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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강아지 진료기록, 동물병원에 달라고 해 본 적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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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양육 313만 가구 시대, 이제 반려동물을 가족과 다름 없이, 아니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죠. 이준원 씨도 지난 5월 24일, 아들 같았던 5살 난 치와와 짱아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어금니가 상해 염증이 퍼질 수 있으니 뽑는 게 좋겠다는 수의사의 소견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발치 수술을 앞두고 짱아를 의료진에게 맡긴 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 씨. 그런데 짱아가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얘기를 듣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답답한 마음에 의료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보니 짱아가 CPR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짱아는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짱아를 떠나보낸 이 씨는 황망한 마음으로,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뭐라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본격 수술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고 하는데 왜 짱아는 세상을 떠났을까. 어떤 사전 처치가 있었고 응급상황이 벌어진 이후 어떤 약물이 투입됐을까를 알고 싶어, 이 씨는 병원 측과의 면담에서 짱아의 진료기록부 일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병원 관계자는 "저거(수술 기록지)를 줄 수 있는지는 한 번 얘기해봐야 되겠"다며, "(기록지가 외부로) 나가야 할 의무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마취 수술 기록지는 한번 저도 잠깐 물어보고 드려야 할 것 같다"고도 했는데요. 이후 이 씨가 병원으로부터 당일 있었던 일에 대해 받은 기록은 다음 세 줄이었다고 합니다. "혈액채취 후 수액 맞기 직전 의식 잃음, 응급처치 진행 (즉시 삽관, CPR 진행 및 응급 약물 투여), 보호자 동의하 CPR 중단". 본인이 의사이기도 한 이 씨는 "(이전에는)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되면 우리가 적절한 의료적인 것(자료)을 다 받아 가지고 거기에 따라서 시시비비를 당연히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바이탈 사인 등 아이의 몸 상태가 어땠었는지, 어떤 수액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어떤 주사제가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수액) 라인을 통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비디오머그는 병원 측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우선 병원 측은 "사망한 강아지는 수액을 맞기도 전에 쇼크를 일으켰고, 응급처치 전에 이미 항문이 열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보호자와 함께 CCTV를 열람했고, 수술실 출입을 통해 약물 투약 상황을 확인시켜드렸으며 진료기록도 전부 제공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다만 이 부분에 대해 이준원 씨는 CCTV는 사고 당일 당시 경황이 없어 전체가 아닌 부분밖에 보지 못했고 추후 영상 파일이 지워졌다는 이유로 제공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약물 투약 상황 역시 사고 당일 당시 약물 병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했을 뿐 실제로 그것이 들어간 것인지, 또 그것만 들어간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 의료기록 수준의 기록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제공해야만 한다는 전제 하에 계속 (보호자가 이를) 요구하고 있지만, 병원은 존재하고 있는 기록을 드렸고 법상 어떤 의무 위반도 없다고 밝혀 왔습니다. 수술 기록지나 처치 기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관련법상 기록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있는 갖고 있는 기록은 다 제공했다는 입장입니다. 

'의무가 없다', 그렇습니다. 현재 수의사법상 수의사들은 보호자들이 진료기록부를 요구해도 이를 발급할 의무가 없습니다. 수의사법 제12조 3항을 보면, 진단서나 처방전에 대해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발급을 거부해서는 안 되지만 진료기록부는 이 조항에서 빠져 있습니다. 결국, 수의사의 재량인 셈입니다. 잘 치료 받으면 문제가 없지만, 간혹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들. 뒤이은 보호자의 요구와 동물병원의 거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2살 말티즈 뽀야도 동물병원에서 방광 내시경 수술을 받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A 병원에서 먼저 수술을 받았고 이후 B 병원으로 전원을 간 뒤 추가 수술을 받고 끝내 숨진 뽀야. 뽀야 보호자는 국민청원을 올리기도 했었는데요. "진료기록부 뿐만이 아니라 내가 돈을 내고 (반려동물에게) 어떤 검사를 하잖아요. 검사기록조차 받아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뽀야 보호자는 첫 수술을 시행한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을 따져 묻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아직도 소송은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이 소송에 들어가서야 A 병원의 진료기록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을 받고서였습니다. 뽀야 보호자는 이 기록을 받았음에도 완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사람은 그런 의무기록 관리 자체가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몇 월 며칠에 수정됨', '몇 시에 수정됨' 이렇게 다 남는데, (동물병원은) 알 수가 없고 (전산)업체에다 문의를 해도 '보호자한테는 알려 줄 수 없다'라고만 하니까 답답하죠." 

이렇게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특히나 분쟁이 생겼을 때 의료과실을 따져보려는 하나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서, 혹은 정말 가족 같은 반려동물에게 어떤 처치가 이뤄졌는지 단순히 알고 싶은 마음에서 진료기록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알 권리'를 위해 수의사법을 개정해 수의사에게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를 부과하도록 하자는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2년 전, 국회에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살펴 보면, 대한수의사회가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고 돼 있습니다. 법적 분쟁 및 약물오남용 우려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대한수의사회를 직접 찾았습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은 "보호자들의 목소리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정당하게 하려면, 법적으로 진료기록부가 다른 데에 안 쓰이도록 해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의사의 진료기록부를 보고 다음부터는 (보호자들이) 병원에 안 오고 약국에 간다"는 겁니다. 사람은 자가진료를 하기 쉽지 않지만 동물은 약을 더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농장동물 같은 경우에는 진료기록부가 배포되었을 때는 약, 항생제의 오남용이 엄청나게 증가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진료체계 표준화가 돼 있지 않아 의료 용어나 항목, 치료 방법이 수의사마다 차이가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진료기록부가 공개되면 혼란을 낳을 수 있단 점도 대한수의사회의 우려입니다. 허 회장은 국가가 동물진료의 공공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만약에 (건강보험처럼) 공공의료에 들어오게 되면은 이것은 국가가 관여할 수 있거든요, 사람처럼. 그러나 동물병원은 엄연히 부가가치세도 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진료기록부) 정보를 얻으려면, '식당에 가면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세요'랑 똑같은 거거든요. 저희들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발급을 할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죠. 국가는 동물병원을 하나의 가게로 보는 거예요, 법적으로. 보호자들은 하나의 의료기관으로 보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왜 사람은 되는데 동물은 안 되느냐 이렇게 나오는 거죠." 

결국 우리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 문제가 출발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은 이제 가족인데, 우리 법에서는 여전히 동물은 '물건'입니다('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아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보호자들의 알 권리다, 혹은 시기상조다. 반복돼 온 반려동물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 논쟁, 달라진 시대상 속에 이제는 어느 정도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취재·구성 : 박하정 이미선 / 영상취재 : 홍종수 최준식 / 편집 : 홍경실 / 디자인 : 서현중 안지현 전해리 / 제작 : SBS Digital 탐사제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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