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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새 방사청장의 일성은 "획득 강화"…방사청 제자리 찾나

방위사업청 엄동환(예비역 준장) 제12대 청장이 어제(23일) 취임했습니다. 엄 신임 청장은 취임사에서 방사청의 임무에 대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양질의 전투 장비를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무기체계의 적시 개발 또는 도입, 즉 획득을 방사청의 제1 임무로 강조한 것입니다.

방위사업법 등에 따르면 방사청은 방위력 개선 사업과 군수품 조달 및 방위산업 육성을 하는 기관입니다. 첫 번째 임무는 각 군이 소요제기한 무기체계를 적시에 조달하는 방위력 개선 사업입니다. 획득이라고 부르는 업무로 방사청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임무는 총기와 방탄복 등 무기류부터 의복류에 이르는 군수품의 조달입니다. 세 번째는 방산 업계와 방산 수출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입니다.

엄동환 청장은 취임 일성으로 방사청의 획득 임무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당연한 말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최근 들어 본연의 목적보다는 겉으로 화려할 뿐 안보에 별 도움 안 되는 제3의 임무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했던 터라 엄 청장의 취임사는 신선했습니다. 취임사를 철저히 실천하면 방사청은 제자리를 찾고 군의 전력은 단단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어제의 방사청은 어떠했나

경기도 과천 방사청 청사

작년 12월 3일 방사청은 방위력 개선비 6천448억 원 삭감에 대한 입장자료를 냈습니다. "국방을 위해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는 군 관계자들에게 송구함을 전한다", "향후 계획된 군사력 건설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빈틈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방사청의 개청 목적이자 제1의 임무인 획득에 큰 구멍을 냈으니 고개를 숙인 것입니다.

반성은 잠시였습니다. 방사청은 곧바로 방산 수출 드라이브를 걸며 전화위복에 나섰습니다. 작년 처음으로 방산 수출액이 방산 수입액을 추월했다고 자찬하며 청장 등 고위직들이 수출 현장을 누볐습니다. 방산 수입은 무기를 도입하고 개량함으로써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인데 단순한 소비로 치환했고, 방산 수출은 업체를 살찌울 뿐 전력 강화와 무관한데도 자주국방의 쾌거라고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제2차 추경에 방위력 개선비 5천550억 원을 또 내주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방사청의 제1 임무인 획득에 연거푸 실패하면서도 수출 홍보로 분식(扮飾)에 심혈을 쏟았습니다. 권력과 대중은 국산무기 수출 찬가에 현혹됐지만 군과 방사청 내부에서는 "방위사업청이냐, 방위산업 수출청이냐"는 비판이 들끓었습니다. 방사청의 사활은 획득에 달려있습니다. 방산 수출도 중요하지만, 획득의 다음 순서입니다.

신속하고 효율적 획득, 첨단기술의 빠른 적용

어제 방사청 강당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엄동환 신임 방사청장

엄동환 신임 방사청장은 취임사에서 세 가지의 약속과 다짐을 내걸었습니다. 첫 번째는 "반드시 필요한 국방기술과 무기체계를 신속하게 계획하고 효율적으로 획득하자"입니다. 취임사 모두에서 "양질의 전투 장비 적기 공급"이라는 방사청 제1의 임무를 확인한 데 이어 세부 지침 격인 약속과 다짐의 첫 대목도 신속한 획득에 할애했습니다.

두 번째 약속은 첨단국방과학기술을 빨리 받아들여 전력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뉴욕에 자동차가 등장한 뒤 마차를 밀어내는 데 10년도 걸리지 않은 사실을 예로 들며 첨단국방과학기술 활용의 승패는 속도에 달렸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군과 방산업계가 한 목소리로 엄 청장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각 군이 제기한 소요가 방사청에 들어가면 예산 삭감 또는 계획 변경, 기간 연장의 수난을 겪기 일쑤이고 국방과학연구소는 여전히 일반 무기체계 개발을 첨단·핵심·비닉 기술 개발보다 앞세우는 실정이어서 새 정부 방사청의 획득 능력과 첨단국방기술의 활용 능력 강화 방침은 환영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고위 장성은 "언제부터인가 방사청은 군의 파트너 자격을 포기한 것 같았다", "신임 청장의 취임사를 잘 실천하면 방사청은 군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적극적 업무 수행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


엄 청장의 세 번째 약속은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의 개선입니다. "수사, 감사, 조사가 두려워서 업무 자세가 소극적으로 변해가고, 장애물을 만나면 극복하기보다는 피하려 한다"고 방사청의 현실을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직원이 과도한 책임을 져야 하는 관행과 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첫 시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ROC(작전요구성능)를 세워놓고 한 치라도 어긋나면 냉정하게 손을 털었던 방사청입니다. 소요군은 전력화가 급하다고 아우성인데 방사청은 엿가락처럼 늘려놓은 획득 절차에 걸터앉아 세월을 낚았습니다. 무기체계 개발에 문외한이지만 규정과 절차 따지는 데는 고수인 감사원이 주시하고 있으니 방사청의 소극적 입장도 더러 이해는 됩니다.

어찌 보면 맹목적인 문민화가 빚은 폐해입니다. 방사청 절대 다수의 문민은 방사청의 책임 있는 자리를 독식하고 있습니다. 문민들은 군이 전력화 시기의 준수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모릅니다. 대신 거미줄처럼 꼬인 규정의 준수에 목을 맵니다. 이런 구조에서 방사청은 결코 군의 소요에 호응할 수 없습니다. 대형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무기 개발과 도입의 의미와 중대성, 특수성에 대한 공무원들의 이해가 심각하게 떨어진다", "무기를 일반 공산품처럼 여긴다"고 꼬집었습니다.

뒷방살이 신세로 전락한 방사청의 현역 장교들을 중용하는 긴급 처방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사청 소속이라도 현역 장교들은 모군(母軍)의 사정을 잘 알 테니 적기 전력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문민화의 파도에 방사청의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 그럴 권한이 없었을 뿐입니다. 각 군으로 하여금 방사청의 현역 장교들을 백분 이용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참 어려운 도전입니다. 그럼에도 성취했을 때 대단한 성과로 평가될 것입니다. 엄 청장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2006년 후암동의 낡고 먼지 쌓인 사무실에서 오직 새로운 국방 획득의 장을 열겠다는 신념 하나로 똘똘 뭉쳐서 밤늦게까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일했던 그때를 잊지 않으면"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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