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주거비 빠진 물가지수…안 고치나 못 고치나

[취재파일] 주거비 빠진 물가지수…안 고치나 못 고치나
6월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6%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여 년 동안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숫자입니다. 보통 이렇게 경기가 어렵거나 물가가 오르는 시기가 되면 '체감 경기는 더 어렵다', '체감 물가는 더 높다' 류의 기사들이 흔히 눈에 띕니다. 사실 지표 물가와 체감 물가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합니다.
 
(1) 내가 자주, 많이 돈을 쓰는 품목의 가격이 특히 올랐습니다.
(2) 가족이 늘거나 자녀가 크면서 돈이 더 들어가는데 이걸 물가 상승이라고 느낍니다.
(3) 자동차나 가전을 살 때 1달 전, 1년 전이 아니라 내가 전에 샀던 몇 년 전 가격이랑 비교합니다.

모두 맞는 설명이지만, 정말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괴리감이 단순한 체감의 차이일 뿐일까요? 많은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주거비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보겠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458개 품목의 가격 변동을 종합해서 산출합니다. 이 중에 전세가 5.4%, 월세가 4.4%를 차지합니다. 9.8%가 주거비 비중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전세를 어떻게 반영하는가?


정부와 민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부동산 통계는 한국부동산원, KB국민은행이 만든 통계입니다. 그런데 소비자물가지수를 계산할 때는 이 자료를 안 씁니다. 통계청이 자체 조사를 나갑니다. 여기서 생기는 괴리가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 통계는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소비자물가지수 상 전세 지수는 이보다 훨씬 변동폭이 작습니다. 파란 그래프가 통계청, 붉은 점선이 부동산원, 검은 점선이 KB국민은행의 전세 가격 지수입니다. (서재용·장용성 '소비자 물가 상승률 통계의 잠재적 괴리 요인', 경제학연구 제70집 제2호, 2022)

한승구 취재파일용 수정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라는 제도의 특성은 적절한 가격 반영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KDI의 오지윤 부동산팀장은 최근 발표한 '임대 주거비 변화와 주택공급' 보고서에서 "전세보증금은 반환되기 때문에 그 자체를 주거비로 보기 어려우며, 금리 등을 반영한 조달 비용 관점에서 기회비용으로의 주거비가 측정될 필요"가 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내 집에 사는 데는 비용이 드나?


집을 사는 것은 투자이지 소비는 아닙니다. 따라서 집값을 그대로 물가지수 항목에 포함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주거 서비스' 요금은 포함시키는 것이 맞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임대를 주면 받을 수 있는 수익' 이 곧 '내가 지금 내 집에 살고 있는 비용(자가 주거비)'입니다. 임대 수익을 포기하고 이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니 그 자체가 나의 소비 여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가 주거비를 포함시키면 소비자물가에서 주거비 비중이 확 오릅니다. 우리나라의 주거비 비중이 유독 낮은 건 자가 주거비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이정익·강재훈 '자가 주거비와 소비자 물가' BOK 이슈노트 제2021-25호)

한승구 취재파일용 수정

위에서 언급한 계산 방식은 '임대료 상당액 접근법'이라는 방식입니다. 대부분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임대료를 어떻게 계산할지가 과제로 남습니다. 매달 측정하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취지를 고려하면 근처 비슷한 집의 시세대로 바로 반영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해외에서는 대체로 임대차 계약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해외의 경우 계약 기간이 짧고, 임대료 조정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시세를 반영하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임대차 계약이 통상 2년, 갱신청구권 사용시 4년으로 기간이 길어 이 방식대로 계약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했다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가 주거비가 통째로 빠진 소비자물가지수는 현실을 왜곡합니다. 통계청은 매달 물가 상승률을 발표하면서 보도자료 뒤에 외국의 물가 상승률을 첨부합니다. 그런데 우리만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 숫자를 외국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가 주거비를 반영할 경우 물가상승률은 지금보다 1.62% 오를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자가 주거비만 넣어도 6월 물가 상승률은 6%가 아니라 7.62%라는 것입니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잘못 나올 가능성이 높겠지요.

자가 주거비를 어떻게 처리할지 여부는 통계청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당장 국민연금 지급액이 전년도 소비자물가상승률에 연동해 조정되게 돼 있습니다. 이 정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면 국민연금의 장기 추계를 새로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각종 연금을 비롯해 소비자물가지수와 관련된 법률만 40개가 넘습니다. 공기업이든 민간이든 임금 협상 과정에서도 물가 상승률은 가장 먼저 고려하는 지표입니다. 통계청은 작년 말 "관련해서 전문가 분들과 유관 기관과 협의해 나가면서 사항을 대처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반년이 지나는 동안 별다른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