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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DC코믹스? 미국 대기업이 경상도 태권도장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취재파일] DC코믹스? 미국 대기업이 경상도 태권도장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박찬근 기자

작성 2022.06.30 15:25 수정 2022.06.30 19: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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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DC코믹스? 미국 대기업이 경상도 태권도장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슈퍼맨 쓰지 마"…논란의 시작

DC코믹스가 대구와 부산 등 경상도 지역 태권도장에 내용증명을 보낸 것은 지난 21일이었습니다. '슈퍼맨'이란 상호와 슈퍼맨 마크를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정 경쟁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부정 경쟁 행위란 '널리 알려진 타인의 상표·상호 등을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의 영업 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행위를 방지하는 법이 있으니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해왔습니다.

슈퍼맨 상호를 넣은 태권도장 (사진=A 태권도 관장 제공, 연합뉴스)

태권도장들은 대체로 슈퍼맨 마크를 사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슈퍼맨이란 단어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 이번 논란의 개요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의 일반 명사로 등재돼 있고, 일상에서도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라는 관용적인 의미로도 쓰인다는 이유입니다.
▶ [2022.6.29 8뉴스] "슈퍼맨 빼라" 태권도장에 날아든 내용증명…"과한 처사"
 

DC코믹스가 경상도 태권도장을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옳은지는 차차 따져볼 일이지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미국에 있는 만화 출판사 DC코믹스는 경상도 태권도장들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요? 제가 찾아간 대구의 태권도장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간판도 한글인데 어떻게 찾았는지 신기하다고요. 같은 내용의 내용증명을 받았다는 부산의 한 '슈퍼맨태권도' 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산 관장은 자기도 의아해서 DC코믹스를 대리하는 김앤장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슈퍼맨 태권도장
[부산 '슈퍼맨태권도' 관장 : 김앤장의 한 과장님하고 통화했는데, '자세히 말씀해드리는 건 어렵지만, DC코믹스에서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한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변두리 지역에 몇 개 안 되는 태권도장까지 모니터링이 된 거냐, 김앤장이 먼저 DC코믹스에 제안을 할 수도 있는 거냐' 물었더니 '우리가 선제적으로 DC코믹스에 문의하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선뜻 이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는 'DC코믹스가 그런 수고를 들여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일 겁니다. 미국의 대형 출판사가 왜 월 수입 몇백만 원에 불과한 한국 태권도장 관장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엄포를 놓을까 싶은 겁니다. 마블 같은 경쟁사나 국내 대기업이 무단 도용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

며칠 전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에서 조정 관련 업무를 보는 한 법조인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저작권이 있는 유료 PPT 템플릿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람들을 상대로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가 조정 회부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두 같은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했단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대체로 수백만 원대 소송을 걸었다가, 선심을 쓰듯 조정으로 넘어가 수십만 원 수준에서 합의를 보고, 변호사는 수임료를 가져가는 구조였다고 합니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간 게 아니라,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무단 사용 사례를 발굴한 뒤 저작권자에게 소송을 역제안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과 함께요. 사실, 이런 시장이 형성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고도 귀띔했습니다.

지적재산권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합니다. 저작권자가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는 법률상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미국 출판사 DC코믹스가 경상도의 일개 태권도장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런 상식이 작동해서일 겁니다. 아무리 법적 정당성을 외친들, DC코믹스를 대리하는 김앤장이 자영업자에 불과한 태권도장들을 상대하는 건 '체급'이 맞지 않으니까요.

경상도 지역 '슈퍼맨태권도'들이 슈퍼맨이라는 상호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DC코믹스에 끼치는 손해를 생각해봅니다, 내용증명을 보내고 소송을 대비하는 등 법적 대응의 편익이 당사자인 DC코믹스에게 과연 있을까요? 가장 이득을 보는 건 누구이고 피해를 보는 건 누구일까요? 김앤장 측에 이번 사건을 수임하게 된 경위와 DC코믹스가 경상도 지역 태권도장을 특정해 내용증명을 보낸 경위를 물었지만,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답변이 어렵다"고 밝혀왔습니다.

김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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