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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는 얼마나 되나요

[사실은]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는 얼마나 되나요

이경원 기자

작성 2022.06.23 11:30 수정 2022.06.23 13:5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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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는 얼마나 되나요
최근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임윤찬 피아니스트에 대한 주목도가 유독 큽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 순수 국내파라는 개인적 스토리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콩쿠르 연주 영상이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가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영상은 입소문을 타고 유튜브 조회수가 사흘 만에 170만을 넘겼습니다. 

피겨를 몰라도 김연아의 탁월함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임윤찬의 연주가 딱 그랬습니다. 넋 놓고 보게 됩니다. 사려 깊고 신중하며 잘 정돈된 한국 피아니스트의 전형과는 결이 다른, 대담하고 과감하며 몰입도 높은 연주를 보여줍니다. 보기 드문 스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솔하지 않습니다. 지휘자와 시선을 맞추며 중심을 잡는 성숙함은 열여덟 나이를 무색하게 합니다. 클래식 잡지 '그라모폰'의 칼럼니스트 제드 디스틀러는 "18살의 몸에 40살(의 성숙함)(40-year old in an 18-year old body)이란 표현을 되풀이하게 된다"고 썼습니다.

우승 이후 매일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음악 콩쿠르를 휩쓸고 있다며 'K-클래식'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지난 5일에는 첼리스트 최하영이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연이은 낭보입니다. 우리만 자화자찬하는 건 아닙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중계했던 해설자 버디 브래이는 '한국 현상(Korean Phenomenon) 임윤찬' 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12명의 준결승 진출자 가운데 4명이 한국인이었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보통 정치·사회 분야 팩트 체크를 해왔지만, 문화 분야라고 안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언론 보도처럼 한국 연주자들이 정말 콩쿠르를 휩쓸고 있는지, 팩트 체크했습니다.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 사실은

이를 위해 사실은팀은 권위 있는 음악 콩쿠르 입상자의 국적을 일일이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권위 있는 음악 콩쿠르'의 기준입니다. 보통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 WFIMC에 가입된 콩쿠르를 그 기준으로 삼기는 하는데,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그 수가 115개에 달했습니다. WFIMC에 가입돼 있어도 입상자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 콩쿠르도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흔히 알려진 '세계 3대 콩쿠르 입상자'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쇼팽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입니다. 전수 조사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표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참고로 러시아에서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WFIMC에서 최근 퇴출됐지만, 마지막으로 열린 콩쿠르가 2017년인 만큼 분석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분석 대상은 '입상자'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대회마다, 악기마다, 참가자들 실력마다 입상자는 다른데, 일반적으로 6위까지 수상권인 경우가 많습니다.

분석 기간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최근 20년'으로 잡았습니다. 한국인 입상자가 다수 배출된 시기가 2000년대 들어서라는 점을 감안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입상자는 있었습니다.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정명훈 연주자가 2위를 수상한 적이 있는데, 이를 축하하기 위해 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진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만큼 당시에는 콩쿠르 입상이 희귀했다는 방증일 겁니다.

한국인 콩쿠르 사실은
1974년 차이콥스키 피아노 부문 2위를 한 뒤,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정명훈. 그는 지금 세계적인 지휘자로 평가받고 있다.

본격적으로 분석 결과 보겠습니다. 2002년 이후, 세계 3대 콩쿠르 입상자는 286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16명은 이중국적이었습니다.

이중국적을 포함해 국적별로 분류해보니 러시아가 72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이 36명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 23명, 프랑스 20명, 일본 16명, 중국 15명 순이었습니다.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 사실은

쇼팽 콩쿠르는 지난 20년 새 26명 입상자가 나왔는데, 한국인은 2005년 임동민·임동혁 형제가 공동 3위, 그리고 2015년 조성진이 우승해 모두 3명입니다.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만 경연하기 때문에 입상자가 적은 편입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모두 116명 입상자가 나왔는데 한국인 입상자는 15명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연합뉴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러시아 출신 콩쿠르 입상자가 많은 건, 러시아 연주자들의 실력이 출중한 이유가 클 겁니다. 러시아는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에 꽤 강력한 영재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엄격한 교육을 하기로 유명합니다.

다만, 자국에서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성적이 좋았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최근 20년간 144명의 입상자가 나왔는데, 이 가운데 러시아 국적이 53명으로 37%에 달했습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빼고 두 콩쿠르 입상자만 계산하면 한국 18명(퀸 엘리자베스 15명, 쇼팽 3명), 러시아 17명(퀸 엘리자베스 13명, 쇼팽 4명)입니다.

사실 음악계 내부에서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러시아 편향' 문제는 늘 있었고, 또 이런 이유로 콩쿠르 권위가 하락한 것도 사실입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주최 측도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최 측은 홈페이지에서 콩쿠르의 역사를 짚으면서, 90년대 이후 모스크바음악원 교수들 중심으로 심사위원이 구성됐고, (자국) 보호주의 때문에 콩쿠르의 신뢰성이 많이 훼손됐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음악원의 5~6명의 교수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보호주의는 매우 두드러졌다. 쇼팽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신뢰성과 도덕적 권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At least the protectionism of the Competition jury comprising five - six Professors of the Moscow Conservatory became very noticeable. the Tchaikovsky Competition was losing professional credibility and the moral authority that had placed it on a par with the world largest competitions such as the 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 (Warsaw) or the Queen Elizabeth Competition (Brussels). 
- 차이코스프키 콩쿠르 홈페이지, 콩쿠르의 역사

악기별로도 살펴봤습니다. 

최근 20년, 세계 3대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입상자는 모두 60명인데, 이 가운데 한국인은 11명이었습니다. 피아노는 전체 91명 가운데 11명입니다.

콩쿠르 사실은 수정

최근 20년, 세계 3대 콩쿠르의 한국인 입상자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지명됐지만 불공정 심사를 이유로 수상을 포기했고, 주최 측도 입상을 취소했습니다. 아래 표는 입상으로 기록된 연주자들만 포함했습니다. 신지아 바이올리니스트는 개명 전 이름인 신현수로 입상했습니다.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 사실은

전수 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다른 콩쿠르로 외연을 넓혀보면 한국인의 입상은 훨씬 많을 겁니다. 세계 3대 콩쿠르에 버금가는 다른 유수의 콩쿠르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우승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달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지난해에는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서형민은 독일 베토벤 콩쿠르, 김수연은 캐나다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했습니다. 우승자만 따져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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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예술에 순위를 따질 필요는 없지만, 수상자 데이터로 본 한국의 콩쿠르 입상 성적은 '압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척박한 고전 음악 시장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실상 클래식 변방국인 한국이, 고전 음악의 심장인 유럽의 연주자들보다 많은 입상자를 많이 배출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25년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중계하고 있는 벨기에 음악 저널리스트 티에리 로로는 한국의 음악 영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두 편이나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지휘자 마린 알솝(왼쪽)과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21세기 들어 임동혁과 임동민 형제의 등장을 시작으로, 쇼팽 콩쿠르 우승의 조성진, 그리고 임윤찬까지…. 굳이 'K-클래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이 악기를 잘 다루는 연주자를 양성하는 국가임은 이미 입증됐습니다. 

다만, 음악은 메달을 따면 경력이 완성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한국식 영재 교육 시스템, 부모의 헌신 등 언론에서 다루는 K-클래식의 비결은 차고 넘치지만, 공허한 그림자도 품고 있습니다. 예술적 저변, 정확히 말하면, 문화의 다양성 문제일 겁니다. 고전 음악은 여전히 우리 일상과 멀리 있습니다. 한국은 '콩쿠르 강국'이지만 '고전 음악 강국'은 아닙니다. 비좁은 고전 음악 시장에서 살아남는 연주자는 극히 일부입니다. 우리의 고전 음악 환경은 척박합니다. 

임윤찬은 SBS 김수현 문화전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승을 원한 게 아니라 내 음악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김수현, <우승하고 심란하다는 임윤찬 "만족하는 순간 위험">, 6월 21일 자) 콩쿠르를 바라보는 열여덟 소년의 시선은 그 자체로 숭고하지만, 나아가 그의 음악이 예술적 저변을 넓혀주는 지렛대가 돼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콩쿠르 때문에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를 찾는 지인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SNS에서도 콩쿠르 영상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다시 한 번, 임윤찬 연주자의 우승을 축하합니다. 덕분에 콩쿠르 기간 열여드레가 행복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당황하지 말고, 과감하고 대담한 자신의 음악처럼 천천히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인턴 : 정경은, 이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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