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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급비 나올 때까지 20만 원…그래서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았다"

[취재파일] "수급비 나올 때까지 20만 원…그래서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았다"

'고물가' 파도 덮친 빈곤 계층…정부 대책은?

제희원 기자

작성 2022.07.07 09:38 수정 2022.07.07 20: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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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급비 나올 때까지 20만 원…그래서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았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 2만 원 넘게 썼다. 하루에 이렇게 많이 쓰다 보면 생계비가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하루에 쓰는 돈이 만 원 이상 나간다.

아이들이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는데 치킨 대신 돼지 불고기를 해줬다. 어머님과 두 아들한테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매일 쓰는 가계부지만 항상 걱정부터 앞선다. 나도 하루빨리 가난에서 해방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한테 풍족하게 먹이고 싶다.

생활필수품 너무 올라서 구입하기가 너무 무서움 너무 힘드네요.
반찬 6팩에 2만 원 했는데 3천 원 올림, 식자재 마트도 대부분 1천~2천 올림.
생일이라 미역국은 먹네요. 마음이 참… 흠.

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필수적인 소비마저 안 하고 살 수는 없지요. 말 그대로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고물가 상황이 엄중하지만, 소득과 계층에 따라 체감하는 현실이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 한국도시연구소와 빈곤사회연대 등이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두 달간 기초생활보상 대상 25가구의 가계부를 조사했는데요. 절반 가까운 11가구가 한 달 평균 수입을 초과해 지출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많이 지출한 항목으로 식비(10가구)와, 임대료와 수도광열비를 포함한 주거비(10가구)입니다. 전체 지출에서 식비와 주거비, 그러니까 '먹고 살기 위한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었습니다. 앞서 사례들은 가계부를 기록한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직접 쓴 일기 중 일부입니다.

두 달 전보다 물가 상황이 더 심각해진 데다 더위까지 덮친 지금은 또 어떤 어려움이 닥쳐있을까요. 이들의 일기를 조금 더 보겠습니다.
 
헹굼 세제(피존) 가격이 10,900원 하던 때가 있었는데, 물가 상승률이 가파르게 변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수급비는 너무 더디게 오르는 것 같다.

반찬 지원으로 오는 국이나 찌개는 건더기가 많이 없는데, 파나 양파를 넣고 끓이면 두 끼는 충분히 먹을 만한 양이 된다. 외부 활동을 많이 할 때는 허기가 많이 진다. 여러 번 움직이면 차비도 많이 들어가는데 식비 지출은 부담스러워서 되도록 집에서 밥을 먹고 외부 활동을 한다.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코로나19로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되도록 집에 머무르는 편이다. 움직이면 필연적으로 지출이 발생하므로…

20일째 고기 없이 풀밭에서 밥 먹었다. 기운이 없다. 만사가 귀찮다. 수급비 나올 때까지 20만 원은 남겨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았다.
 

밖에 안 나가고, 라면이나 우유로 버티고

컵라면 (자료화면)

문제는 생계와 의료, 주거 등 기초 수급액의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이 현실 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기준 중위소득 30%'가 기초생활수급자들의 한 달 생계비인 셈인데요. 생계급여에 물가가 반영되지 못하면 '소비를 줄이는 단계'를 넘어서 기본적인 일상에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앞서 보신대로 돈을 쓰지 않으려고 밖에 나가지 않거나, 끼니를 거르는 식으로요. 한 조사 대상자의 경우 조사 기간 61일 가운데 51일이 지출이 없었는데, 하루 세끼로 따졌을 때 183번의 끼니 중 라면이나 우유를 제외한 밥을 먹은 횟수가 50번이 채 안 됐습니다.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촘촘한 대책 필요

고위 당정 협의회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어제(6일) 처음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긴급생활안정지원금과 에너지 바우처 등 취약 계층을 위한 추경을 신속히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생필품부터 각종 공공요금까지 다 오르는 상황에선 저소득층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예컨대, 한시적으로 주는 긴급생활지원금의 경우 1인 가구 기준으로 40만 원이 나오는데 사용기간인 하반기 6개월로 나누면 한 달 6만 6,667원꼴입니다. 당장 급한 불은 끄겠지만 지속되는 고물가 상황을 견디기에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각 나라들이 물가와 싸우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금리 상승으로 인한 여러 취약계층이 생기기 마련인데 재정 정책으로 이들의 생계를 메울 필요가 있습니다. 보편적인 재정정책보다 저소득층 맞춤형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펼 필요가 있다". 당장 기준 중위소득을 현실화하기 어렵다면 긴급생활지원금을 좀 더 폭넓고 두텁게 지원하고, 내년 기준 중위소득 산정에 물가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습니다.

다시 2022년을 살아가는 수급자의 일기로 돌아가서 글을 맺습니다.
 
돈을 모으려고 해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혈압계가 고장 나 거금 들었다. 월세 350,000 폰 52,580 유선 22,000 등등. 488,620원 한 달에 고정으로 나가는 돈이다. 89만 원에서 48만 원 빼면 40만 원 정도. 이걸로 한 달 살아가는 거다.

아프면 희망이 없고 고달프다. 수급자도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참고 자료
최옥란 20주기 기초생활보장제도 컨퍼런스,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 한국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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