청과 국방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금융감독원, 병무청 등 말 그대로 전방위 감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감사받는 기관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대부분 계획돼 있는 정기 감사의 일환이지만 감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감사원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윤곽이 드러납니다. 서해 피격사건, 20대 대선 바구니 투표 논란, 금융위원장 출신 인사 자녀 병역 관련 의혹 등. 대부분 문재인 정부 인사와 관련된 의혹이거나 문재인 정부 당시 벌어졌던 사회적·국민적 의혹과 관련된 감사입니다. 감사에 착수한 것은 아니지만 감사원이 한국개발연구원 KDI에 인사와 예산 관련 자료를 요구하며 기초 자료 수집만 해도 KDI 입장에서는 압박감을 느끼고 홍장표 KDI 원장이 사의를 표명했을 정도입니다. 민감한 사건마다 감사원이 손을 대고 있고,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이 직접 조사하다시피 사건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국민적 의혹이 불거진 사건을 감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직무유기 아니냐"라는 한 감사원 간부의 반응은 질주하는 감사원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이 간부 말대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응당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징계를 요구하거나 수사를 의뢰해야 합니다.

다만, 질주하는 차량에도 브레이크는 있어야 합니다. 감사원의 감사에 대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표적 감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의도와 다르게 이러한 지적과 프레임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감사원은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한 것"이라며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하지만 감사 착수 시점과 착수 당시 특수한 여러 정치적 상황은 감사원의 감사를 해석하게 만듭니다. 가령, 대통령실 이원모 인사비서관 배우자 관련 의혹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오비이락 격으로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는 불필요한 잡음이나 오해가 생기면 '감사의 중립성'이 자칫 의심 받을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국가정보원도 나서고 있는 타이밍입니다. '법과 원칙'대로 하더라도 '법과 원칙'이 만사가 아닌 시대입니다. 특정 이슈에 대해서는 진영 논리가 법과 원칙에 우선하고 있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사회 곳곳에서 편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감사원 동료들이 유병호 사무총장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치권으로 직행했던 것 또한 유병호 총장에게는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 외경 - 서울중앙지검 외경

"검찰 등판에 명분 실어주는 것"

한 전직 감사원 간부는 감사원의 전방위적 감사에 대해 "결국 검찰 수사로 이어질 텐데 검찰 등판의 명분을 실어주는 것이다"라고 우려했습니다. 검찰이 걸어온 길을 봤기에 감사원도 개혁의 대상이 되진 않을지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현직 감사원장이 대선에 출마했고 현직 대통령 또한 검찰총장 출신이기 때문에 감사원과 검찰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곱지 않습니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연결 짓는 게 감사원과 검찰이 각각 보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감사원이 먼저 나선다면 검찰의 등장은 덜 부담스럽습니다. 수사의 여러 명분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년 전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이 힘을 주고 수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감사원이 작성한 200쪽 분량의 수사 의뢰서와 7,000페이지 넘는 참고자료가 컸습니다. 해당 자료들을 본 법조인들은 검찰 공소장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치권의 탄압 속에서 검찰 수사가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는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였다는 걸 검찰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감사위원을 지냈던 한 대학교수는 "감사원 위상이 달라지긴 했다. 달라진 위상만큼 의심의 눈초리도 많다. 사정 국면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검찰의 2중대로 전락할까 봐 걱정된다"라고 했습니다. 권력 감시라는 감사원 본기능의 취지를 살리려면 감사원은 이런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검찰의 2중대'라는 표현은 일종의 권력 지향적 요소가 담긴 표현인데 감사원에 대한 비하의 표현이 아니라 그만큼 감사에 드리워진 검찰의 그늘이 크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일각에서는 감사원 내부 감찰 신중론 제기

현 정권의 힘을 받고 있다 해도 감사원의 바깥 상황이 이처럼 썩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게 조직의 가장 큰 위기입니다. 감사원 내부 상황은 어떨까요. 유병호 사무총장은 김 모 과장 등 5명에 대해 직위 해제 조치하고 감찰에 들어갔습니다. 지난해 초 기획재정부에 대한 '봐주기 감사'를 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재부에 후한 평가를 주려고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는 겁니다. 해당 간부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동료들을 상대로 하소연을 하고 내부망에 글도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최재해 원장의 승인을 받았던 만큼 최재해 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SOS의 손길을 보냈지만 감찰 중이라는 이유로 면담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이번에 감찰 대상인 김 모 과장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는 "유병호 사무총장만큼 일 욕심이 많고 일을 잘 한다"라는 평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유병호 사무총장과 지향점이 서로 달라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말았다는 주변 동료들의 증언도 있습니다. 회의 석상에서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일부 간부들에 대해서는 업무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망신주기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감사원은 이미 조직 개편을 예고했습니다. 조만간 대폭 인사가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감사원 조직 개편에 앞서 공직 기강을 다잡겠다는 의도와 달리 이러한 조치들은 감사원 조직을 둘로 쪼갤 우려가 크다고 감사원 안팎에서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전직 간부는 "정치권이 예민하게 반응할 만한 감사를 주도하면서 칼 끝을 내부로 돌리는 것은 조직 입장에서 리스크가 크다"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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